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촉사고가 생명의 접촉사고가 되던 날

말씀이 기도가 되는 자리에서

by 간달프 아저씨

화요일이었다.
화요성경공부 멤버들과 차를 타고 야유회를 다녀왔다.

밥을 먹고, 송추계곡을 걷고, 커피를 마셨다.
사람 사이에 생기는 그 따뜻한 여유가 좋았다.
그날은 웃음이 많았고, 말도 많았다.

그런데 사실, 한 가지 목적이 더 있었다.
교회 운전봉사를 위해 면허를 딴 한 형제.
그 형제에게 운전연수를 시켜주기 위해서였다.

마을 길을 몇 바퀴 돌며 연습했다.
그리고 고속도로로 나갔다.
처음 고속도로에 들어서는 손은 늘 조금 더 굳는다.
운전대를 잡은 마음이, ‘조심하자’고 계속 말한다.

사고는 길게 오지 않았다.
순간이었다.

차선을 바꾸는 찰나, 옆 차를 보지 못했다.
접촉사고였다.
고속도로 사고는 자칫 생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다친 사람은 없었다.

보험처리도 잘 됐다.
피해 운전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상대는 다른 약속이 있다며 급히 떠났다.
상황은 그렇게 “정리”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토요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상하게, 자꾸 생각이 났다.
‘이 만남이 여기서 끝나면 안 되는 것 같은데…’
그 마음이 내 안에서 계속 울렸다.

그래서 전화를 드렸다.
보험은 잘 처리되었는지, 몸은 괜찮은지.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는 목사입니다. 축복해드리고 싶습니다.”

처음엔 바쁘다고 하셨다.
그런데 “꼭 축복하고 싶다”고 다시 말씀드리자, 허락하셨다.

나는 마음껏 축복했다.
아이가 없다고 하셔서 아이가 생기기를 축복했고,
안전운전을 위해 축복했고,
만나는 사람마다 행복하게 하는 사람이 되기를 축복하며 기도했다.

믿음은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는 것이라고 짧게 전했다.
그리고 영접하는 시간도 가졌다.
상대는 급히 가야 할 곳이 있어 복음을 길게 전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물었다.

“예수님은 지금 어디 계실까요?”

그분이 말했다.
“제 마음에요.”

그 한마디가 마음에 오래 남았다.

그리스도인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다.
주님의 눈으로 바라보면, 사건도 만남이 되고, 만남은 생명이 된다.
편치 않은 마음이 나를 전화로 이끌었고,
그 전화가 한 영혼을 구원의 자리로 이끌었다.

그날의 접촉사고는,
생명의 접촉사고가 되었다.

말씀이 기도가 되고, 삶이 되는 한 해

올해는 말씀으로 시작하고 싶었다.

남산블래싱에 나오는 청년 한 명에게 말씀암송을 시켰다.
토요일, 다섯 구절을 암송했다.
이미 알고 있던 구절도 포함해서.

그 모습을 예배 봉사자분들께 보여드렸더니, 한 분이 도전을 받으셨다.
그리고 정말 암송을 시작하셨다.
주일예배에서 두 사람이 다섯 구절을 암송했다.

한 달간 공원예배를 쉬게 되어,
1부 예배 후 함께 밥을 먹고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먼저 암송 나눔을 했다.
85세 권사님의 암송이 시작이었다.
말씀 율동도 하고, 예배에서 암송했던 분들이 다시 암송했다.
나도 워드바이핫으로 빌립보서 2장을 암송했다.

그리고 다음 주 본문(요 1:19-28)을 미리 묵상하고 함께 기도했다.

말씀이 기도가 되고,
기도가 삶이 되는 한 해.
그 한 줄을 소망한다.

청년예배, 천천히라도 함께

청년예배가 시작된 이후, 아직 예배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정립되진 않았다.
무엇보다 대부분 일을 하는 청년들에게 그 시간에 나오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몇몇 청년들과 나눔을 가졌다.
일단 정착될 때까지, 한 달에 한 번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이번 주엔 일곱 명이 모였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청년이 왔다.
단꿈아동으로 지내다가, 12년 만에 다시 만난 청년이었다.

예배 후엔 고기뷔페에 들러 밥을 먹었다.
함께 먹는 밥에는 이상하게 마음이 더 붙는다.

단꿈청년들이 아름다운 예배자로 세워지고,
언젠가 그들 입에서 “예배를 더 드리자”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기를,
나는 조용히 기대한다.

남산에서 만난 청년들, 그리고 한 문장

월요일 오후, 남산블래싱을 갔다.

남산 중턱에서 두바이와 모로코 등지에서 온 청년들을 만났다.
7~8명쯤 되었고, 전형적인 무슬림의 모습이었다.

나는 친밀하게 인사했다.
그리고 소금을 불어 축복했다.

아리랑을 연주했고,
타이타닉의 마지막 곡(“내 주를 가까이…”)도 들려주었다.
그들은 연주를 카메라에 담느라 바빴다.

나는 축복을 말했고, 예수를 전했다.
그들이 예수를 예언자로만 알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도 전했다.
그분이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고, 영생을 주시는 분이라고.

목사라는 신분과 사역을 밝히고 전도지도 건넸다.
청년 세 명이 헌금을 했다.
사양했지만, “노숙인을 위해 하는 것”이라며 내 손에 쥐어주었다.

영접의 시간까지는 가지 못했다.
그래도 그들은 전도지를 기꺼이 받았다.
서로 친밀하게 인사하며 헤어졌다.

나는 마지막으로 한 문장을 남겼다.

“Jesus loves you. You are precious.”

호주에서 온 남매에게도 블래싱을 했다.
크리스천이었지만 구원의 확신이 없었다.
나는 그리스도께서 그 마음에 영원히 계심을 확인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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