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과 서양의 할머니

스웨덴에서 살아남기#21, 오로라 보기 프로젝트 #5

by 조현서

스티브라는 친구를 만났다. 이탈리아-미국 혼혈인 스티브는 특유의 자유분방한 에너지가 인상적이었다. 함께 여행 온 다른 친구들에게 넉살 좋게 말을 붙였다. 근처애 있으면 먼저 이름을 물어보고, 여행 중에 제일 좋았는 게 뭐였는 지 말을 건네는 친구였다. 스티브의 넉살은 학습된 무언가라 하기에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아무래도 따듯하고 여유로운 곳에서 살았던 경험 덕분 아닐까 싶었다. <로마의 휴일>의 그레고리 펙이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아미 해머같은 자연스러운 넉살과 매력이 이탈리아의 햇살 속에서 돋보이는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여유로운 성격과 과하게 덥지 않은 따듯한 공기와 따사롭지만 뜨겁지 않은 햇살은 역시 꽤나 큰 연관이 있다.

어느새 어두움이 주변의 공기를 감쌌지만, 회색 먹구름이 두껍게 하늘을 막아 오로라의 녹색 빛은 보이지 않았다. 점심까지 구름 한 점 없던 하늘은 밤이 되자 당연하다는 듯이 구름으로 가득찼다. 초록색 오로라가 빠져 나올 작은 틈 하나 주지 않았다. 초록색 빛을 보지 못한 우리들은 술로 마음을 달래기 시작했다. 다같이 오로라가 잘 보인다는 곳 옆에 있는 큰 텐트 안에 자리 잡고 술을 따랐다. 싸구려 뱅쇼였지만 알코올을 함유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스물 네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버스 안에서 텁텁한 공기를 견딘 결과가 흔한 먹구름이라는 현실을 견디는 데에는 알코올 만한게 없었다. 알코올이 체내로 흡수되자 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술을 마시지 않은 나는 사람들의 행동이 점점 커지고 목소리의 톤이 올라가는 걸 확실하게 체감할 수 있었다. 나는 스티브와 같은 테이블에 마시멜로우를 구워먹으면서 오로라를 보지 못한 슬픔을 함께 즐겼다.


와인이 뜨거운만큼 텐션이 점점 올라갈 즈음에 스티브의 전화벨소리가 울렸다. 자리를 비우고 3~4 분 정도 전화를 받은 후 스티브가 돌아왔다. 스티브에게 물었다. 혹시 무슨 일 있는거야? 심각한 일은 아니지? 할머니로부터의 여행 조심히 하라는 안부전화였다. 덕분에 화제는 자연스럽게 가족 이야기로 옮겨졌고, 스티브가 자기한테 전화한 할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함께 식사를 할 때 이야기였다. 스티브의 할머니는 스티브와 식사를 함께 할 때, 항상 한 상 가득 차린 다음, 스티브에게 많이 먹으라고 권했다고 한다. 그리고 스티브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굉장히 행복하게 바라보고, 더 먹으라고 권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는 말을 전했다. 꽤나 거구인 스티브가 내 키와 몸무게는 할머니 덕이라고 하며 함께 식사를 할때의 인자한 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는 말을 듣자 나는 내 외할머니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방학 때 속초에 있는 외갓집에 꽤 긴 기간을 묵었다. 짧으면 이 주에서 길면 한 달 반정도 되는 기간을 외갓집에서 보냈다. 비염과 충농증으로 고통받았던 내게 속초에서 지내는 게 나아지는 데 도움이 되거니와 서울에서 집에만 있는 것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부모님의 결정이었다.(부모님은 맞벌이셨다) 사실 나도 속초에서 지내는 게 나쁘지 않았다. 탁 트인 하늘과 푸른 바다가 만나는 지점을 바라보는 건 아무리 매일 봐도 지겹지 않았다. 청초호에서 바람을 맞으면서 자전거를 타는 것도 즐거웠다. 할아버지와 수영장에서 수영 대결을 하는 것도 좋았다. 물론 할머니의 글씨 교육은 너무 엄격해서 할머니께 혼날때만큼은 너무 서울이 그리웠지만 아파트 앞 놀이공원의 미끄럼틀을 타면 충분히 견딜만 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내게 항상 성대한 식사를 차려주셨다. 항상 반찬의 종류는 많았고 맛이 없었던 적이 없었다. 내가 좋아하지 않은 반찬이어도 할머니가 만들면 항상 맛있었다. 초딩 입맛인 어릴적에 그만큼 맛있었다면, 지금은 얼마나 맛있을까. 할머니는 내가 밥과 반찬을 입 안에 연신 집어 넣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누가 안뺏어가니 천천히 먹으라는 말을 항상 덧붙이셨다. 그리고 고봉밥 한 공기를 다 비우면 더 먹고 싶으면 더 먹으라고 말하셨다. 그 때가 아마 내 음식 섭취량이 가장 클 시기가 아니었을까. 스물 다섯 살이 된 지금, 아무리 손자라도 짜증날 법한 내 모든 말썽을 다 견디고 항상 맛있는 식사를 만드시고 그걸 아무런 죄책감 없이 먹는 모습을 웃으면서 바라보는 마음은 과연 무엇일까 싶다. 스티브의 할머니도 스티브를 바라볼 때의 표정이 내 할머니와 똑같지 않았을까? 당연하지만 나는 아직 그 자비로움을 이해하기는 너무 어린 것 같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께 전화를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