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할머니, 어제 그 케이크 누가 다 먹었어요?"
"누구긴 아빠지."
"...................."
유구무언이다. 딸아이의 눈을 피해 고개를 살짝 돌리며 베란다 밖을 응시한다. 이어서 아이는 아빠, 하고 부른다. 그 아빠는 내가 평상시 듣기 좋아하던 아빠와는 음색과는 아주 다르다. 짧고 날카롭고 높다.
지난밤에 맛있게 먹었던 케이크를 다음날 다시 먹으려고 보니 아빠가 먼저 일어나 먹고 말았다. 아빠가 사 온 케이크였지만 마치 자신의 케이크를 누군가가 훔쳐먹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제 더 먹을 수 없어서 아쉽고 어제 더 먹지 못해 속상하다.
박완서 작가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역시 비슷하다. 지나간 시간이고 돌아오지 않고 그래서 그립고 아쉽고 속상하다. 때론 아프기도 하다.
박완서 작가의 고향 박적골의 산에는 싱아가 지천에 널려 있었습니다. 단 게 생각나는 어린 시절에는 동무들과 놀다가 그 싱아를 따다가 먹곤 했습니다. 그런데 고향을 떠나 서울생활을 하던 그녀가 다시 고향을 찾았을 때에는 더 이상 싱아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대한민국 문학의 거목이라는 박완서 작가에게도 달콤 쌉싸름한 유년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녀에게는 그 시절은 '싱아'라는 열매처럼 달콤해 보이지만 시큼한 맛이 나는 게 아닐까요. 일제강점기, 광복, 한국전쟁이라는 민족 격동의 세월을 몸소 겪은 작가에게 그 시절은 누구보다 빠르게 그리고 거칠게 지나갔습니다.
어느 지역과 민족을 막론하고 옛날 그러니까 산업혁명이 있기 전의 시대에도 지금과 똑같이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때의 1초나 지금의 1초는 물리적으로도 다르지 않으며 어떠한 오차도 인정되지 않을 만큼 완벽히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느끼기에도 그럴까요. 그때의 1초와 지금의 1초 그리고 나중의 1초가 같을까요.
그 옛날에는 나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리고 그 몇 대 위의 할아버지와 나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 위의 할아버지도 초가집에 살았고 나도 초가집에 살고 나의 후대도 초가집에 살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 시절의 나는 세월의 흐름을 어떻게 느낄까요. 어줍게 추측해 보건대 아마 느렸을 겁니다. 물론 개개인의 인생사는 지나고 난 다음 되돌아보면 그 유속이 아주 빠를 겁니다. 그러나 그 옛날 시대는 시대의 변화가 크지 않은 만큼 엊그제나 어제나 오늘이나 그리고 내일이나 그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제 할아버지는 마을에 전화가 몇 대 안 되어 통신원을 통하여 소식을 주고받았으나, 저희 아버지는 집에 개인 전화를 가졌었고, 저는 제 손안에 전화를 들고 다닙니다. 제 딸아이는 감히 예측을 못하겠습니다. 이런 변화를 가지고 격동이라고 하지 않을까요.
박완서 작가 역시 그랬을 겁니다. 개화의 분위기 속에 쇄하여 갔던 박적골의 양반집, 일제강점기에서 살아야 했던 민족의 애환, 광복의 기쁨도 잠시 한국 전쟁의 비극이라는 민족 격동의 세월과 그 안에서 이리저리 흔들여야 했던 개개인의 삶 역시 하루하루가 아주 빠르게 기억의 뒤안길로 사라졌을 겁니다.
마치 제 딸아이가 하루아침에 케이크를 모두 잃어버렸듯이 작가의 유년 시절 역시 격동의 세월 속에 다 사라진 거지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급변하는 세월에서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겪어야 했던 작가 개인의 아픔을 통하여 우리 민족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 박완서 작가에게 싱아는 유년의 시간적 의미를 사물에 투영시킨 결과물이었고,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라는 질문은 급변했던 민족의 역사 안에서 상처받았던 아픔이 드러난 넋두리가 아니었을까요.
저도 이 급변하는 세상에서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생각하며 그리고 제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가는 삶을 떠 올리며 혼자 중얼거려봅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냐고.
덧붙여 이 책은 아마 제가 읽은 책 중에서 단연 으뜸이 아닐까 합니다. 개인의 아픔을 고백하며 치유되어 가는 작가, 이오덕 선생은 글쓰기란 삶을 가꾸는 작업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걸 박완서 작가는 그대로 보여주었고요. 너무나도 좋은 글입니다. 저는 글을 읽는 능력도 좋은 글을 구분하는 능력도 삶을 가꾸는 글쓰는 능력도 어느 것 하나 내새울 것 없지만 내 인생의 책이라고 말하고 싶을만큼 좋군요. 그 분이 살아계실 적에 읽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하고 싱아를 입속에서 머금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