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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상민 Sep 26. 2023

영화 <그란 투리스모> 단평 : 영화 밖이 더 신경쓰여

참으로 무난하게 나온 닐 블롬캠프의 게임 실화 원작 레이싱 영화.

게임이나 레이싱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잘 알 소니 산하 폴리포니 디지털의 인기 레이싱 시뮬레이터 게임인 <그란 투리스모> 시리즈가 원작입니다. 작년 <언차티드>에 이어, 소니 픽쳐스가 같은 소니 그룹에 속한 게임을 원작으로 또 영화를 만든거죠.


그런데 이렇다 할 서사가 없는 레이싱 게임으로 어떻게 영화를 만든다는 걸까요. 게임 자체에는 서사가 없지만, 게임 밖 현실과 이어지는 서사를 토대로 영화가 태어났습니다. 2008년부터 2016년까지 닛산과 소니의 협업으로, 게임 <그란 투리스모>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둔 사람들을 실제 트랙을 달리는 레이서로 만든다는 'GT 아카데미' 프로젝트가 있었거든요. GT 아카데미에 선발된 사람들 다수는 레이싱 게임과 자동차를 무척이나 좋아해도, 실제 프로 레이서로 달려본 경험은 전무한 이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래저래 전무후무한 시도였고, 기사를 찾아보니 마케팅에 치중한 무모한 프로젝트라는 평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꽤 제법 많은 일반인들을 레이서로 데뷔시키는 성과를 낳았고, 이 영화의 주인공이자 실제 모델이기도 한 '잔 마든보로' 역시도 그렇게 게이머에서 레이서가 된 사람입니다. 어릴 때부터 프로 레이서의 꿈을 꿔오긴 했지만 집안에 돈도 없어서 그럴수도 없었고, 대신 메카닉이 되기 위해 대학 전공은 모터스포츠 엔지니어링으로 택했지만 수학을 도저히 따라 잡을 수가 없어서 중퇴를 했다고 하죠. 그러다 2011 GT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몇 차례의 레이스에서 상위권에 올라 FIA 라이센스를 취득하며 정식으로 프로 레이서가 되었습니다. 이후 몇 차례 레이스에서 계속 제법 괜찮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고, 이후 2016년부터는 일본으로 무대를 옮겨 레이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레이싱 팬이라면 누구라도 알 정도로 대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어릴 때부터 레이싱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은 일반인으로서는 분명 상상도 할 수 없는 기록을 만들어내긴 한 것이죠. 소니는 이 실화를 영화로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연출자는 <디스트릭트 9>로 큰 인상을 남겼지만, 그 이후로는 미묘한 필모그래피를 기록 중인 닐 블롬캠프를 (거의 모든 작품을 소니에서 만든 정 때문인지) 불러왔어요.


그렇게 태어난 작품은 참으로 무난합니다. 좋게 말하면 정석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레이싱 게임 플레이어가 진짜 레이서가 되었다'는 실화의 임팩트 이상으로 뭔가 특별한 점이 안 보입니다. 실제 잔 마든브로가 2015년 레이싱 중에 일으킨 관객 사망 사고 등 긴장적인 순간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정말 전형적인 도구로 사용될 뿐입니다. 정말 한 치의 변주도 없이 정해진 코스를 달리는 것 마냥 주인공과 주변 인물이 결단하고, 성과를 내고, 반전을 만들고, 위기에 처하고, 극복을 하는 모습이 이어집니다.



그래도 마냥 지루하거나 볼만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영화는 '레이싱 게임이 실제 레이스로 이어졌다'는 것을 살리기 위해 레이싱 특유의 빠른 질주감을 살리면서도, 주인공을 레이싱으로 이끌어 낸 게임의 존재를 레이싱과 이어내기 위해서 일반적인 레이싱 영화에서는 보기 어려운 연출을 덧붙여 냈어요. 물론 그 시도가 그리 특이하진 않습니다. 레이싱 게임의 HUD 같은 정보 화면이 실제 레이싱으로 이어지고, 일련의 CG 작업을 통해 레이싱 게임이 실제 트랙으로 자연스레 전환되고, 다시 그 역으로 바뀌는 모습을 입혀내는 식이죠.


이러한 모습이 그렇게 거창한 연출은 아니지만, 그간의 프로 레이싱을 소재로 한 영화는 <러시 : 더 라이벌>이나 <포드 v 페라리> 같이 상대적으로 클래식이 된 레이싱을 우직하게 반복하는 작품이 많았던 반면에, <그란 투리스모>는 이러한 연출을 통해 2023년과 비교적 가까운 시대의 감각으로 레이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전형적인 갈등 묘사긴 해도, 프로 레이싱이 결코 낭만적인 세계가 아님을 꽤 상세히 보여주는 것도 특기할 지점이긴 하죠.


그 모습들에 닐 블롬캠프 특유의 연출이 보이지 않고, 참으로 무난무난한 것이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디스트릭트 9> 이후로 참으로 오랜만에 대중적으로 지지를 얻을 작품이 되긴 했습니다. (물론 호불호가 엇갈리긴 해도 <엘리시움>이나 <채피>의 감성이 좋았다면, 감독 고유의 색이 탈색되고 고용 감독으로 전락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신경 쓰이는 점은 결국 이 작품이 무엇을 위해 기획개발되어 제작되었냐는 것입니다. <그란 투리스모>는 일단 레이싱 영화긴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2023년에 튀어나온 <전자오락의 마법사>(1989)이라 부르는 게 좋을 작품이니까요. <전자오락의 마법사>는 아직 성장 중인 어린 소년이 무수한 닌텐도 NES(패미콤) 게임으로 경쟁하며 성과를 얻어 개인도 성장하고 가족과도 다시 우애를 만든다는, 그런 플롯의 작품이었죠. 겸사겸사 영화 전체를 닌텐도의 광고판으로 만들고요.


이 작품도 그런 식입니다. 가족들에게는 '게임에만 빠져산다'고 걱정을 받는 20대 청년이 어릴 때부터 지닌 레이서의 꿈을 결국 소니와 닛산이 함께 만든 일생일대의 기회로 획득하며, 꿈도 이루고 가족과도 화합하고, 여자친구와의 사랑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소니와 닛산도 홍보하고 그러는 것입니다. (소니 픽쳐스 계열 작품이 그렇듯 작중에 등장하는 모든 전자제품은 소니 제품이고, 실제 주인공도 케니G나 엔야의 노래를 들으며 레이싱 전 긴장을 풀었다고 하지만 하필 공교롭게도 소니 뮤직 소속의 케니G 노래만을 강조하듯. 심지언 중간에 일본에 들러 사는 선물용 중고 제품도 소니 네트워크 워크맨입니다;)


게다가 이 실화의 실제 시대적 배경은 2010년대 초중반인데, 영화는 딱히 시대적 배경을 맞추려는 노력도 없어보어요. 실제로는 <그란 투리스모 5>로 데뷔했지만, 영화는 2022년 최신작인 <그란 투리스모 7>만을 비추고 있죠. 닛산 로고도 2020년대 새롭게 바꾼 모습만 나오죠. 애시당초 상업 영화는 항상 PPL의 잔치였으니 언제나 광고판이긴 했지만 하필 2010년대 중후반 이후로 소니가 정체기에서 완벽히 벗어나고, 2020년대 들어 닛산이 르노와 동등한 지분 관계를 맺어 성장한 상황임을 생각하면 실제의 맥락은 딱 기본적인 플롯만 살리고서 2020년대 활황을 지속 중인 소니-닛산의 아름다운 모습만을 홍보한다는 느낌이 강해지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2023년판 <전자오락의 마법사>입니다. 게임에 대해 가진 부정적인 인식을 일소하는 광경을 그리지만, 동시에 이러한 플롯은 그저 게임 문화의 발전을 위한 헌신이 아니라 이 게임의 중요 제작자이자 스폰서인 기업의 마케팅 목적으로 쓰기 위한 하나의 도구라는 점에서 말이죠. 영화가 '게임 밖 현실'에서 모티브를 취했듯, 이 작품을 말하기 위해서는 '게임 밖 맥락'을 같이 안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영화 <그란 투리스모>는 무난하고 적당하지만, 이 작품이 제작된 맥락과 후속적 영향은 좀 더 진중히 봐야하는 묘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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