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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소망 Jun 24. 2017

아베 코보, <모래의 여자>

일상의 반복이라는 형벌


아베 코보, <모래의 여자>


 한 남자가 여행을 떠납니다. 도착한 곳은 모래로 이루어진 사막입니다. 그곳에서 의문의 집단에 의해 구덩이에 감금됩니다. 전반적으로 뭐야,라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으면서 그것으로 인해 긴박감 역시 배가 됩니다.


❖ 일상이라는 반복으로부터 탈출


그렇지 않아도 져야 할 책임이 넘치도록 널려 있다. 이렇게 모래와 곤충에 이끌려 이런 곳을 찾아 온 것도, 결국은 그런 책임의 성가심과 무의미함으로부터 잠시나마 탈출하기 위함이었으니... p45


31세 니키 준페이는 학교 선생입니다. 사흘간의 휴가를 받아 곤충채집을 떠납니다. 그 나름의 여행이지요. 여행은 일상의 반복과 안정으로부터 잠시 떠나는 것을 말합니다. 일상이 주는 안정감이 지루해지고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삶을 지치게 만들면 잠시라도 일상으로부터 떨어져야 합니다. 여행을 통해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고 다시 돌아옵니다. 그러니깐 여행이라는 것은 왕복표를 가지고 현재의 일상이라는 역에서 출발하여 여행이라는 목적지의 역에 도착하여 다시 돌아올 것을 의미합니다.


새로운 종을 발견하는 것 말이다. 신종 하나만 발견하면, 긴 라틴어 학명과 함께 자기 이름도 곤충도감에 기록되어 거의 반영구적으로 보존된다. 비록 곤충이란 형태를 빌려서이기는 하나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을 수 있다면, 노력한 보람도 있는 셈이다. p.15


보기 좋게 술책에 걸려든 것이다. 함정에 갇히고 만 것이다. 멍청하게 길앞자이의 꼬임에 빠져, 도망칠 곳 하나 없는 사막 한가운데로 헤매들고 만 굶주린 새앙쥐처럼 p.53


솔직히 일상의 소중함을 여행을 가야지만 아는 것은 아닙니다. 일상에서 그걸 느끼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는 게 너무 바쁘고 힘들어도 그것을 살아갈 수 있는 건 바로 일상이 주는 안정감때문인데 우리는 그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부푼 꿈을 안고 현실을 잊어 보려고 하거나 아니면 평상시에는 꿈도 꾸지 않는 일탈을 은밀하게 상상하기도 합니다. 성공을 향한 욕망, 도덕적 항로에서 벗어난 상상 모두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이라는 여행이 아닐까요. 그리고 준페이가 여행을 떠난 것은 곤충채집이었지만, 그 곤충채집은 일상으로부터 벗어날 구실이 아니었을까요.


❖ 일상의 반복이라는 형벌과 인간의 모순


그는 그곳, 모래 구덩이에서 매일 모래를 퍼냅니다. 시지프의 신화, 산 이쪽에서 돌을 굴려 산꼭대기로 운반하면 그 돌은 저쪽으로 굴러내려갑니다. 그러면 다시 저쪽에서 정상으로 돌을 운반해야 하는 형벌, 그 끝나지 않는 무한한 반복, 그것이 바로 시지프 신화입니다. 준페이가 매일 쉬지 않고 모래를 퍼내는 것, 무한한 반복 그것이 형벌입니다. 그리고 어찌 보면 그것은 일상이기도 합니다.

여행을 떠난 목적은 일상으로부터의 도망인데, 여행에서의 하루 역시 일상이라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반복되는 삶을 살아야 하는 형벌을 받은 건 아닐까요. 비록 그 하루의 양상이 매일 다르더라도 어쨌든 우리는 반복되는 하루를 살아야 하니깐요. 그 하루는 같은 거지요.

그게 그러면 여행 같은 일상, 일상 같은 여행인가요. 여행 같은 일상은 안정감을 주지 못하고, 일상 같은 여행은 너무 지루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요즘의 여행은 살러가는(living) 거라고 합니다. 그래서 장기간 집을 대여하여 요리도 하고 관광보다는 그곳에서 살다가 오는 것이지요. 그것은 일상으로부터 벗어난 여행 안의 일상이라서 그전의 일상과는 차이가 있습니다만, 궁극적으로 보면 결국 똑같은 일상이 아닐까요. 하루 안의 내용은 다르겠지만 그 하루를 다시 산다는 본질은 같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우리는 매일을 살아가는 형벌에 걸린 거지요.  

그렇게 준페이는 여행(곤충채집 후 갇혀 버린 모래구덩이) 속의 일상을 형벌처럼 매일 살아갑니다. 그리고 다시금 귀향을 꿈꿉니다. 그리고 드디어 귀향의 기회가 옵니다.


딱히 서둘러 도망칠 필요는 없다. 지금, 그의 손에 쥐어져 있는 왕복표는 목적지도 돌아갈 곳도, 본인이 마음대로 써넣을 수 있는 공백이다. p.227


준페이는 귀향을 포기합니다.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여행(모래구덩이)이 일상(반복)이 된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벌이 없으면 도망가는 재미가 없다는 그의 아베 코보의 말처럼 모래 구덩이에서 탈출을 저지하는 사람이 없으니 시들시들해진 건 아닐까요. 원래 싸움도 말리면 더 극성이 되는 법 아닙니까.




한 개인을 모래구덩이에 가두고 일을 시키는 의문의 단체는 "애향정신"을 강조합니다. 그것은 마치 조지 오웰의 빅브라더를 연상시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무 생각없이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모래의 여자는 자신을 잃어버리고 애향정신으로 세뇌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 눈에는 어떻게 된건지 그런 것 보다는 준페이의 여행과 일상 그리고 반복 그런 것들이 더 각인이 됩니다.

음... 인간의 모순 그런 것들을 더 풀어보고 싶지만 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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