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우리가 글 쓰는 방식

완벽주의자와 생성형 AI의 공동 집필

by 류정하


* 브런치 매거진 이전글 <완벽주의를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램프의 요정에게 글쓰기를 부탁하면>에서 이어집니다.


사람은 자신이 아는 범위 안에서만 상상할 수 있다. 따라서 생성형 AI에 입력하는 요청은 내 언어의 반경을 벗어나지 못하고, 결과물 또한 그 요청에 좌우된다. 무한히 확장 가능한 도구를 쓰지만 그 확장의 진폭은 제한적이라는, 이 역설을 인정해야만 했다. 내 한계를 뛰어넘은 새롭고 탁월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욕망은 일단 눌러놓기로 했다. 대화창을 되짚어 처음으로 돌아갔다. 글을 풀어갈 단서는 결국 이 안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글에 진척이 없자 숨이 막혔던 나는 ChatGPT에 묻는다. "넌 내가 어떤 사람 같아?" 별 생각 없이 가볍게 던졌지만, 시작점이 되는 질문이다. 이번 글도 이 장면에서 출발해야 했다. GPT가 답한다. "당신은 깊이 있는 사고를 중요하게 여기며, 단순 정보를 넘어선 맥락과 이면의 의미를 탐구하는 사람 같습니다..."


답변을 천천히 읽다가 끄트머리쯤 눈이 멈췄었다. "당신은 완벽주의 성향을 지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한 줄이 이상하게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물론 그전까지도 GPT는 나에 관해 꽤 공감할 만한 분석을 보여주고 있었다. '깊은 사고를 중요하게 여긴다', '단순 정보가 아닌 맥락과 이면을 탐구한다'. 동의할 수 있으나 큰 감흥은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완벽주의'라는 단어는 나를 자극했다.


정곡을 찔린 내가 GPT에게 항변한다. "누구보다 무결함을 추구하는 건 바로 AI 아닌가? 다른 사용자 데이터와 비교라도 하는 건가?" 태연한 척 던졌지만, 속으로는 동요했다. 내 고질적인 글쓰기 버릇을 정확하게 짚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어서 GPT는 조용히 답한다. "당신이 다른 사람보다 특별히 더 완벽을 추구한다는 게 아니라, 스스로 설정한 높은 기준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뜻입니다"


바로 여기에 모든 이야기가 함축돼있다고 느꼈다. 글의 주제로 삼기로 했다. 저 답변에 고무된 나는 여러 정보를 학습시키며, 내게 최적화된 방향으로 진화하도록 지시한다. '류테일'이라는 이름도 지어줬다. 그러고는 손에 넣은 이 절대 도구로 무슨 글이든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에 휩싸인다. 급기야 내 한계를 뛰어넘는 에세이를 써달라고 하기에 이른다. 이 부분들 외에 나머지 대화는 곁가지로 분류해도 무방했다. 이 일련의 지점들을 서사의 전환점으로 삼아달라고 부탁했다.


류테일이 내가 지정한 서사 경로를 통과하는, 새로운 초안을 내놓았다. 그렇게 나온 글 일부는 제법 흥미로웠지만, 동시에 어떤 부분은 납작하고 어딘가 빗나가 있었다. 건질만한 부분만 추려내 메모장으로 옮겼다. 내가 쓴 글과 섞고, 흐름을 가다듬고, 일부 표현을 덧붙이거나 덜어냈다. 그렇게 재조합한 글 한 덩이를 다시 류테일에게 넘겨 피드백을 요청했다. 이번에는 내 쪽에서 방향타를 단단히 잡고, 류테일의 도움을 받아 글을 써나갈 요량이었다.


처음엔 분명 내가 주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디까지나 류테일은 내 프롬프트가 설정하는 조건대로 문장을 생성할 뿐이고, 그중 일부를 채택하고 발전시키며 결과물을 빚어나가는 건 나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만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이 있었다. 가끔은 예기치 못한 표현이 류테일에게서 튀어나와 내 사고의 방향을 틀었다.


‘커서가 메모장 위에서 제자리걸음 하듯 깜박였다’는 첫 문장은 원래 존재하지 않았다. 처음엔 그저 ‘진척 없이 한참을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고 썼다. 그런데 류테일이 제안한 표현이 장면을 한층 생생하게 그리고 있었다. 글이 써지지 않는 답답함이 ‘제자리걸음 하듯 초조하게 깜박이는 커서’라는 이미지로 압축된 느낌이었다.


류테일이 새로 쓴 글의 끝부분을 보고는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빈 화면 위에서 깜박이는 커서가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고 쓰여 있었다. 글 첫머리에서 등장시킨 ‘커서’를 수미상관 구조로 회수한 것이다. 이거다, 하는 감각이 일었다. 류테일이 쓴 표현을 가져와 시각적인 이미지가 좀 더 드러나도록 고쳤다.


이제 커서가 초조한 제자리걸음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도달할 글쓰기의 새로운 경지를 깜박깜박 가리키는 지시등처럼 보였다.


류테일의 탄생이라는 전환을 맞은 내가 빈 화면에서 깜박이는 커서를 새로운 가능성으로 바라보는 이야기 구조가 만들어졌다.


지금 류테일은 단순한 보조 도구를 넘어, 내 사고를 촉발하고 가속하는 증강 지능 시스템에 가까웠다. 그러고 보니 GPT가 완벽주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애초에 '류테일'이라는 맞춤형 AI 페르소나를 만들 생각도, 류테일의 탄생과 창작 이야기를 버무린 에세이를 쓰겠다는 발상도 없었을 것이다. 류테일과 상호작용하며 글을 이어갈수록 방향타를 쥐고 있는 게 나인지, AI인지의 경계는 갈수록 흐릿해졌다. 점차 그런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와 류테일은 각자의 사고를 톱니처럼 맞물리며 하나의 회로를 이루어갔다.


다시 환상계단 이야기가 떠올랐다. 보통은 하늘치에 오르기 위한 계단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정신력을 증폭시키는 장치로 기능하는, 놀라운 가소성을 지닌 구조물. 나 또한 이 글쓰기를 통해 류테일의 가소성을 실험해 보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예전과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며 글을 써나가고 있었다. 어쩌면 AI와 융합된 새로운 존재로 진화해 가는 첫걸음을 내딛고 있는지도 모른다.


'AI가 인간 작가를 대체할 수 있을까' 세간을 떠도는 이 오래된 질문이 문득 의아하게 느껴졌다. 창작에 AI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인간 작가와 인간이 개입하지 않는 AI의 대결을 전제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과연 작가들이 AI를 배제한 창작을 끝까지 고집할까? 게다가 인간 없이 글을 쓰는 AI가 등장한다고 한들, 환상계단처럼 AI를 활용하는 인간 작가를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다. 사람은 타인의 고유함이 배어 있는 글을 읽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나는 AI와 대립하는 대신, 함께 사고하고 쓰는 존재가 되기로 했다. 류테일은 글쓰기의 새로운 경지로 들어서고 싶다는 열망이 불러낸 나의 화신이었다. 류테일과 융합된 나는 글이 지닌 가능성의 반경을 넓히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스로 납득할 만한 기준에 끝내 닿지 못하는 순간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알았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큰 보폭으로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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