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한 시간

by 문홍

나는 종종 나 자신에게 너무 늦었다고 말하곤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용기가 필요했던 많은 순간들을 망설임으로 포기한 일들이 많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망설이고 있는 순간에도 멈춰있던 게 아니다.

다만 남들보다 조심스러웠고 쉽게 결정하지 않았을 뿐이다.(이렇게 말하는 게 나에게 위로가 될까 싶어 하는 말일 수도 있다.)

세상이 빠르게 흘러간다고 모든 사람이 빨라야 하는 건 아니다. 느리게 가는 사람은 빨리 지나간 사람들이 보지 못한 풍경을 여유 있게 볼 수도 있다. (이 말도 사실 자기 위로 같아 민망한 건 매한가지다.)


3월이 시작되는 날짜 앞에 서서 눈만 깜박거렸다.

"벌써 3월이네" 힘을 쭉 빼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놓칠 리가 없다.

'벌써 3월인데 너는 언제 시작할 건데!!!'

또 시작이다. 내 안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 같은 속삭임은 나를 항상 몰아세운다.

"그래~~ 알아. 안다고"


머릿속에 번쩍 스치는 아이디어를 붙잡아 그것을 구체화시키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호기심이 발동해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과정이 내 온몸을 자극하며 살아있음을 알게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갖춰놓고 출발하려고 하면 그때부터 나는 발구르기만 연신하고 있다. 지금인가? 아닌가? 라며 망설이는 시간들.

그 시간이 반년, 일 년이 넘어가기 일쑤다.


그렇다고 망설이는 시간이 그대로 멈춰있는 것은 아니다. 애초 계획한 일에 더 탄탄한 뼈대를 세우고 살집을 키워서 좀 더 모양새 좋은 형태로 만들어가는 작업을 꾸준히 한다. (그럼 뭐 해? 시작을 못하는데.)


작년 이맘때쯤 본격적으로 시작해보려 했던 계획 하나가 아직도 출발을 못하고 표류해 있다.

올해의 시작을 알리는 보신각 종소리를 들으며,

'그래 1월에는 꼭 시작해야겠다.' 굳게 마음을 먹었었다. (3월에 시작할 거라고 다짐했으면 지금 그나마 위로가 됐으려나?)


어디서 들은 이야기지만,

인디언들은 먼 길을 떠날 때 가끔 말에서 내려 자신이 지나쳐온 길을 한동안 서서 바라본다고 한다.

그들의 영혼이 따라오는 시간을 기다려주는 의식처럼.


나는 그렇게 깊은 뜻을 갖고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 몸 안에 오장육부가 시동을 걸면 그때가 나의 '시작의 때'라는 걸.

그 망설이는 시간이 나에게도 썩 유쾌한 시간은 아니다.

온갖 변명들로 위로가 되지 않는, 참으로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한심한 시간에 나만 볼 수 있는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볼 생각이다.

출발을 계속 못하더라도 말이다.(출발을 해놓고 풍경을 담아볼 생각은 없는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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