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내가 <펭귄 하이웨이>를 좋아하는 이유.
<펭귄 하이웨이>는 비판받아 마땅한 영화이다. 특히나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이 영화는 기존 일본 애니메이션의 한계를 여실 없이 답습한다. '치과 누나'의 가슴에 남자 소년 주인공 아오야마가 매력과 호기심을 느끼는 설정은 그 자체로도 굉장히 불편하지만, '누나'의 가슴을 자주 클로즈업 샷으로 시도 때도 없이 잡는 연출은 더더욱 불편하다. <너의 이름은>에서 등장한 자전거를 타고 가는 데 바람에 치마가 날려 팬티가 보이는 일종의 '성적 서비스 샷'이 일본 애니메이션의 한계를 여실히 증명하듯이, <펭귄 하이웨이>의 가슴 클로즈업 샷은 애니메이션을 성적 유희로 소비하는 일본 문화에서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다. '치과 누나'의 캐릭터가 이름이 없는 점과 주인공의 성장 서사의 도구로서만 기능하는 점, 사춘기 소년의 성적 호기심을 어린 순수함으로 기만한 점, 결과적으로 '가슴'이라고 반복되어 등장하는 소재가 결코 성적 호기심을 제외하고는 서사에 어느 역할도 수행하지 못한 점을 고려했을 때 <펭귄 하이웨이>는 단연코 낙제점이다(적어도 가슴이라는 소재를 반복적으로 등장시키고 클로즈업으로 잡는 연출을 택했다면 서사에 훨씬 더 중요한 소재였어야 한다-물론 여성의 신체부위를 자극적으로 소재로 소비하는 것 자체도 문제가 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단점이 빚어내는 가장 큰 참극은 주인공 아오야마가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는 캐릭터이지만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또래에 비해서 성숙하고, 논리 정연하고, 친구들을 이끄는 능력이 있는 캐릭터이지만 어디엔가 어린아이의 순수한 모습이 남아있는 아이는 우리가 가장 매력적이게 느끼는 어린이 캐릭터이다. 논리 정연하고 성숙한 특성을 통해 성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어린아이들의 미성숙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점을 정당화 하기에(흔히 발암이라고 칭해지는 행위들) 어렸을 때 대부분이 겪는 지적 허세를 안정적으로 전달한다. 즉, 어린이에게 느끼는 성인들의 답답한 감정을 최소화할 수 있는 캐릭터이다. 하지만, '누나'에 대한 호감을 표현하는 데 있어 지속적으로 '가슴'에 대한 호기심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건 어린아이임에도 충분히 모욕적이고 무례한 표현이다. 본인보다 나이가 많은 타인에 대해서 호감을 느끼는 캐릭터는 충분히 가능한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호감과 성적 호기심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가슴'에 대한 호기심을 자주, 다양한 방법으로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은 아오야마의 매력을 꽤나 반감시킨다. 특히 엄마와 치과 누나의 가슴을 비교하는 장면은 영화 내 필요성과 당위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이 영화를 본질적으로 응원하는 이유는 <펭귄 하이웨이>가 어린 시절 꿈꾸는 상상의 나래를 현실 속의 장면으로 형상화해서-심지어 현실이다-그 시절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어린 시절에 대한 따뜻한 위로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즉, <인사이드 아웃>에 등장하는 '빙봉'이라는 캐릭터가 <펭귄 하이웨이>의 서사이자 줄거리이자 주제의식이다. '빙봉'이 사라져도 그로 인해 나도 성장했음을, 다시 말해 '빙봉'은 실재했다는 점을 계속해서 상기시킨다. 특히나 아오야마와 친구들이 '바다'를 탐구하는 장면을 단순히 어린아이들의 환상 속 모험으로 치부한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존재로 그린 점과 친구들의 탐구가 그 존재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그린 점이 너무나 큰 위로로 다가왔다. 조사 팀으로 대표되는 성인들이 그 존재를 현실로 인식하고, 그 존재에 의해 위기를 겪는 것이 바로 그 증거이다. <펭귄 하이웨이>는 어린 시절에 대한 헌사라는 주제 의식을 펭귄, 재버워크, 바다 등등 굉장히 매력적인 SF 소재의 이야기로 유려하게 직조한다. 비록 영화의 몰입을 현저하게 저해하는 요소가 꽤나 많고 그 의도 역시나 굉장히 불순하지만, 이토록 따듯한 위로를 건네는 이 영화를 나는 본질적으로 싫어할 수 없을 것 같다. 원망할 수는 있어도.
2018. 10. 15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브런치무비패스 로 관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