brunch

매거진 S 이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하 Nov 30. 2023

7화 - 침잠

 "아이고 수현아, 너 서한대 다닌다며? 아줌마는 이제야 알았어. 우리 수현이 진짜 대견하다. 개천에서 용 난겨, 너는! 밥 잘 먹고 공부 열심히 하고 지내. 응?" "아, 네 감사합니다." 어릴 적부터 봐 온 이웃 아주머니가 수현의 손을 덥석 잡으며 등을 두드려주신다. 더위도 거의 끝난 것 같은데, 수현의 손에서는 땀이 난다. 날이 더워서 흘리는 땀인지, 마음이 불편해 흐르는 식은땀인지.


 "엄마, 파란 지붕 아주머니 만났는데, 나 서한대 다닌다고 엄청 칭찬해 주시더라. 엄마가 이야기했어?" "그런 소릴 내가 뭐 하려 해, 니 아부지가 한 거지." "아버지가?" "그래, 여기 사람들 니 서한대 다니는 거 다 알아. 니 아부지가 약주 한 잔 할 때마다 동네 자랑자랑을 아주!" "아, 그래? 싫어하시는 줄 알았는데." "무슨 소리야, 싫어하긴. 자식이 서한대 다니는데 싫어하는 부모가 어딨어. 그때는 돈이 없어서 그랬던 거지. 등록금 해결하고 나니 그 뒤로 한숨 돌린 거지. 돈 문제가 빠지면 세상은 원래 무지개 빛인 거야." 수현은 큰 마음먹고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건네본다

 "엄마, 나 주먹밥집 차려볼까?" 고구마순을 다듬고 계시던 엄마가 놀래서 수현을 쳐다본다. "아니, 뭐 나 싹싹하니깐 잘할 것 같아서.." "그래, 해 보고 싶으면 해. 대신 주먹밥집 가서 2~3년 알바를 먼저 해 보고 그 후에도 하고 싶으면 해." "아, 그... 그으래, 엄마. 그래야겠지? 휴.. 엄마 10년 뒤에 나 뭐 하고 있을까? 지금 이렇게 학교 뛰쳐나와서 탱자탱자 놀고 있는데." "뭘 10년 뒤야, 그걸 어떻게 알아. 그냥 하루하루 사는 거야. 올해 농사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데 10년 뒤 농사를 어떻게 알아? 인생도 똑같아. 그냥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거야."  책에서 분명 성공을 위해서는 20년, 10년, 5년, 3년 쪼개서 계획해서 사는 거라고 했는데, 왜 엄마의 말에 마음이 울컥하는지 모르겠다, 옘병. 지금의 모습은 한 번도 그려본 적 없는 영락없는 실패자의 모습 같아서 방황하는 수현이었다.


 고향에 내려와서도 졸업을 위해 계속 영어 공부를 하고 한 달에 한 번 있는 시험을 치렀다. 근처에 고사장이 없어 멀리 가서 시험 보고 오는 날은 마음도 몸도 지쳐 돌아왔다. '이번 달은 통과할 수 있을까?' 하반기 졸업 준비 마지막 시험까지 결과가 나온 뒤에 수현은 그만하기로 마음먹었다. 졸업 그다음 진행으로 생각했던 박사 진학도 모두 때려치우기로 했다. 졸업을 준비하는 최근 2년 동안 20번의 시험을 봤다. 이제 그만하고 싶었다 수현은. 포기하는 자신이 나약한 인간으로 여겨졌고 실패자 같지만 그만하고 싶었다. 무언가 거대한 세포가 수현을 좀먹듯 갉아먹는 기분이었다. 그만 뛰쳐나오고 싶었다.

 수현은 세상이 흑백논리, 성공 아니면 실패라고 생각했다. 서한대에 간 것이 자기 인생의 성공이라 생각했다. 서한대에 입학하는 순간 자신의 인생이 탄탄대로로 펼쳐질 줄 알았다. 분명 그 높은 곳에서 볼 때 세상은 넓고 쉬워 보였다. 그런데 지금 거울에 비친 수현의 모습은 바닥까지 내려온 실패자의 모습이었다. 학부 졸업을 하고 취직한 대학 동기들은 이미 회사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고, 같은 해에 대학원을 간 동기들조차 취업해서 돈을 벌고 있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수현은 대학원 졸업은 하지도 못한 채 고향 시골로 와서 은둔 생활 중이다. 어떻게 인생이 이렇게 꼬일 수 있을까? 수현은 매달 자신이 치러 낸 것이 비단 영어 시험이었을지 의문스러웠다. 인생의 거대환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채 바닥으로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지.


 "수현아, 그런데 너 요새 학교 안 가고, 여기서 뭐 하니?" 파란 집 아주머니가 마지막에 물어오셨다. "그냥.. 집에서 쉬고 있어요." 쉬고 있는 건지 세상으로부터 숨어 있는 건지 모르겠다. 20대의 1년, 2년은 긴 인 생에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저 하루하루를 다시 살면 된다고 엄마가 말해줬는데, 그건 60을 산 엄마니깐 할 수 있는 소리고 수현은 아무것도 모르겠어서 답답하기만 하다. 찌이잉- 그 순간 문자가 온다.

 "수현님의 핸드폰등 요금이 미납되었습니다." 이런 젠장

매거진의 이전글 6화 - 졸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