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이는 퇴근하는 아빠를 바라보고 웃으며 들고 있던 페트병을 내밀었다.
“아빠~^0^*, 오늘 유치원에서 만들었어. ~ ”
아이가 만들었다는 3개의 페트병 속에는 각각 분홍과 하늘색 그리고 연두색의 작고 귀여운 자갈로 반쯤 채워져 있었다.
“오~잉 멋진데? 근데 이게 뭐야~~~”라며 짐짓 딴청을 부리며 관심을 보였다.
“이거 마라카스야~, 아빤 마라카스 알아?”라며 묻는다.
아빠에게 가르쳐줄 것이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아이의 어깨는 한껏 올라간 채로 물었다.
“그러~~ 엄~”
대답을 하면서 아이에게 건네받은 병으로 만든 마라카스를 흔들기 시작했다.
“쉭~쉬~익~, 칙~착~”
경쾌한 리듬소리를 듣자 아이도 함께 마라카스를 흔들었고, 아이의 모습에 덩달아 흥겨워진 나는 어린 시절 듣던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 ~~♬
사랑의 이야기~ 담~뿍 담은 편지~이~♪~♪
여자 가수의 매력적이고 보이시한 저음에 어우러진 마라카스의 이질적이면서도 경쾌한 리듬이 인상적이었던 노래를 부르는 아빠의 모습에 아이는 더욱 신이 나서 몸이 들썩거렸다.
…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 노래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흥겨운 리듬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멜로디에서 느껴지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애잔함에 더 매료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노래의 멜로디나 가사와 유사하게 LA라는 도시에 대한 기억도 머릿속에 떠올리는 순간 다소 어울리지 않는 두 개의 복합적인 감정을 갖게 되는데, 그동안 잊고 살았던 어린 시절의 일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 ♣ ♣
내가 처음 LA라는 도시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오래전 초등학생이었던 때였는데, 70년대가 막을 내리고 80년대가 시작하려고 하던 때였다.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지금이야 일반인이라도 가려고 마음을 먹고 열심히 준비하면 갈 수 있지만 70년대만 해도 일반인이 외국으로 나간다는 것은 어림도 없었기에 외국은 상상에나 나타나는 별세상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를 지나고 새해가 시작되기 직전 어느 일요일 예배가 끝난 뒤 목사님이 한 집안의 이민을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는데, 그 집안에는 나와 같은 학교에 다녔던 또래 여자아이가 있었다.
당시 피아노를 잘 쳤던 그 친구는 교회에 있던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도맡았었는데, 그날 그 친구의 가족이 앞으로 나와 이별의 인사를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헤어짐을 슬퍼했다.
그리고 울먹이는 소리와 함께 교회 안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
...
다시 만날 때 그때까지~~“
여기저기서 울음을 참는 듯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던 그날의 기억이 더욱 처량하게 느껴진 이유는 어쩌면 추운 겨울이 영향을 미쳤던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뒤로 한참 나중에야 당시 그 친구의 집안이 이민을 택했던 것이 정부의 등쌀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군사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이라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사실 LA는 천사의 도시라는 이름에 잘 어울린다. 영화의 메카인 할리우드가 있어 사람들에게 친숙한 데다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야구선수가 활약하면서 더욱 유명해진 LA를 생각하면 뭔지 모를 희망을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나에겐 그런 밝은 면과 함께 어린 시절 느꼈던 애잔한 감정을 지울 수 없어서인지 나성에 가면이라는 노래를 들을 때면 알 수 없는 애잔함을 지울 수 없다.
더욱이 지금과 달리 엄혹했던 70년대의 사회상까지 고려하면 그 친구의 집안처럼 한국을 떠난 많은 사람들은 어쩌면 다시는 고국으로 돌아올 수 없을 것이라는 절절함이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까지 이르자 밝고 경쾌한 멜로디임에도 불구하고 노래에서는 알 수 없는 애잔한 감정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
마지막 후렴까지 흥겹게 마라카스를 흔들며 춤추는 아이를 보며 혼자서 애틋한 감상에 빠져들어가는 것 같다.
"안녕 안녕 내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