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의미보다는 시민의 역할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유시민, <국가란 무엇인가>
❖ 내가 아는 국가와 내가 겪는 국가의 부조화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2017년 3월 10일, 당시 이정미 헌법재판관이 헌재소장 대행으로 읽은 판결문의 일부이다.
탄핵은 그렇게 인용되었다.
4.19혁명과 5.18광주민주화 운동을 눈으로만 따라 읽었고, 6월 민주항쟁은 아버지의 자동차틈으로 새어들어온 최루탄으로 경험했던 나는, 나의 힘과 시민의 집단지성으로 무능한 정부를 교체해야 된다고 생각만 했지 그게 가능하다고는 믿지 않았다.
사실 그때까지 살아오며 국가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없다. 다만 국가는 어떠해야 한다고만 생각했었다. 왜냐하면 이미 국가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의 개념은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된다. 가정이 무엇인지, 직장이 무엇인지처럼 말이다. 그러나 경험으로 체득하는 개념은 그 시대적 환경 그리고 개인의 체험에 따라 다르다. 그래서 세대간, 세대 안에서 각자가 생각하는 국가관이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피통치자인 시민과 통치지안 권력자 간의 국가관도 같을 순 없다.
작년 이맘때쯤 작가 한강은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수상했습니다. 수상이 발표되자 우리나라 언론은 일제히 한국인 최초, 맨부커상 수상이라는 타이틀로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디선가 '한 개인의 영광을 국가가 가로챈다'는 비난의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글의 요지는 대강 우리나라는 개인을 위해서 특별히 해주는 것도 없으면서 그 영광은 나라의 것으로 생각한다, 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 사례로 김연아 선수와 박태환 선수를 들더군요. 어느 선까지는 맞고 그 이상은 틀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문득 국가가 무엇인가, 보다는 국가는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국가가 무엇인지 알고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속해 있는 국가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해 보지 않습니다. 그것은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이 무엇인지, 직장이 무엇인지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경험으로 체득하는 개념은 그 시대적 환경 그리고 개인의 체험에 따라서 다릅니다. 그래서 세대 간, 세대 안에서 각자가 생각하는 국가관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피통치자인 시민과 통치자인 권력자 간의 국가관도 같을 순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내가 생각하는 국가관대로 운영이 되지 않고 국가가 다르게 운영된다면 어떨까요, 실제로 피통치자와 통치자의 국가관이 같을 수 없으니 그런 일은 쉽게 발생합니다. 그런 일이 발생하면 우리는 인지부조화로 인한 충격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생각해 봅니다. 국가란 무엇인가, 하고 말입니다.
요즘이 딱 그런 때입니다.
❖ 국가보다는 시민, 포장지보다는 내용물
국가론은 크게 국가주의, 자유주의, 마르크스주의, 목적론적 국가론으로 구분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명칭을 정확하게 몰라서 그렇지 설명을 들으면 본인의 국가론이 대충 그려집니다. 그리고 이해도 가고요.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국가의 의미를 아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가 이렇다면 그 안에 살고 있는 시민은 어떠해야 하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어떤 훌륭한 지도자가 나타나서 정의를 실현할 능력이 있는 국가를 만들어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아무리 뛰어난 개인도 혼자 힘으로 훌륭한 국가를 만들지는 못한다. 훌륭한 국가를 만드는 것은 주권자인 시민들이다. 어떤 시민인가? 자신이 민주공화국 주권자라는 사실에 대해 대통령이 된 것과 똑같은 무게의 자부심을 느끼는 시민이다. 주권자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가 무엇이며 어떤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지 잘 아는 시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책임지면서 공동체의 선을 이루기 위해 타인과 연대하고 행동할 줄 아는 시민이다. 그런 시민이라야 훌륭한 국가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 p. 310.
국가가 무엇인가의 의미보다 그 구성원이 시민이 어떠한가 가 더 중요합니다. 그 시민이 국가의 의미를 만들어 가기 때문입니다.
방금 전에 요즘이 딱 그런 때라고 했습니까. 어쩌면 요즘이 아니라 늘 딱 그런 때일지도 모릅니다. 국가의 모습은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변모하는 시대의 요구와 필요에 따라서 국가의 모습 역시 달라집니다. 기존의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보수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자 하는 진보는 늘 대립합니다. 보수는 틀리고 진보는 맞다. 보수는 옳고 진보는 그르다, 와 같은 흑백논리가 아니라 우리는 늘 변화해야 합니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입니다. 그런다고 무턱대고 변화할 수는 없습니다.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할 수 있는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을 인식해야 합니다.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인식관을 가진 시민이야말로 제대로 된 국가를 만들 수 있을 않을까 합니다.
❖ 진보 어용지식인 유시민
얼마 전 유시민 작가가 진보 어용지식인이 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어용"이라는 말은 보통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됩니다. 권력에 붙어 행동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보는 늘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보수의 가치를 부정했으니 결점이 없는, 완전무결성을 가져야 하거든요. 그래서 진보가 만든 가치는 자가당착에 빠지기 쉽고 진보끼리도 서로 부정되기도 합니다. 반면에 기존의 가치를 옹호하는 보수는 늘 공격의 대상이라서 어느 정도의 흠은 스스로 인정합니다. 그리하여 부정부패 또한 비교적 쉽게 덮어집니다.
이러한 진보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서 유시민 작가는 권력-방송인으로 활동하는 그에게 권력은 대중일듯합니다.-의 힘을 빌려서라도 제2의 고 노무현 대통령은 만들지 않겠다. 문재인 대통령만은 지키겠다, 고 생각한 건 아닐까 합니다. 세상에 완전 무결성이란 게 과연 존재할까요. 그런면에서 그의 발언과 행보는 온당한 처사인 것 같습니다. 지식인이란 일정한 지식과 교양을 갖춘 사람이 아니라 제대로 된 세계관과 인식관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지식인은 우리 시민들에게 그들이 아는 것들을 통해서 우리가 바른 선택을 할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 시민이 당당해져야 한다.
일부 권력자들의 심각한 오용 때문에 대한민국에서는 '법치주의'라는 말이 큰 오해를 받고 있다. 법치주의는 법률과 형벌로 국민을 다르시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법률과 형벌로 국민을 다스리는 것은 권력 그 자체의 속성이기 때문에 어떤 주의(主義:이론이나 학설)가 필요하지 않다. 법치주의는 권력이 이러한 속성을 제멋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권력자가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려고 만든 원칙이다. 법치주의는 통치받는 자가 아니라 통치하는 자를 구속한다. p.57
하지만 막상 국가 즉, 정부 앞에서는 우리는 겁부터 먹습니다. 왜냐하면 국가는 합법적인 폭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법치주의를 내세워 시민들을 가둘 수 있으며 징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시민을 구속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권력자를 제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것을요. 그렇다고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법 앞에서 무뢰한이 되자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바라볼 거울도 필요하지만 세상을 제대로 바라볼 렌즈 역시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 렌즈를 가지고 당당한 시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5월 9일, 이제 새벽입니다, 고 했던 그 목소리가 귓가에 다시 들리는 것같습니다. 권력자에게 새벽을 기대하기보다는 그 새벽을 여는 내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