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한 수 1.

by 문홍

오전 일과를 마치고 동료들과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오늘따라 속이 더부룩하고 편두통이 생겨 혼자 휴게실에 남게 됐다. 진통제를 먹고 잠을 청해볼 요량으로 소파 깊숙이 몸을 기댄 채 눈을 감았는데,

문득 '어! 이게 뭐지?' 갑자기 어떤 생각도 아닌 것이 느낌도 아닌 어떤 것이 자동차 추돌사고처럼 나의 머리를 강하게 부딪혔다.

'어?'

'뭐야?'

'어쩌면 그것이 행복?'


편두통도 잠시 잊은 채 종이와 펜을 들었다.

지금 떠오르는 생각들을 마구잡이로 적어보았다.

오늘을 행복하게 살았다.

그것이 내가 바라고 바라던 행복이다.

'응?'

'내가 바라던 행복?'

오늘 하루를 돌아보았다. 행복이라고 여겨질 만한 사건은 딱히 없었다.

'난 매일 똑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오늘은 뭔가 특별했나?'

그렇게 오늘을 써 내려가던 중 어떤 한 장면에서 쓰기를 멈췄다.

"하~~~~~"

'매일 행복을 갈망하던 내게 신은 이렇게 선물을 주셨구나.....'


매일 반복되던 일상 속에 있던 시간.


하루동안 내가 웃었던 시간, 나를 향해 웃어주었던 많은 얼굴들, 그 속에 섞여서 나는 의심 없이 편견 없이 어르신들과 소통했다. 함께 웃었고 함께 행복했다. 복잡하지 않았고, 어렵지 않았고, 모든 것이 편안했다.

오직 그 안에 내가 있었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내일을 살았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매일을 살았다.


매일 요양원으로 출근하는 나는 그곳에서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이 행복이었다.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아무런 기대 없이, 아무것도 복잡할 것 없는 현실 그대로의 공간과 시간에서 나는 행복했다. 한 점의 의심도 없이 나는 어르신들의 순수한 영혼을 사랑했고, 어르신들의 수족이 되어드리는 것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인지가 떨어져서 어린아이의 그때로 돌아가있는 그분들의 순수함이 나를 순수하게 만들었고 지난 몇 년 동안 지칠 대로 지쳐있었던 나의 마음과 감정들이 어느새 무소유의 그것처럼 비워져가고 있었다. 내가 목젖을 훤히 드러낼 만큼 사람들 앞에서 웃어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사라져 갈 즈음 어르신들을 보면서 그렇게 웃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원하던 것과 다른 차원의 행복.

내가 원하던 것과 다른 차원의 사랑.

내가 원하던 것과 다른 차원의 물질.

이것이 나에게 신이 선물한 그의 한 수였다.


내가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뭘 원하는지도 모른 채 살아온 지난 삶이었다.

나는 그저 지금의 삶과는 전혀 다른 나의 미래를 매일 상상하며 살았다.

'나는 아직 가보지 못한 여러 나라도 가봐야 하고 그곳에서는 한 달 살기도 해봐야 하고 이런저런 집에서도 살아봐야 하고 그러려면 지금의 내 삶보다 뭔가는 달라져야 하는데 어떻게 내 인생을 바꿔볼까?'

아직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는 끊임없이 나를 상상 속에 머물게 했다. 마치 나에게는 큰 행복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지금 나는 가진 것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이고 언제 빨간딱지가 붙어도 이상하지 않은 부채를 시한폭탄처럼 끌어안고 살면서 그 '언젠가'에 희망을 걸어놓고, 행복 같은 것은 지금의 내 모든 상황들이 모두 해결되고 나면 그때 함께 있는 것이라고,

그전에는 꿈도 꾸면 안 되는 것인 줄 알았다.


지금 나는 내 마음속으로 밀려들어오는 어떤 느낌을 '깨달음'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동안 그렇게 많은 책을 읽으면서도 늘 한계에 부딪혔던 바로 그 지점을 지금 통과하는 느낌이다.

늘 기도 속에서 부르짖었던 어둠의 끝. 그 끝에서 보게 되리라 믿었던 그 빛으로 내가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다.


왜 몰랐을까...

내가 그토록 갈망했던 행복이 지금 살고 있는 이 순간 속에 있다는 것을 왜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많은 어르신들이, 그리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지지와 응원을 받으며 그 안에서 존재하는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걸 그동안 왜 몰랐을까. 무엇이 내 눈을 가리고 내 귀를 막고 있었을까.

지금의 깨달음 앞에서 나는 어리석고 무지한 한 인간임을 인정했다.


그리고 문자 한 통이 수신됐다.

[한국도시가스] **원 연체 중.

삐~~~~~~현실로 돌아왔다.

그럼 그렇지... 내가 무슨!

시간차 공격처럼 다시 울리는 문자 알림.

[**은행] 국세청 ㅇㅇ과오납 환급금 입금.

무슨 조화 속인 지는 모르겠으나 가스연체금액을 납부하고 나면 8,260원이 남았다.

편의점 커피를 넉 잔이나 마실 수 있다. 동료들이 원하면 시원하게 내가 한 턱내고도 남는 금액이었다.

지금 이 돈의 가치를 계산하고 있는 이 순간도 나는 행복했다.

지난 시간 커피값이 없어서 친구를 만나지 못했고, 차비가 없어서 한 여름 뙤약볕에서 걸어 다녔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그래! 겸손해지자"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도 이럴 때 쓰는 말이었던가.

깊은 어둠을 지나 이제 새벽여명이 비췄을 뿐인데 조그마한 일에도 마음이 냉탕과 온탕을 넘나 든다.


그래도 입가에 배시시 번지는 미소는 나의 행복을 숨길 수 없게 만들었다.

이제 한 발짝 내디뎌 볼까?

어디로 갈지는 신이 알려주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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