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좋게 걸린 형제의 교복을 본다. 올해 작은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서 똑같은 교복이 한 벌 더 생겼다. 하얀색 와이셔츠와 아이보리 니트 조끼, 베이지색 바지와 남색 재킷을 갖춰 입은 작은 아이는 이제 어엿한 중학생 같았다.
3월 어느 날, 학교를 다녀온 아이가 단추 하나를 손바닥에 내려놓는다. 재킷에 붙은 두 개의 것 중 하나였다. 놀라워하며 “단추가 벌써 떨어졌어?”하고 묻자 아이는 조금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본다. 그러다 갑자기 지금 아이의 교복이 형의 것임을 알아차리고 입을 다물었다. 아이와 나 사이에 물빛 같은 그림자가 밀려들고 있었다.
큰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던 해에 신랑은 석 달째 해외출장 중이었다. 코로나의 사정으로 집 근처 매장에서 지급되던 아이의 교복은 이제 버스를 2번이나 타고 가야 하는 꽤 먼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53번 노란색 동네 버스는 논두렁이 보이는 교외의 낯선 길을 구석구석 돌다가 마지막쯤 목적지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집으로 돌아갈 때 같은 풍경을 두 번 보았고 앞에 앉은 아이가 졸다가 왼쪽 창가로 쏟아지는 햇살이 뜨거웠는지 깨어서는 손 그늘을 만들었다. 뒤에서 바라본 넓은 어깨는 듬직했지만 설렘은 찾아볼 수 없었다.자동차로 왔다면 이미 두어 번은 오갔을 거리를 반나절이나 넘게 걸렸다.
버스에서 내려 아이뒤를 쫓아 걷는데 점점 쓸쓸한 기분이 되었다.
아직 추위가 남아있었고 신랑의 빈 공백과 올해도 교복을 입고 등교할 일은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다는 사실에, 봄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진 터였다.
그렇게 1년, 그리고 또 1년…
큰 아이는 올해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모든 것들이 멈춰 선 줄만 알았지만 그 사이 아이의 키는 13센티나 자랐고 운동화는 올봄 285 사이즈를 신는다.
2년 전 맞췄던 교복은 작아진 지 한참 되었지만 주위에 수소문해도 물려받을 교복이 없었다.
아이의 성장을 고려해 교복을 한 치수 정도 크게 준비했고 여분의 바지단도 넉넉하게 남겨두지만 예상보다 그 사이 부쩍 자랐기에 다른 대안이 필요했다.
인터넷 동네 카페에 110 사이즈의 교복을 구한다는 글을 남기면서도 크게 기대할 수 없었지만 최선은 다하고 싶었다. 역시나 반응은 없었다.
작은 아이의 교복을 받으러 가던 날, 마음속으로 수없이 망설이던 말을 조심스럽게 꺼내 놓았다.
"새 교복은 형아 것으로 하고, 작아진 형아 교복을 네가 입으면 안 되겠느냐고…"
내 어려운 사정을 조용히 듣던 아이는 그저 말 없음으로 엄마인 나의 요청을 따라 주었다.
형아의 교복은 10번 정도밖에 착용 횟수가 되지 않아 새것 같았지만 엄연히 새것은 아니었는데도 나는 새거나 다름없다는 말을 변명처럼 하고 또 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도 나도 아무 말이 없었다.
언니의 1학년 첫 소풍길에 똑같은 소풍가방을 메고 기어이 따라나선 나, 작아진 언니 구두 말고 새 구두 내놓으라고 엉엉 울었다는 나, 내 이름이 적힌 새 크레파스를 사 달라고 밥을 굶었다는 내가 지금 작은 아이의 기분을 몰라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가족들은 그때의 소풍 사진을 꺼내놓고 지금도 한 번씩 나를 놀리지만 사실 난 하나도 안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