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풍 Oct 13. 2023

여행을 싫어했던 이유

내가 좋아하는 여행은 따로 있었던 거야

아빠는 거제도로 여행 중이야. 직장 동료들과 함께

엄마랑 동생들만 집에서 이틀 간 지내고 있어.

왠지 마음이 차분해지고 혼자서 있는 듯 고요하다.

아빠와 아무래도 우리 집에서 엄마에겐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나 보다.     


추석 때 부터였으니까.

딱 2주일 날깨 뼈가 아팠네.

오늘은 이제야 좀 정상이 되나 싶다.

한나가 탁구공으로 마사지를 밤마다 해주고

며칠간 침을 맞고, 며칠간 잠을 설치고, 며칠간 소염진통제를 먹다가 기어코 한약을 지어왔다.     


왜 내 날개뼈 속이 그리 아팠을까 생각해 봤지.

추석이라서 차를 유난히 오래 탔고. 

할머니 댁에서 불편한 자세로 오래 앉아 있었고

가족들과 함께 산행을 했는데 좀 피곤했고

집에 돌아와서 새벽부터 블루베리 분갈이를 했지.

아빠는 새벽부터 블루베리 분갈이를 해서 그렇다며 엄마를 구박했지만 속으로 더 화가 나더라.     

몸은 해야 할 일도 해야 하지만

이제 내 몸을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쓰고 싶은데

아빠는 내 몸을 건강하라고 막 쓰지 말라고 사랑 어린 걱정을 해 주지만

해결은 못해 줄 거 같다.


엄마는 블루베리 분갈이를 하고 싶었는데

아빠는 가족들과 밥 먹고 낮잠 자고 엄마랑 탁구가 치고 싶었던 거지.

한나는 놀이공원에 가고 싶고. 별이는 실컷 자고 싶고.

서로 하고 싶은 게 다를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책임감은 타고난 엄마의 몫이니.

이내 난 이제부터 명절이나 긴 연휴에는 가족들과는 딱 이틀 함께 즐겁게 보내고 남는 빨간 날은 혼자 여행을 가기로 생각한다. 


기울어진 관계는 결코 모두가 즐겁지 않고, 오래가지도 않더라.     

가족들은 이제 엄마 없이 스스로 삼 시 세 끼를 먹으며 자유롭게 쉬라고 해주려 한다. 엄마는 이틀 가족들과 맛있는 것도 먹고 했으니,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 그게 엄마의 솔직한 욕망인 거 같다. 계속 가족들과 함께 있는 건 엄마에겐 또 날개 뼈 통증을 가져올 것만 같다. 서로 사랑하고 아끼지만 24시간 누군가와 함께 계속 있어야 한다는 건 힘든 일이야. 서로에게.     

그래서 각자의 공간과 시간을 만들어 주어야 하지.

자식이 조금 크면 자기 방을 주고

더 크면 자기 시간도 더 주고

성인이 되면 부모 곁을 떠나 오로지 자기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가는 거지.

거기에 맞게 부모도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가는 게 좋다 싶다.     


난 나의 부모와는 다른 명절을 맞이하고 싶다.

자식들을 기다리며 온갖 요리를 하거나 기다리거나 서운하거나 무리하거나 음식 해주고 배부른 데 또 해주고 그런 거로 사랑을 표현하는 거 말고

만나서 정말 반갑고 행복하고 함께하는 행복을 만끽도 하고

각자가 힐링할 수 있는 명절.


가족 구성원 중 누구는 힐링하고 누구는 무리하거나 노예가 되거나 지치는 그런 명절 말고.

이제 엄마가 우리 가족 명절을 바꿀 차례가 된 듯하다.

할머니들에게 따르며 살아왔던 시간 말고.     

아마 이제 엄마는 긴 명절의 앞머리는 온 가족들과 함께 하고 끄트머리에는 여행을 갈까 한다.


왜 내가 여행을 싫어할까 생각해 보니

그건 내게 맞지 않는 여행이었기 때문인 거 같다.

내가 가고 싶은 숙소를 찾아 예약하니, 설레고 기다려지더라.

이제는 내가 가고 싶은 여행을 갈 거야.


멀지 않은 거리에 

혼자서 갈 수 있는

아주 조용하고 따뜻하고 소박한 곳으로.

책과 노트북을 가지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친구와 통화도 하고

글도 쓰며 여유를 누릴 거야

그리고는 또 다음 명절을 기다릴 거야.     


성인이 되어 명절이 기다려지거나 즐거웠던 적이 그다지 없다.

일 년에 며칠 안 되는 휴일인데 피로는 가중되고 허리 통증은 심해지고 가족들에겐 짜증이 나거나 스트레스를 받고.

이건 이제 그만하고 싶다.


아빠는 휴일이 다 지나갔다며 아쉬워하더라. 그러니 서로의 스트레스 크기가 다르다는 거겠지.

그건 아빠 잘못은 아니야. 사회 구조적인 시대적인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와 환경인 거겠지.     

이제 내 가족 문화는 내가 바꾸어보아야겠다.

짜증 내고 화내기보다, 이해 받으려고 따지기보다, 

독립된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인 다섯 가족이 모두 편안하고 자유로운 게 뭔지 고민해 보아야겠다.

아마도 엄마가 평화로워야 우리 집이 평화롭겠지.     


너희들이 성인이 되는 날을 엄마는 서서히 준비하고 있어.

그건 이제 관계가 달라져야 하는 거지.     

지난 날개 뼈 통증으로 엄마는 이런 생각들을 했단다.

몸은 내게 신호를 주는 거겠지.

뭔가 잘못되고 있다고.     


하루하루 추워진다.

옷장을 정리하고 기모 옷들을 꺼냈어.

옷 따뜻하게 입고, 따뜻한 물을 자주 먹고 항시 몸을 따뜻하게 해줘야 해.

따뜻함이 너의 힘듦을 조금은 덜어줄 거야.

매거진의 이전글 소망목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