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화창하고 캐릭터는 진부하지 않지만, 묘사와 리듬은 살짝 둔탁하다
한국에는 발매되지 않은 오자와 카나의 장편 데뷔 만화가 원작입니다. (정작 후속작인 <노노미야 츠키코는 언제나 졸려>는 정식 발매가 되었더라고요.) 한국에는 항공대 밖에 동아리가 없지만, 일본에는 무려 60여개 대학에 존재하는 글라이더 동아리를 무대로 삼고 있습니다. 위키피디아를 보니 원작을 그린 작가가 실제로도 호세이대학 재학 시절 항공부에 가입해 실제로 글라이더를 조종하기도 하고, 자가용 조종사 자격증까지도 있다고 합니다. 어찌보면 자기 경험을 토대로 데뷔작을 그렸다 봐도 과언이 아니죠.
한국보단 좀 더 저변이 좋다지만, 그래도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지 않은 글라이더를 다루는 만화가 일본에서는 2022년, 한국에는 올해 애니메이션으로 개봉하게 되었습니다. 연출에는 <도쿄 매그니튜드 8.0> <바라카몬> 등 드라마 경향 애니메이션을 제법 했던 타치바나 마사키가, 각본에는 장르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작을 해온 타카하시 나츠코가 맡았어요. 애니메이션 실제작은 세가사미 자회사로 근래 <루팡 3세> 시리즈 등을 만든 텔레콤 애니메이션 그룹이 맡았습니다. 여기에 제작 감수 및 지원에는 일본 양대 항공사인 ANA까지 붙었으니 이렇게만 보면 꽤 큰 프로젝트일 것 같죠.
하지만 작품은 블록버스터로 흐르지 않습니다. (대충 미리보기로 봤지만) 원작도 글라이더를 소재로 주인공이 동아리와 함께 한 걸음 나아가는 ‘청춘 성장 드라마‘에 로맨스를 한 스푼 넣은 느낌이지만, 애니메이션은 좀 더 저예산으로 제작된 느낌이 없지 않아요. 특히 글라이더의 활공과 비행을 그리는 장면에서 그런 점이 두드러집니다. 글라이더의 역동적인 움직임은 최소한으로 그려지고, 어떻게든 고정된 항공의 풍경으로 글라이더의 매력을 그려내겠다는 고심이 느껴져요. 좀 더 어떤 시퀀스에서는 과감한 연출을 시도하면 좋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이래저래 한정된 예산에서 제작되어, 글라이더가 주제인 작품에서 글라이더의 동세 표현에 제약이 발생했다 추측할 수 밖에 없는 부분입니다. 물론 원작도 성장 드라마에 가까우니 드라마 묘사가 괜찮으면 좋겠죠. 그러나 그 점도 조금 애매합니다.
주인공 ‘츠루 타마키’(홋타 마유)의 묘사는 분명 좋습니다. 원작의 공이 크겠지만, 이런 장르의 전형적인 여주인공처럼 소심하거나 남성에게 도움받는 식으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에이스를 노려라>나 <달려라 하니>처럼) 자신에게 조금 불안감이 있어도, 할 때는 제대로 하고, 붙임성도 좋고 당찬 캐릭터로 그려집니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미처 몰랐던 글라이더에 대한 재능도 발견하며 자신도, 그리고 그에게 영향을 받은 사람도 함께 성장하는 묘사와 흐름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리듬’이에요. 100분 가까운 러닝타임은 결코 짧다 하기엔 어려운 시간이지만, 뒤로 갈수록 어딘가 다급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퀀스와 시퀀스 사이의 연결이 둔탁합니다. 원작도 5권에서 1부 완결 형식으로 살짝 어정쩡하게 끝났다고 하니 이 역시 원작의 한계일 수 있지만, 이를 고려해도 너무 한꺼번에 원작의 중요 등장인물과 터닝 포인트를 우겨 넣는 느낌입니다. 어떤 부분은 과감히 생략을 하거나, 더 변주를 하거나, 아니면 좀 더 러닝타임을 늘리는게 좋지 않았을까 싶어요.
물론 제작에 할당된 예산이 눈으로 보기에도 좀 빠듯하게 느껴지는 상황에서 러닝타임을 늘리기 보단, 이번 기회에서 최대한 원작의 플롯을 모두 넣자는 선택을 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느리면서도 조금씩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는 작품이 정작 뒤로 갈수록 헐떡이고 있는 부조화가 이뤄지니 좀 더 호흡을 맞추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요.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분명 유심하게 살펴볼 점은 있습니다. 주인공과 주변 사람들에게 있는 각자의 비밀을 마냥 뻔하게 써먹지 않고 개인과 개인 간의 관계와 대화로서 오해를 풀어나가는 모습, 로맨스의 기운은 분명 있어도 그에 천착하는 대신 아직 자기 자신을 확실히 모르는 개인이 자신을 알아나가는 과정을 담아내는 지점, 일본 표현물에서 심심치 않게 나오는 여성에 대한 도구적 묘사도 최대한 피하는 모습은 원작 덕분이라 해도 비슷한 소재의 작품과 비교하여 꽤 신선한 느낌이 있어요. 다만 이를 풀어나가는 방법이 좀 더 작품의 분위기에 맞게 직조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어 그 점이 아쉬울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