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교사 안은영>, 가장 영화적인 드라마

이경미 연출자는 한국에서 가장 누벨바그적인 연출자

by 조현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은 기괴하다. 단순히 표현 방식이 기괴한 것뿐만 아니라, 서사의 진행 방식이 그러하다. <보건교사 안은영>에서의 서사는 상당 부분 생략되어있다. 특히 학생들의 서사는 옮을 잡아먹는 학생 말고는 거의 제시되어 있지 않다. 그저 이미지일 뿐이다. 잘못 세워진 학교에서 이상한 체조로 욕망을 억누르다가 돌이 옮겨진 계기로 그 욕망을 파괴적으로 분출하는 존재일 뿐이다. 이 작품에서 학생들은 욕망이 억눌린 존재를 표현하기 위해서 기능적으로 존재한다. 욕망의 분출에 상관없는 서사는 모조리 배제되어있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심지어 주인공 안은영의 서사도 대부분 비어있다. 안은영이 어쩌다 이 학교의 보건교사가 되었는지, 화수(문소리)와는 대체 무슨 관계인지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 그저 학교 내에서 벌어지는 일에 한하여 단편적인 정보만 아주 불친절하게 제시될 뿐이다. 심지어 홍인표(남주혁)와의 로맨스조차도 둘의 관계가 로맨스인지 단언하기 어렵다. 이 드라마에서 분명한 것은 욕망의 억눌림, 그리고 안은영과 홍인표의 능력, 그리고 학교의 설립이 무언가에 반했다는 것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다 관객의 자의적인 판단의 영역으로 넘겨버린다.

나는 <보건교사 안은영>을 지지할 수 없다. 특히 단순히 캐릭터를 억눌린 욕망을 분출하기 위한 객채로서 소비하는 것은 특히나 지양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기준을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상기시켜도 어느새 나는 <보건교사 안은영>의 불쾌함을 즐기고 있었다. 불쾌하고 기괴한 표현 자체가 탁웛했기 때문이다. 통통 튀는 젤리의 모습에 가려져서 대중들에게 덜 주목받고 있지만, <보건교사 안은영>의 가장 탁월한 성취는 바로 욕망의 가시화다. 그간 대부분의 한국 드라마는 욕망을 표현할 때 서사의 도움 없이는 절대 표현하지 못했다. 흔히 '막장 드라마'라고 평가받는 <아내의 유혹>부터 최근의 <평일 오후 세시의 연인>, 넓게 보면 <부부의 세계>까지 욕망을 표현하기 위해서 자극적인 서사를 빌려왔다. 하지만 <보건교사 안은영>은 그 기나긴 서사가 필요했던 지점을 단순히 학생들이 땀을 흘리는 이미지, 학생끼리 끈적한 젤리로 연결되어 있는 이미지 하나만으로 완전하게 설득시키는 데 성공한다. 즉, 이야기 진행에 필수적인 부분을 다른 여타 드라마가 고민 없이 서사의 영역에서 해결했던 것과 달리 <보건교사 안은영>은 단순한 이미지만으로 그 긴 서사를 훌륭하게 대신한다. 박찬욱 감독의 <박쥐>에서 캐릭터들의 첫 등장만으로 그들의 전사가 아주 흥미롭고도 명쾌하게 드러났던 것처럼 <보건교사 안은영>도 이미지만으로 이 드라마의 핵심을 설파한다. 여타 드라마와 다르고 영화에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다. 최근 대부분의 한국 상업영화가 달성하지 못했던 지점을 <보건교사 안은영>은 아주 훌륭하게 해낸다. 물론 기시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은 작품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표현 방식은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과 소노 시온 감독의 최근 작품들이 떠오른다. 학교의 특징들은 일본 영화에서 학교를 묘사하는 방식과 굉장히 닮아 있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어쩌면 가장 영화적인, 영화보다도 더 영화적인 드라마다. 누벨바그가 주장한 영화의 정수, 문학적 서사 구조의 탈피 및 영화만이 선보일 수 있는 예술성의 강조를 <보건교사 안은영>은 독창적인 이미지의 표현으로 해냈다. 정세랑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음에도 소설의 내러티브와 완전히 다른, 가장 영화적인 표현의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소설은 다다를 수 없는 지점을 가장 명확하게 포착해서 영상으로 옮겨놓은 이경미 감독은 가장 누벨바그적인 연출자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