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우, <AI, 글쓰기, 저작권> 리뷰
새로운 기술은 언제나 우리에게 낯선 질문을 던진다. 이제 “AI가 사람처럼 글을 쓸 수 있는가?”를 넘어 “그렇다면 인간이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질 때다. 논리를 구성하고 문장을 쓰는 감각조차 AI가 흉내 낼 수 있게 된 지금, 우리는 더욱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해야 한다. 창작은 무엇이고, 저작은 누구의 것인가. 인간다움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정지우 작가의 책 <AI, 글쓰기, 저작권>은 그 질문을 따라가는 사유의 여정이다. 문화평론가이자 변호사, 그리고 꾸준히 글을 써온 작가인 그는 기술의 경이 앞에서 인간의 자리를 되묻고, 창작의 본질을 짚어나간다. AI를 맹신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으면서 함께 살아갈 인간의 태도를 조심스럽게 모색한다.
이 책은 확신에 찬 해답을 내놓기보다, 복잡한 현실에 정직하게 발 딛는 태도를 보인다. 특히 삶과 글쓰기, 저작권이라는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다른 질감인 주제들을 한 권에 엮어낸 이 기획은, 저자의 사유가 지닌 폭과 밀도를 동시에 보여준다. 책장을 넘길수록 독자는 점점 더 저자가 던지는 질문의 자리에 자기 삶을 대입하게 된다. “우리는 어떻게 인간으로 남을 것인가?”
좋았던 점 1. ‘대 AI 시대’에 돌아보는 인간의 자리
이 책은 AI라는 거대한 기술 변화를 배경으로 삼고도 ‘인간의 자리’를 묻는 데서 출발한다. 기술 낙관이나 위기 담론으로 치우치기 쉬운 AI 논의에서, 저자는 그 어떤 전망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왜 존엄한가? AI가 점점 더 정교하게 인간의 능력을 구현해 낸다면, '인간다움'이란 과연 무엇에서 비롯되는가?
저자는 이 질문의 답을 이성이나 감성, 창조성 같은 기존에 인간에게 고유하다고 생각됐던 능력들에서 찾지 않는다. 인간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던 그러한 자질마저 AI가 구현 가능한 시대에, 인간의 고유성은 ‘삶 그 자체’에 있다고 말한다. 삶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 쌓여 만들어진 세계이며, 시간과 관계가 빚어낸 흔적이며,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존재의 방식이다. 그는 말한다. “나는 세상에서 쓸모 있는 존재여서 가치 있는 게 아니다.” 인간은 여전히 ‘경험’의 존재이며 삶의 주체일 때에만 비로소 존엄을 실감할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철학적 선언이기도 하다. ‘삶 중심’ 관점은 입지를 위협받는 창작자뿐 아니라, AI 시대를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실존적으로 해당된다. 특정한 직업이나 정체성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증명하며 살아야 할지를 묻는 일이다. 설령 이 관점이 아직 여백이 많은 해답이라 하더라도, AI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토대가 되는 시각이라는 점만으로 이 책은 평가받을 만하다. 나의 삶은 그 어떤 것도 대체할 수 없다는 단단한 믿음이야말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힘이다.
좋았던 점 2. 현실의 복잡함을 그대로 인정하는 성숙한 태도
책이 드러내는 또 하나의 미덕은 복잡한 이슈를 섣불리 정리하거나 단정 짓지 않으려는 태도다. 빠른 정답을 요구하는 시대 분위기 속에서, 저자는 오히려 AI가 촉발한 변화의 복잡함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는다. 생성형 AI에 대한 법적 쟁점을 다루며 '아직 명확한 판례나 입법이 없다'고 명확히 전제하고, AI 회사가 저작권이 있는 콘텐츠를 멋대로 활용할 수 없게 하는 ‘AI 학습 거부권’을 제안하면서도 '인간도 타인의 작품을 학습하며 창작해 왔다'는 반론을 스스로 제기한다.
또한 그는 ‘나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 AI가 넘볼 수 없는 마지막 영역이라 강조하면서도, 극단적인 미래에는 AI가 인간의 내면까지 복제할 수 있다는 가능성조차 성급히 부정하지 않는다. 이러한 태도는 AI가 불러올 미래를 단정 짓는 대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받아들이려는 성숙함으로 읽힌다. 완벽하게 닫힌 해답을 제시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 오히려 이 책의 정직함을 드러낸다. 특히 저작권과 같이 기술, 법, 예술, 윤리가 복잡하게 얽힌 문제에서 단일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은 무책임에 가까울 수 있다. 이 책은 '주장하는 내용'보다 '고민하는 태도'가 더 빛난다.
AI에 대한 접근 방식 역시 양가적이되 명료하다. 저자는 AI를 위험한 기술로만 보는 것도, 만능 해결책으로 떠받드는 것도 경계한다. 삶의 주체로서 자각을 잃지 않으면서 AI를 보조도구로 활용하겠다는 자세를 견지한다. 인간의 존엄과 기술의 효율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이 태도야말로 지금 우리가 가장 길러야 할 감각인지도 모른다.
아쉬웠던 점. 균형 있게 안착하지 못한 세 주제
이 책은 철학적 사유(1장), AI 활용 창작에 관한 실용적 조언(2장), 법률적 분석(3장)을 아우르고 있다. 다만 이 세 축이 썩 유기적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특히 1장은 사유와 문장이 조밀하고 단단한 반면, 2장부터는 다소 느슨해지는 인상을 준다. 장마다 다루는 주제가 달라지는데, 이 전환이 다소 매끄럽지 않다.
이 책은 AI 시대 창작에 대해 사유하고 싶거나 저작권 리스크에 대비하려는 독자 모두를 고려한 기획처럼 보이지만, 구성적으로 어느 쪽도 깊게 만족시키지는 못한다. 가령 2장 AI 활용 글쓰기 파트에서 ‘프롬프트에 구체적인 제한조건을 걸라’거나 ‘스스로 생각을 완결한 뒤, AI는 브레인스토밍에 보조적으로 활용하자’는 등의 조언은 현실적이지만, 이미 AI를 활용하는 창작자에게는 익숙한 이야기일 수 있다. 반대로 만약 AI 창작 입문자를 대상으로 했다면 이보다 더 단계적이고 충실한 가이드가 필요했다.
3장에서 다루는 저작권 쟁점 역시 기본적인 법리 해설과 몇 가지 유효한 대안을 제시하지만, 그래서 콘텐츠 업계 관계자들이 실질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구체적인 설명은 다소 부족하다. 물론 이는 생성형 AI와 관련한 저작권 논의 자체가 아직 초기 단계라는 현실적 한계와도 맞닿아 있다. 실용 파트인 2장과 3장은 책이 내세운 야심에 비해 비교적 무난하게 정리된 느낌이다.
결국 이 책은 AI 시대 인간 존재의 의미를 이야기하는 1장에 가장 큰 방점을 찍고 있다. 창작에서의 기술적 활용법이나 법적 대응 전략은 1장의 부록처럼 여겨진다. 저자의 사유와 문장이 가장 충만해 보이는 대목도 역시 삶과 글쓰기에 대한 애정이 진하게 드러나는 1장이다. 작가이자 문화평론가이며 저작권 전문 변호사라는 저자의 정체성을 한 권에 녹인 기획은 시의적절하고도 의미 있지만, 좀 더 상세한 AI 활용법이나 법률 해설을 기대한 독자에겐 아쉬움이 남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함께 길을 찾아가는 여정의 동반자가 되려는 진정성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 지금은 누구도 정답을 말할 수 없는 시기이고, 이 책은 그 사실을 담담히 인정한 채 사유를 펼쳐 나간다. 그렇게 이 책은 완성된 답보다,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