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다르 올드타운 투어
자다르의 푸른 바다와 오르간 연주를 뒤로하고 구시가지로 향한다.
고대 로마시대에 형성된 자다르는 곳곳에 고대 로마의 향기가 짙은 도시이다. 과연 어떤 모습이길래 로마보다도 더 로마스럽다는 찬사가 쏟아지는 걸까. 흥분된 나의 발걸음이 향하는 그 첫 번째 장소는 로마의 시민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던, 로마의 상징이라고도 볼 수 있는 시민 광장인 '로만 포룸(Rimski Forum / Roman Forum)'이다. 구시가지의 중앙에 위치한 로마인들의 유적지인 로만 포룸은 안타깝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많이 훼손되어 지금은 그 잔해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포룸이라는 뜻은 오늘날의 광장이라는 뜻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상점도 있었던 도시의 심장이었다고 볼 수 있다. 지금 현재에도 자다르의 중심이자 쇼핑의 메카라고 불리는 쉬로카(Siroka) 길과 바로 연결되어 있으며, 주변에는 수많은 상점가와 카페, 레스토랑 등이 있다.
참 신기한 광경이다.
어찌 이렇게 도심 한복판에 그냥 흐트러진 모습으로 고대 로마 유적지가 있을 수가 있을까? 우리들의 눈에는 단순하고 평범해 보이는 돌덩이 하나하나가 그 옛날 고대 로마인들의 흔적인 건데 그 어떤 장치도 없다. 어떤 사람들은 그 돌 위에 앉기도 서기도 하고, 비둘기 떼들이 한 자리 차지하고 있질않나, 마치 식탁처럼 그 돌덩이 위에서 음식을 먹는 사람들도 있다. 참으로 신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 옛 유물이 발견되면 분명 박물관이나 전시관에 가져가서는 통유리 안에 넣어두고 보관하며 눈으로만 볼 수 있게 전시를 해두고서는 [넘어가지 마시오]라는 팻말과 함께 바리케이드(?)를 쳐놓을 테고, 혹여나 움직일 수 없는 유적지라 할지라도 반경 몇 미터까지는 사람의 접근을 막아놓는 어떤 장치를 분명히 해둘 텐데 말이다. 어쩌면 이곳은 그런 제한된 무언가가 없어도 옛 고대 유물이 그대로 보존될 수 있는 다른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있는 것일까.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 혹은 국민성이 만들어 낸 결과물일까.
로만 포롬 뒤편으로 살포시 걸어가 본다.
분명 내가 들고 있는 지도에는 교회라고 적혀있는데, 무언가 동글동글한 모습의 외관이 꼭 교회 같지 않을 것만 같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성 도나트 교회(Crkva Sv. Donta / St. Donatus Church)'라는 이름의 이 교회는 19세기 전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창이 없고 벽이 두꺼운 것이 특징이며, 자다르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이다. 도나트 주교의 지휘 하에 만들어진 교회이기 때문에 주교의 이름을 따서 성 도나트 교회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동글동글 귀여운 느낌마저 드는 외관과 자다르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라는 역사보다도 더 신기한 점이 한 가지 있다. 성 도나트 교회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무너진 바로 앞의 로만 포룸의 잔해들을 모아 이 교회를 지었다고 알려져 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어디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 모양이 맞지 않은 이음새가 있다거나, 전체적인 색상이 매우 얼룩덜룩하다거나, 폭격으로 인하여 그을림이 심한 부분도 잘 모르겠다. 그렇기에 더욱 대단하면서도 독특한 매력을 지닌 성 도나트 교회.
정면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성 도나트 교회의 돔 천장.
성 아나스타샤 대성당 종탑에 올라야지만 볼 수 있는 어쩌면 귀한 얼굴인 성 도나트 교회. 천장의 한 귀퉁이가 깨져있는 모습이 보여 마음이 아팠지만, 주황색 돔이 예쁜 성 도나트 교회는 오늘날엔 행사장이나 공연장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자다르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의 내부가 무지 궁금했었는데, 공연 중이었는지 어떠한 이유에서였는지 입장이 불가능하다는 팻말이 입구에 놓여있었다. 영어가 아닌 크로아티아 언어로만 적혀있어서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교회를 들어가려던 사람들도 발길을 돌리고 입구가 굳건히 닫힌 모양새가 어쩐지 들어가서는 안될 느낌이라 아쉽지만 겉모습만 구경하고는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성 도나트 교회에서 몇 발자국 움직이지 않았는데 커다란 기둥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로마시대에 만들어졌다는 '수치심의 기둥'은 중세 시대 때 이곳에 죄인을 묶어 수치심을 느끼게 했다고 하여 그 이름도 수치심의 기둥이라고 지어졌다고 한다. 진짜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이 기둥에 묶여있으면 아무리 뻔뻔한 죄인이라도 저절로 수치심이 들었을 것 같다. 어찌 보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죄인도 인권이 있다고 말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범인을 연행할 때 수갑을 찬 모습이 매스컴에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수건으로 가리기도 하고, 죄인의 신상도 보호받고 있다. 그 모든 것이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성경의 가르침에서 나온 것일지는 모르겠으나(필자는 종교가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잘못을 했으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그게 어떠한 형태로든 누구나 평범하게 인정할 수 있는 대가로 말이다.
하지만, 중세 시대라는 배경을 생각했을 때 억울하게 이 기둥에 묶인 사람들도 왠지 많았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진짜 죄인이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아무리 억울함을 호소하여도 아무도 들어주는 이 없이 가차 없이 많은 군중들 앞에서 이 기둥에 묶였을 것을 상상하니 너무나 가엽기만 하다.
수치심의 기둥을 지나 뒤편으로 가본다.
돌아서자마자 내 눈 앞에 그 정체를 드러내는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의 '성 아나스타샤 대성당(Katedrala Sv. Stosije / St. Anastasia's Cathedral)'은 12~13세기에 만들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으로 달마티아(크로아티아의 남서부, 아드리아해 연안에 있는 지방)에서 가장 크다. 성 아나스타샤 대성당이 유명해진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고 하는데, 바로 성당의 외관 정 중앙에 있는 2개의 동그란 장미모양의 창문과 3개의 회랑이 바로 그것이다.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는 대성당에서도 특히 이 장미모양으로 만들어진 창문이 핵심이라고 한다. 장미모양의 창문은 받아들이는 빛에 따라서 시시각각 그 분위기가 변한다고 하는데, 주변 노천카페에 앉아 여유롭게 차 한 잔을 즐기며 그것을 감상해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성당의 외관 구경은 이 정도 했으니 내부도 들어가 본다. 여느 서유럽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외관의 성당과는 달리 성 아나스타샤 대성당은 심플하면서도 고귀한 느낌의 외관이었기에 그 내부 모습이 어떨지 정말이지 궁금했다. 안타깝게도 성당 내부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기에 사진으로 남겨올 수는 없었지만 화려했다. 외관만 보았을 때는 상상이 불가능했을 만큼 매우 화려했다. 크로아티아에서 만난 첫 성당이기도 했기에, 조용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한 귀퉁이에 앉아 조용히 기도를 드려본다. 이번 여행도 건강하게 아무 탈 없이 무사히 마칠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리고 마음을 꽉꽉 채워서 돌아갈 수 있는 여행이 되기를...
성 아나스타샤 성당 바로 옆쪽으로 놓인 길을 따라가면 종탑에 오를 수 있는 입구가 나온다.
햇살에 반짝이는 대리석이 더욱더 그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이 길 위에 유독 연세가 지긋하신 할머님들께서 열고 계신 가판대가 많이 보인다. 손으로 직접 만든 뜨개질 관련 제품들이 주로 진열이 되어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사진을 찍고 싶을 만큼 너무나 훌륭한 작품들이 많이 있었지만, 행여나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만든 작품에 누를 끼치지는 않을까 기분이 나쁘시지는 않을까 싶어서 소심한 나는 가까이 다가가지는 못하고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았다는 슬픈 사연의 장소이기도 했다. 이때만 해도 크로아티아 여행 초반이라 아직은 낯선 여행지에 대한 두려움을 다 떨쳐버리지 못했을 때였지만, 여행이 끝난 지금 생각해보면 크로아티아에서 만났던 수많은 현지인들 중에 웃음이 없고, 무뚝뚝했던 사람은 단 1명도 없었다. 아드리아해를 매일 같이 보며 살아서 그런 걸까. 그들의 넉넉한 인품과 친절을 지금은 믿어 의심치 않건만 어쨌든 그때의 난 겁쟁이였다.
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보다는 홈메이드 제품이 유명하다는 크로아티아. 조그마한 소품이라도 하나 사 올걸.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성 아나스타샤 대성당의 종탑은 1943년 제2차 세계대전 때 폭탄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1989년에 복원됐다.
종탑의 높이는 56m이며, 180개의 계단을 오르면 자다르 시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아시아 여행과 유럽 여행의 큰 차이점이 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물론이오 가까운 중국, 일본, 홍콩, 대만, 싱가포르 등의 아시아 국가들은 대부분 그 도시를 찾은 여행객들에게 멋진 뷰를 선사하는 전망대가 따로 있다. 나라마다 도시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꽤 비싼 비용을 지불하는 대신에 편안하게 엘리베이터로 오를 수 있는 전망대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유럽은 다르다. 물론 유럽에서도 독일 드레스덴의 '프라우엔 교회'나,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종탑, 체코 프라하의 천문 시계탑처럼 엘리베이터로 끝까지 오를 수 있는 곳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럽의 도시들은 전망대=오랜 역사의 흔적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엄청난 세월을 버텨온 종탑이 바로 그 대표라고 볼 수 있다. 현대식 건축기법으로 새롭게 만든 건물이 아닌, 역사 그대로의 산물 속으로 들어가 하나하나 힘들지만 계단을 오르고 또 올라 비로소 정상에 도착하는 것. 그렇게 만나는 그 도시의 풍경은 그 노고가 들어가기에 더욱 값진 것이 아닐까.
성 아나스타샤 대성당 종탑 매표소 앞으로 간다.
입장료는 15쿠나(약 2,600원)이고, 크로아티아 화폐인 쿠나도 유로도 모두 사용 가능하다. 대부분의 유럽권 나라에서 달러는 통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유로는 특히, 관광지의 경우에는 거의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종탑의 총길이는 56m이지만 전망을 볼 수 있는 장소는 42m 즈음에 위치하고 있다는 표식과 함께, 180개의 계단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계단 앞에 섰다. 파이팅!!
열심히 열심히 계단을 오르다 보니 어느새 종이 내 눈앞에 보인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그런 종이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이 종은 과연 몇 번이나 울렸을까.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낡은 종을 뒤로하고, 다시 열심히 계단을 오르다 보니, 어느덧 마치 천국으로 향하는 문처럼 생긴 갈색의 문이 보인다. 108개의 계단을 오르느라 힘들어서 그런지 정말 저 문을 열고 나가면 마치 천국에 닿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해냈도다, 108개의 계단이여.
과연, 어떤 풍경이 내 눈앞에 펼쳐질까?
와우!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마주한 자다르의 멋진 풍경에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사진의 중앙으로 쭉 뻗은 거리가 바로 앞서 설명했던 자다르 올드타운의 중심이자, 쇼핑의 거리라고 불리는 쉬로카(Siroka ulica) 길이다. 이 길로 쭉 걸어가면 자다르의 또 다른 명물이라 볼 수 있는 나로드니 광장과 5개의 우물까지 갈 수 있다. 종탑에서 내려간 내가 걸어가게 될 길이기도 하다.
그림이 따로 없구나.
360도 모두 막힌 곳 하나 없이 사방이 모두 확 트여있으니 참 좋다. 힘들지만 참고 열심히 올라온 보람이랄까? 나에게 선사해주는 자다르의 선물이 너무나 크게 느껴진다.
나의 여행 동반자와 함께 우리가 머무르는 숙소도 찾아본다.
위에서 바라보니 다 비슷해 보이는 주황색 물결 속에서도 우리가 묵고 있는 아파트는 또 기가 막히게 찾아낸다. 우습지만 외국에서도 집은 절대 잃어버리지 않겠다는 의지와 집착 같은 것일까. 내 집도 아니거니와 달랑 하루 머물다가는 숙소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실제 우리가 집 소유주인 양 한참을 그렇게 아파트 이야기로 수다를 떨었다. 때마침 종탑에 관광객이라고는 올라와서부터 내려갈 때까지 나와 여행 동반자 달랑 둘 뿐이어서 주변 신경 쓰지 않고, 한국말로 마음껏 신명 나게 놀았던 것 같다.
햇살도 너무나 따스하고, 바람도 적당히 선선히 불어주고,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자다르의 그림 같은 풍경이 눈앞에는 펼쳐지니 또 한 번 느끼게 된다.
자다르, 크로아티아에 오길 정말 잘했다.
종탑에서 내려온 나는 내 앞으로 쭉 펼쳐진 쉬로카(Siroka) 길을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많은 상점들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던 가게 하나. 왼쪽의 사진은 기념품 가게의 한쪽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자다르의 풍경을 그린 액자들. 하늘과 구름, 그리고 파란 바다 위에 자다르를 상징하는 여러 건축물들이 입체감 있게 표현된 작품들이 정말이지 너무나 멋지다. 정말 이보다 더 자다르를 잘 표현해내는 기념품이 또 있을까. 참을 수 없이 갖고 싶은 마음에 나의 지갑은 당연스레 열렸고, 저들 중 하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눈 앞 벽에 고스란히 걸려있다. 이 액자를 볼 때마다 자다르를 떠올려야지,라고 생각하며 샀었는데 정말로 난 그때의 결심을 그대로 실현이라도 하는 것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액자를 볼 때마다 생각한다. 나의 자다르를.
그리고 오른쪽 사진은 여행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마그넷.
마그넷이 다른 여행기념품에 비해서 휴대도 편하고, 가격대도 부담스럽지 않기 때문에 많은 여행객들이 선호하는 것 같다. 나 역시도 도시마다 마그넷 모으기가 취미인데, 자다르에서 만큼은 이미 사버린 나의 액자보다 더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었기에 마그넷은 그냥 구경만. 마그넷은 어딘가 흔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눈에 자다르는 결코 흔하지 않은 예쁘고 앙증맞은 다양한 디자인의 마그넷이 있었노라 기억하는 도시 중 하나이다.
갖고 싶던 자다르 액자를 손에 쥐고 걷는 길은 룰루랄라 신명이 난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반짝반짝 윤이 나는 대리석 바닥을 미끄러지듯 걷다 보니 어느새 도착한 '나로드니 광장(Trg Narodni / Narodni Square)'은 자다르 올드타운의 중심이기도 하다. 그리 넓지는 않지만 주변에는 관광안내소를 비롯하여 카페, 레스토랑 등이 즐비하고 시청사와 시계탑까지 있는 말 그대로 현지인들에게는 만남의 광장으로도 불린다고.
광장에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그리고 파란 천막을 드리운 가판대의 행렬이 엄청나게 늘어서 있는 모습이 우리나라 식으로 표현하자면 장터(?)가 열렸거나, 혹은 무슨 행사 중인 것 같기도 하다. 크로아티아 전통복장 느낌의 똑같은 의상을 입은 청춘 남녀들이 꽤 많은 걸 보니. 왠지 평소에 늘 이런 모습은 아닐 것 같고, 오늘이 뭔가 특별한 날인 것 같다. 나에게 자다르를 여행하는 오늘이 특별한 날인 것처럼 그들에게도.
요즘은 우리나라도 버스킹이 꽤 많아졌지만, 예전에는 진짜 잘 없었다.
그래서 외국에 나오면 꼭 이런 광경을 접했을 때, 내가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와 있다는 걸 새삼 느끼곤 했던 것 같다. 크로아티아의 다른 도시들을 갈 때마다 버스킹을 봤었는데, 거리의 악사분들이 진짜 유독 실력이 좋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것이 악기 실력이든 노래실력이든 무대매너든 그 어떤 것이든 말이다. 대학시절, 음악동아리에서 만난 우리 부부는 그래서 해외여행을 다닐 때 그곳이 어디든 음악이 흘러나오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듣고 서있다. 둘 다 음악을 정말로 좋아하니 그건 우리에게 그냥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로드니 광장을 벗어나 몇 발자국 가지 않아 엄청난 유적지가 또 날 반긴다.
자다르는 정말 여행을 하기에도 참으로 좋은 도시이지만, 관광을 하기에도 너무나 좋은 도시이다. 이동수단은 오로지 튼튼한 두 다리만 있으면 되고, 그리 비싸지 않은 입장료에 아주 보존이 잘 된 유적지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유적지들이 다 가까이에 붙어있어서 이동에 아주 용이했다.
5개의 우물(Trg 5 Bunara / 5 Wells Square)이라 불리는 이 우물들은 16세기에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성벽 주변으로 만든 것이다. 오스만 투르크족의 공격에 대비하여 비상 식수원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현재까지도 보존이 잘 되어있어 물을 길어 올리던 도르래도 남아 있으며, 일렬로 쭉 늘어서 있는 5개의 우물이 아주 볼만하다. 16세기면 도대체 언제야? 그때부터 사용되던 우물이 현재까지도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는 게 가히 놀랍다. 유독 자다르에서 'Bunara'라는 이름의 식당을 꽤 많이 봤던 것 같은데, 그게 바로 '우물'이라는 뜻이었다는 것. 그만큼 자다르 사람들에게 우물이라는 단어 자체가 큰 의미라는 것이겠지?
5개의 우물을 끝으로 자다르 올드타운 투어가 끝났다.
업체를 통해 예약을 하고 가이드분의 설명을 들으며 단체로 움직이는 패키지 투어는 자유로움이 너무 없어서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선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도 그 나름의 장점은 분명히 있다. 자유여행으로는 그냥 스쳐 지나갈법한 장소나 그에 얽힌 재미난 에피소드 등 가이드분의 입을 통하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사실 여행지에서 매우 많은 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 패키지는 아니어도 가끔씩 이것만큼은 꼭 전문가들을 통해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생각하는 투어들은 나도 종종 신청하는 편이기도 하고.
하지만 여행 전 얼마만큼 공부를 하고,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고 준비하냐에 따라서 자유로움은 보장받되 내가 만들어가는 나만을 위한 패키지 투어도 가능하다 생각한다. 나 스스로 동선을 정하고, 그에 관한 역사적 이야기들을 찾아보며 느리지만 완벽하지는 않지만 서툴더라도 찾아가는 재미가 또 쏠쏠하니까. 이미 그때부터 사실상 여행은 시작된 거나 다름없다고 본다. 여행을 준비할 때만큼은 누구나 의지가 활활 불타오르고 열정적이니까. 누군가에를 따라가는 여행보다는 내가 주체가 되어 이끌어가는 그런 여행이 또 세월이 흘러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선호하는 여행 스타일이란 정말 각기 다른 법이니 사실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게 어떠한 형태로든 내가 행복하고 내가 만족스러우면 그것이 가장 좋은 여행이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