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해맑은 미소를 장착하고 애교로 사람 마음을 녹이고, 사고치고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모습이나 찡찡거리는 모습도 그저 귀엽기만 하다. 눈치가 빨라 선을 넘지 않으며, 때로 엄마와 형 사이를 중재하기도 한다.
부모 입장에서 도저히 예뻐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랑스런 아이다.
분명 첫째를 품에 안았을 때도 너무나 예뻤다. 첫째가 자라는 모습을 보며 행복하고 뿌듯했다.
둘째를 낳은 친구들이 "둘째는 더 예뻐."라고 말할 때도, '첫째가 이렇게 예쁜데 둘째는 도대체 얼마나 더 예쁘다는거지? 내 안에 그런 사랑이 더 남아있나? 나는 지금도 내 온 마음을 다해 아이를 사랑하는데?' 그 마음의 깊이가 감히 가늠이 되지도 않았지만, 지금 첫째에 대한 사랑이 언제 태어날지 모르는 둘째에 대한 그것보다 더 작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용납되지 않았다. 내가 너를 얼마나 많이 사랑하는데.
그런데 둘째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들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고, 나역시 다른 이들에게 '둘째는 더 예쁘'다며 자녀 둘 낳기 홍보대사처럼 외우고 다녔다. 내 안에 또 다른 사랑이 가득 샘솟아 나온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라웠다.
그러는 사이 첫째는 3살 때도, 4살 때도, 5살 때도 늘 형아가 되었다.
형아는 어때야 한다든지 하는 부담을 준 적은 없지만(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나도 모르는 기대가 있었다 해야할까. 3살짜리 첫째는 아주 작은 신생아 앞에서 갑자기 형아가 되었다.
왜 둘째는 예쁘기만 할까? 왜 첫째에게 절대 허락되지 않던 경계가 둘째에게는 쉽게 무뎌지는 걸까? 첫째는 뭐가 문제였던 걸까?
나도 첫째인데. 아래로 동생이 둘이나 더 있는.
우리 부모님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동생이 생기는 첫째의 마음을 헤아리고 보듬어주기 위해 육아서도 만만치않게 읽었지만, 내 마음에 대한 해답을 찾기 어려웠다.
그러는 사이, 둘째에게는 사랑의 마음이, 첫째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첫째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 정작 아이는 학교에 대한 기대로 가득차 있는데, 엄마인 나는 설렘과 불안이 공존해 있다. 처음이 중요한데 공부 습관은 어떻게 들여줘야 할지, 어느 시기에 어떤 자극을 주어야 할지, 사회성은 잘 발달되어 있는지, 학교생활은 잘 할지, 어느덧 나는 걱정인형으로 변해있었다. 서점에 가니 평소에는 전혀 보이지 않던 나와 같은 예비 초등 학부모의 눈길을 끌 만한 '초등 생활', '초등 습관'과 같은 키워드의 책들이 그렇게 많이 보일 수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둘째에게는 베테랑 엄마이지만, 첫째에게는 늘 초보 엄마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엄마라는 이름도, 학부모라는 이름도 모두 처음 내게 부여해준 첫째는 엄마와 같이 성장해가는 것이 아닐까.
어차피 너도 처음이고 나도 처음이라는거 다 알고 있는데 말이지.
어떤 길이든 처음 가는 곳은 멀게 느껴지지만, 돌아오는 길은 상대적으로 짧게 느껴지지 않는가.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서는 목적지뿐 아니라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도 눈에 담을 수 있는 것이다.
처음 가는 엄마의 길은 멀고도 험하게 느껴지지만, 이미 경험해본 일에 대해서는 좀더 쉽게 느껴진다.
그러다보니 엄격했던 경계도 자연스레 허물어지고 관대해지며 포용적이 된다.
그러니 둘째에게는 사랑만 줄 수 있지만, 첫째에게는 똑같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 아이를 공평하게 키우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는 아이에 대한 내 사랑의 '크기'가 아니라 내가 똑같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국 중요한 것은,
나는 첫째에게 늘 초보엄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아이와 함께 처음 가는 그 길을 힘을 합쳐 걸어나가야 하며, 실수나 잘못도 함께 고쳐나가며 그렇게 손 꼭 잡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노력하고, 엄마도 처음이라 서툴다고 솔직히 말할 수 있으면 되지 않을까.
그러다보면 아이는 자연스레 주도성을 기를 수 있게 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엄마가 미안한 마음을 갖다 보면 아이는 엄마가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될테니 올바른 교육도 바람직한 관계도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잠든 첫째의 머리칼을 쓸어주며 가만히 들여다보면 너무 어린 아이라는 생각이 새삼 든다.
너무 순수하고 예쁜 얼굴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하루의 피곤함과 고단함이 첫째의 잠든 얼굴에서 순식간에 녹아내린다.
둘째는 사랑이 맞다. 너무나 맞다.
엄마인 내가 여유있는 마음으로 맞이하는 두 번째 길이니까.
이 길 다음에 어떤 길이 이어지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니까.
그렇다면 첫째는?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예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나도 처음 가는 길을 헤매며 가다보니 내 손과 아이의 작은 손이 함께 맞잡고 있다는 것을 잠시 잊게 되는 것뿐. 긴장해서 땀이 흥건한 나의 손을 잡아주고 나와 함께 발맞춰 걷는 예쁘고 소중한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