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 도하를 경유하여 크로아티아 자그레브까지 17시간의 긴 여정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 날이 드디어 왔다.
3개월도 더 전에 크로아티아행 비행기 티켓팅을 마친 나는, 오늘이 오기까지 크로아티아와 관련된 서적을 수없이 읽고, 정보의 홍수와도 같은 인터넷 서핑으로 쏟아지는 무수히 많은 블로그를 보며 나에게 필요한 정보들을 꼼꼼하게 수첩에 써 내려갔다.
나에게 여행이란 세 번의 즐거움이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느끼는 설렘과 기대감이 그 첫 번째 즐거움이요,
여행을 하는 도중에는 낯선 장소에서 만나는 어색함과 긴장감을 은근히 즐기며 일상을 탈출해 오롯이 나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현실도피적 행복함이 그 두 번째 즐거움이요,
여행이 끝난 후에는 엄청난 양의 사진과 여행을 하며 순간순간의 기록을 남겨둔 나의 여행일기를 정리하며 다시금 여행하는 듯한 기분을 느낄 때의 짜릿함이 그 세 번째 즐거움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서 크로아티아까지 한 번에 가는 비행기는 없다.
"꽃보다 누나"에서 여배우들처럼 터키 이스탄불을 경유하여 크로아티아 자그레브로 가거나,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환승을 하여 들어가는 방법도 있고, 중동국가인 카타르 도하를 경유하여 목적지까지 갈 수도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마지막 방법을 택하였다.
인천을 출발하여 지구 상 어딘가를 경유해야만 도착할 수 있는 녹록지 않은 목적지인 크로아티아지만, 그곳에 발 하나를 내딛는 순간 이곳에 오기까지의 길고 험난했던 여정 따위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게 만들어주는 마법이 존재하는 곳이 바로 크로아티아임을 누구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공항 = 설렘
어둠이 내려앉은 인천공항이지만 내 눈엔 환하기 그지없다.
공항은 언제나 가슴을 설레게 만들어준다. 저 비행기에 탑승하면 쳇바퀴 굴러가듯 매일 똑같았던 이 일상을 벗어나 곧 눈앞에 펼쳐질 미지의 세계로 날 인도해주겠지. 그곳에서의 난 어떤 모습일까 말도 안 되는 상상을 마구 해본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소풍날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만들어주는 이곳이 난 그래서 참으로 좋다.
2016년 4월 13일 새벽 1시 20분.
그렇게 난 꿈에 그리던 크로아티아로 향하는 첫 발걸음을 힘차게 내디뎌본다.
결혼기념일을 맞아 함께 여행길에 올라준 사랑하는 나의 여행 동반자인 신랑의 손을 꽉 잡고서 말이다.
처음 타본 [카타르 항공]은 몇 안 되는 5성급 항공사이며, 항공기 내의 시설이나 좌석 수준 및 기내식 등 다양한 면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항공사라고 한다. 앞뒤 간격도 생각보다 넓었고, 담요는 물론이고 안대, 귀마개, 칫솔치약 세트 등 장거리 비행에 필요한 것들은 모두 제공해주어서 큰 무리는 없을 듯해 보인다. 조금 독특했던 것 하나는 보통 기내용 슬리퍼를 제공해주기 마련인데, 카타르 항공만의 특징인지 슬리퍼 대신 기내용 양말(?)이 제공됨은 조금 아니 많이 낯설고 신기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지만 웃으며 넘겼다.
무엇보다 한글로 적힌 메뉴판을 보자마자 난 속으로 '할렐루야'를 외치지 않을 수 없었고, 곧이어 어떤 메뉴를 먹으면 좋을지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에 빠졌다. 메인 요리의 종류가 무려 세 가지나 되다니, 이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서 먹어야 한다니, 무엇을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우습게도 온통 내 머릿속은 기내식 생각뿐이다. 11박 13일이라는 긴 여정 동안 한국을 떠나 있을 예정이었기에,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 인천공항 내 식당에서 이미 매콤한 짬뽕과 제육덮밥으로 제대로 된 한국식 식사를 한 나의 위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란 말인가.
이륙 후 정확히 30분이 지나니 바로 첫 번째 기내식이 제공되었다.
행여나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까 봐 일부러 신랑이랑 난 각각 다른 종류를 하나씩 골라서 먹어보기로 했다. 머스터드 크림소스를 곁들인 소고기 찜 그리고 치킨 불고기를 주문하였다.
카타르 항공은 처음이라서 여행을 떠나오기 전 후기들을 많이 찾아봤었는데, 기내식에 대한 평가는 호불호가 많이 나뉘는 것 같았다. 나 역시도 토종 한국인 입맛이라 그런지 김치가 너무 그리웠고, 중동국가 특유의 향이라 해야 하나, 야채며 밥이며 고기며 모두 나에게는 무리였다. 제공된 기내식을 한 입 딱 입에 넣었던 그 순간, 미리 인천공항 내 식당에서 밥을 먹고 왔던 나 자신의 선견지명에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함께 제공되는 간식류와 디저트, 음료가 있었기에 배는 채울 수 있었다. 게다가 빵순이인 나에게 카타르 항공의 빵은 최고였다. 특히, 함께 제공되는 버터가 너무너무 맛있어서 먹는 내내 "너무 맛있다"를 연발하는 나를 보며 메인 음식은 손도 안 대면서 빵과 버터에만 집착하는 와이프가 우스운지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본인의 버터를 내미는 나의 여행 동반자. 역시, 여행 동반자는 여러모로 나와 궁합이 잘 맞아야 한다는 것을 느끼며 감사한 마음으로 그의 버터까지 내가 싹쓸이하였다.
한국시간으로 새벽에 출발한 비행기라 그런 건지 탑승 때부터 밥을 먹는 동안에도 기내는 쭉 어두운 조명이었다. 긴 비행을 대비하여 가져온 책도 좀 읽고 싶고, 크로아티아 여행책도 보고 싶었지만 주변에서 다들 주무셔서 독서등 켜기가 민망할 정도였달까.
두 잔이나 마신 커피 탓인지, 마음이 들떠서인지 나는 도통 잠이 오지 않는다. 원래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잘 못 이루는 타입임에도 불구하고, 어찌나 그렇게 여행은 좋아하는지 그 점이 아이러니라는 말을 지인들에게 아주 꽤 많이 듣는 편이다. 그 부분은 내가 생각해도 이해가 잘 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나는 또 이렇게 여행을 떠난다.
새벽 3시, 4시, 5시... 점점 시간은 흘러가고 기내에서 제공되는 영화 두 편을 다 보고 나니 어느새 두 번째 기내식이 제공되었다. 난 처음 제공된 기내식을 거의 못 먹어서인지 배가 너무 고팠고, 아침식사답게 가볍게 요구르트와 함께 나온 바닐라 크림이 얹어진 와플은 생각보다 꽤 먹을만했다. 그렇다고 결코 맛있었다는 건 아니다.
두 번째 기내식을 먹은 후 약 40~50분이 지나니 곧 도하에 도착한다는 기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인천 하늘을 떠난 지 정확히 9시간 45분 만에 카타르에 도착한 것이다.
새벽 어스름이 우리를 반겨주는 이곳은 중동국가 중 하나인 카타르의 수도 도하.
도하에 도착하자마자 밀려오는 습함과 중동 특유의 향이 내 코를 찌른다. 하지만, 결코 기분 나쁜 냄새도 아니고, 4월 중순이라는 날씨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의 끈적끈적했지만 이 또한 뭐 견딜만한 습도라고 느꼈던 내 마음은 아마도 지금이 여행 중이라 가능했던 무한 긍정 마인드이지 않았을까.
워낙 넓은 도하 공항이기에 비행기에서 내려 터미널까지 우리를 데려다 줄 버스에 몸을 싣는다.
우리가 카타르 도하 하마드 국제공항에 도착했던 시간이 카타르 현지시간으로 새벽 5시 10분가량이었는데, 이렇게 이른 시간임에도 어마어마하게 많은 비행 편이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카타르가 유럽 대륙과 아시아 대륙의 중간쯤 위치하고 있어, 환승하는 손님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그땐 마냥 상상에만 맡겼는데 실제 내 눈으로 보니 믿을 수 없을 만큼 쓰나미처럼 환승을 기다리는 승객들이 몰려오더라. 아직 최종 목적지인 크로아티아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난 약간의 긴장이 되는 것인지 등에 땀이 나기 시작한다. 갈아타야 할 비행기의 출발시간까지는 2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몇 번 게이트로 가야 하며, 몇 시 몇 분부터 탑승이 가능한지, 비행기 편명은 무엇인지 등 확인은 해야 하는데 자꾸만 바뀌어버리는 화면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그때, 공항 직원처럼 보이는 남성분께서 목적지가 어디냐 물어보신다. 아마도 바뀌는 화면을 따라 엄청나게 움직이는 내 눈동자를 보셨나 보다. 고마운 마음에 "자그레브(Zagreb)"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랬더니 1초의 공백도 없이 곧장 돌아오는 대답은 "게이트, C24". 그 많은 비행기 편명의 게이트를 다 외우고 계신 걸까? 화면을 보기는커녕 생각조차 하지 않고 무조건 반사처럼 게이트 넘버가 나오는 카타르 도하 하마드 국제공항의 직원분의 엄청난 능력에 박수와 존경을 표한다. 직원분 덕분에 우린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저 멀리서부터 유난히도 눈에 띄던 노란색 대형 곰돌이. 카타르 도하 하마드 국제공항의 명물이다. 유명세답게 많은 사람들이 앞다투어 대형 곰돌이 앞에서 자신들의 발자취를 남기고 있었다. 엄청난 크기의 곰돌이만큼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자 하여 곰돌이만 단독으로 촬영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해 보였다. 특히, 아이들을 동반한 승객들은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포토존이 아닐까 싶다. 말이 대형 곰돌이지 정말 어떻게 이렇게 큰 인형을 만들 수 있었을까 상상도 잘 되지 않는 엄청난 위압감에 저절로 엄지손가락이 올라가더라. 역시 석유 부자 나라의 스케일이란.... 뭐 이 정도인 것인가?
낯선곳에서 만나는 익숙함
카타르 도하 하마드 국제공항에서는 대형 곰돌이만큼이나 유명한 것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자모카 커피(jamocha coffee). 카타르 여행을 다녀왔던 지인도 내가 도하에서 경유를 한다고 했더니 꼭 마셔보라며 강력하게 추천했던 커피였다. 왜 그리도 유명한지, 다들 왜 그리도 꼭 마셔보라 추천을 하는지 그 맛이 너무도 궁금하기도 하고, 커피라면 사죽을 못 쓰는 나이기에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순 없으니 당연히 자모카 커피를 마실 계획이었다. 하지만, 난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사실 기내에서 커피를 두 잔이나 마셨었고 그 때문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 지는 알 수 없으나 기내에서 한숨도 자지 못했기에 지금 난 꼬박 28시간째 눈을 뜨고 있다는 것.
게다가 두 번의 카타르 항공 기내식이 그저 그랬던 나는 배가 출출했고, 나와는 다르게 질투가 날만큼 내 옆에서 푹 주무시던 나의 여행 동반자는 밥보다 잠이 더 좋았는지 기내식도 거부하고 잠을 청했기에 배가 고프시단다. 결국 '자모카 커피'가 아닌 '버거킹'으로 이동하고야 말았다.
수많은 도하 공항 내의 식당들 중에서도 하필이면 눈에 익숙한 '버거킹'을 선택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그 맛을 아니까, 믿을 수 있어서. 이미 기내에서 제공된 중동 느낌 물씬 풍기는 기내식에서 한 번 식겁했기에 더 이상의 모험은 하지 않는 것이 여러모로 좋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역시 나의 판단은 탁월했다. 버거는 한국에서 늘 먹던 내가 아는 그 맛이라 그냥 익숙한 맛이었다. 그런데, 감자튀김이 상상초월로 맛있지 않은가. 한국 패스트푸드점의 감자튀김은 얇고 길고 짭짤한 맛이 특징이지만 도하 공항 '버거킹'의 감자튀김은 굵고 길쭉한 모양새에 소금을 거의 뿌리지 않은 것인지 짠맛은 거의 0에 가까웠고, 갓 튀겨서 나온 것인지 그 바삭함과 뜨끈함이 환상의 조화를 이루었다. 지금까지 내가 살면서 먹었던 수많은 감자튀김 중에서 감히 1등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만큼 맛있었다. 음료까지 세트로 나온 이 음식값은 카타르 화폐로 36 리얄인데, 한국 돈으로 계산하자면 11,500원가량의 금액이다. 정말 비싸다. 아랍에미레이트 연방을 구성하는 나라 중 하나인 두바이(Dubai)가 물가 비싸기로 유명한데 도하 역시, 만만치 않은 물가다. 하지만 인생 감자튀김을 만났으니, 먹으면서 행복했으니 그거면 되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아침 7시 5분.
도하 공항에서의 대기시간을 끝내고서 크로아티아, 자그레브로 향하는 비행기에 드디어 탑승했다. 인천에서 도하로 올 때 탔던 좌석 배열 3-5-3 비행기에 비해서는 현저히 작은 3-3 배열의 비행기였다. 하지만 정말 운이 좋게도 우리 옆에 아무도 타지 않아 그 덕분에 우리 부부는 둘이서 3개의 좌석을 사용하며 6시간의 아주 편안한 비행을 할 수 있었다.
푸른 창공을 향해 힘차게 이륙한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보는 카타르의 수도 도하의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한 켠에는 길게 쫙쫙 뻗은 건물들이 밀집되어 있고 그 너머로는 사막도 있고, 또한 바다도 있는 정말 독특한 도시의 형태가 아닐 수 없다. 두바이에 간다면 이런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언젠간 기회가 된다면 중동 국가들도 한 번쯤 여행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상상 초월로 엄청 덥고 습할 거야.
드디어 도착
비행기가 작아서인지 난기류를 통과하는 지역에 걸려서인지 유독 흔들림이 심했던 비행이었다. 기나긴 여정에 지쳐서인지 안정적이었던 이전 비행기에서는 잠 한 숨 못 잤던 나였는데, 오히려 꽤 많이 흔들렸던 이번 비행에서는 그래도 잠깐이지만 눈을 붙였던 건 정말 아이러니.
카타르 도하의 하늘을 떠난 지 정확히 6시간 후, 크로아티아 현지 시각으로 낮 12시 경이되자 서서히 내 시야에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자그레브의 풍경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행 목적지에 내 두 발이 닿기 직전인 이 순간이 난 무지무지 설렌다. 한국을 떠난 지 총 17시간 45분 만에 드디어 자그레브에 입성!
따뜻한 봄바람이 뺨에 스치는 기분이 매우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