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다녀올게요

여행의 이유

by 최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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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이 이루어지는 순간 권태가 싹틉니다. 내 친구는 자동차에 미쳐서 결혼도 하지 않았습니다. 좋은 차를 사는 것이 다른 어떤 것보다 좋았기 때문입니다. 돈이 별로 없었을 때는 국산 자동차를 튜닝해서 남다르게 타고 다니더니 직장을 가진 이후는 외제차를 끌고 다녔습니다.

처음에는 중고차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무리를 해서 새 차를 사더군요. 그토록 소원했던 B사의 스포츠형

모델을 사고 황홀감에 젖어 있던 그 친구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천하를 주고도 이 기분은 살 수 없을 거야.”

1억 원 가까운 돈을 주고 친구는 ‘기분’을 샀고, 그 기분이 권태로 바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자동차 동호회에서 A사의 자동차를 시승하고 온 날부터 그의 애마는 열정과 애정이 식어 버린 애인 취급을 받게 되었습니다. 행복은 사하라 사막에서 자주 나타나는 신기루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행복이라 생각하는 순간 행복은 이미 사라져버립니다.

우리는 모든 것에 쉽게 권태를 느끼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애인에게도 배우자에게도 심지어 인간관계에서 조차 권태를 느낍니다.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권태를 관태기라 하더군요. 권태를 느끼는 이유는 더 이상 열정과 애정을 쏟았던 대상에게서 흥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권태를 느끼는 것은 열정의 대상이 변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자신의 내면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가치 있는 것을 알아보는 눈이 흐려졌기 때문입니다.

여행은 권태를 해결하는 가장 지혜로운 해결 방법입니다. 적어도 여행을 떠나며 권태를 느끼는 이는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여행을 시작한 것도 권태로운 일상을 벗어나고 싶어서였습니다. 전 세계 여러 곳을 다녔습니다.

덕분에 남들이 가보지 못했던 나라를 많이 다녔습니다.

신드바드의 나라 오만, 암벽 궁전인 페트라가 있는 요르단도 다녀왔습니다. 자연 풍광이 황홀한 노르웨이도 가봤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여행은 권태로움을 주지 않았습니다. 같은 곳을 또 가도 지겹지 않았습니다. 여행 기자를 하다 잠시 다른 부서 업무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정신없이 일에 취해 있다 문득 하늘을 보니 비행기가 날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얼어붙었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습니다. 가슴을 뛰게 하는 빛나는 감정을 주체할 길이 없었습니다.

가슴을 뛰게 하는 빛나는 감정을 주체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다시 여행 기자로 돌아왔습니다. 예전처럼 여행을 많이 다니지는 못해도 떠나는 그 순간

의 희열은 처음 여행 기자를 하던 때와 별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시 심장이 얼어붙지 않도록 조심할 것입

니다.

당신은 지금 권태로운가요? 그렇다면 떠나세요. 권태로운 세상을 이겨 낼 가장 큰 위안은 바로 여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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