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만에 등장한 <베테랑>의 후속작, 혼란에 놓인 분위기와 전개
* 이 글에는 <베테랑> 및 <베테랑 2>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지금은 그래도 속편이 등장하며 시리즈가 되는 영화들이 제법 있지만, 여전히 한국 영화는 속편이 정말 참 안 나온다는 이야기가 종종 보입니다. 하지만 속편을 만든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전작이 아무리 성공했다고 해도, 속편에서 전작의 공식을 그대로 따르면 결국 자기 반복이라는 말을 듣기 쉽습니다. 분명 변화를 줘야 하는데, 전작을 좋아하는 사람이 후속작을 많이 볼거니 이들의 기대감을 저버릴 정도로 변화를 강하게 주기도 쉽지 않습니다. 전작과 유사하면서도, 변주가 이뤄지는, 그렇게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감각이라는 참 형용하기 어려운 길을 걸어야만 하는 것이 대다수 속편의 운명이지요.
2015년에 개봉한 전편에 이어, 9년 만에 속편으로 새로 등장한 류승완 연출의 <베테랑 2>는 어떨까요. 일단 주요 등장인물들은 거의 모두 유지했습니다. 여전히 주인공 ‘서도철 형사’로 황정민이 등장하고, 그와 함께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로 움직였던 ‘봉윤주’(장윤주)·‘왕동현’(오대환)·‘윤시영’(김시후) 등도 다시 출연합니다. 서도철의 아내인 ‘이주연’ 역의 진경이나, 심지어는 비중이 낮은 조연이었던 ‘전석우’ 역의 정만식, ‘박승환’ 역의 신승환도 전작에 이어 또 출연했습니다. 9년이라는 텀이 지나서야 속편을 찍기 시작했는데, 꽤나 많은 인물들이 속편에서도 자리를 지킨 것입니다. 여전히 서도철은 현장을 종횡무진하고 몸으로 부딪치면서 범죄자를 잡으려 하고, 감각적인 리듬의 액션 연출도 그대로입니다. 게다가 1편 오프닝 음악으로 1970년대 추억의 팝송인 블론디(Blondie)의 ‘하트 오브 글래스’(Heart Of Glass)를 썼던 것처럼, 이번 2편의 오프닝에도 1970년대 추억의 팝송인 바카라(Baccara)의 ‘Yes Sir, I Can Boogie’를 길게 쓰는 것까지도 비슷합니다. 어떻게든 1편의 감각을 살리며, 1편을 좋아하는 추억의 팬들에게 어필하려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베테랑 2>는 전작과는 다른 느낌의 모습도 많습니다. 당장 1편과는 많이 달라진 어두운 분위기의 포스터에서도 느껴지듯, 2편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꽤나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편에서 새롭게 서도철과 함께 하게 된 ‘박선우’(정해인)에게는 어딘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고, 서도철과 그의 동료들이 해결해야 하는 사건들은 전작에서 유아인이 연기한 재벌가 집안의 망나니 자식 ‘조태오’의 추태가 장난처럼 보일 정도로 잔인하고 끔찍합니다. 피도 그다지 나오지 않고, 분노를 자아내는 장면은 있어도 잔혹한 장면은 거의 없었던 전작과 달리 이번 작품은 피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보면 정말 버티기 쉽지 않을 정도의 선혈이 등장합니다. 그것도 ‘15세 관람가’ 등급을 아슬아슬하게 지킬 수준으로 자세하게 표현합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사건이 지니는 특성도 천양지차입니다. 자기가 재벌 집안이라는 걸 믿고 마구 날뛰었던 1편의 조태오는 누가 봐도 확실한 ‘나쁜 놈’이었지만, 2편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좀 더 층위가 복잡해졌습니다. 분명 범죄를 저지른 악인이지만, 법망을 잘 피해 나가며 처벌을 받지 않거나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자들에 대한 ‘사적 제재’가 이번 작품의 주된 사건이자 화두이기 때문입니다. 전작에서도 조태오는 자기가 잡혀도 바로 나올 것이라 으스대었어도 큰 신경 없이 봉윤주의 한 방으로 잠재우면 그만이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조태오가 말했던 협박이 (원래도 현실이었지만) 극중 현실에서 발현하고 만 것이죠.
그런 상황에서 여론을 모아 판을 뒤집기 위해 조태오와 명동 거리에서 한 판 붙는 장면을 연출했던 1편의 서도철과 달리, 2편의 서도철은 오히려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점차 꺼리기 시작합니다. 현실 속 ‘사이버 레카’를 그대로 빼닮은 유튜버들이 활개 치며 사람들의 분노를 자극하고, ‘사적 제재’기 당장의 확실한 처벌이라며 환호성을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 치고 있기 때문이죠. 물론 서도철도 형사인 만큼 범죄자가 제대로 응징을 받지 못하는 것에 사적 제재에 동조하는 듯한 발언을 던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서도철은 이러한 사적 제재가 반드시 처벌받아 마땅한 사람들에게만 이뤄지는 것도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설사 그런 존재였다고 하더라도, 그런 식의 처벌이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것도 말입니다. 이제 2편의 서도철은 범죄자를 잡아야 하는 미션에 이어, 사적 제재를 옹호하는 렉카 유튜버나 여론과도 싸우고, 그리고 조금씩 사적 제재에 동조하게 되는 자기 자신과도 싸워야만 합니다.
이렇게만 쓰면 <베테랑 2>가 전편에 이어 한 걸음 진보한 것 같지만, 애석하게도 그렇게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2015년 <베테랑> 1편에서 이어지는 등장인물들이나 요소들이, 이번 2편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 그리고 분위기와 좀처럼 조응을 이루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속편으로서 유기적으로 제작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작품에 <베테랑>과 콜라보레이션을 한 일종의 번외편으로 느껴질 정도로, 1편과 2편의 요소들은 제각기 따로 작동하고 맙니다. 분명 2편의 주요한 사건은 범죄자로 지목된 이들을 한 명씩 잔인하게 죽이는 사적 제재 살인 행각이고, 전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구도는 복합해져 있는데, 정작 서도철을 비롯한 1편의 인물들과 요소들은 2편의 분위기에 조응하는 듯하면서도 실제로는 1편에서 드러냈던 모습이 거의 그대로 이어지며 분위기가 충돌하게 됩니다.
2편에서 새롭게 마련한 인물들이나 분위기가 썩 잘 굴러가는 것도 아닙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베테랑 2>는 전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졌고, 잔인해졌으며, 무거운 분위기에서 전개됩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쏘우>나 <파이널 데스티네이션>이 연상될 정도로 잔혹한 시각적 요소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어떤 장면에서는 순간적으로 폐쇄적인 공간에서 전개되는 공포 스릴러 장르의 영화나 게임처럼 느껴질 정도로 관객의 심리를 곤두세우는 예민한 시퀀스도 적지 않습니다. 분명 이런 장면들은 사적 제재에 아무리 어떠한 꼬리표를 붙이더라도 결코 용납할 수 없으며 돌이킬 수 없는 잔인함의 연쇄임을 표현하는 것이겠지만, 문제는 너무 오락가락한다는 것입니다. ‘15세 관람가’의 한계까지 시험하는 듯 수위를 올리면서도, 결국 감정이 최고조로 치닫는 상황에서는 바로 서도철과 1편의 요소를 투입시키며 가자기 중탕을 시키는 식입니다.
그렇다면 수위에 상관없이 2편의 요소들로 그대로 밀어 붙이며 작품을 만들었으면 괜찮았을까요. 그랬다면 분위기는 그래도 통일된 감각으로 즐길 수 있었겠지만, 2편에서 등장하는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도 <베테랑>의 변주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마치 구로사와 기요시의 작품에서나 만날 수 있는 분위기들이에요. 1편의 요소들이 그저 같이 나올 뿐 제대로 섞일 단계도 없으니 더욱 덜컹거리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2편의 모습들만 살펴봐도 뭔가 분위기만 무겁지 제대로 이 요소가 작품에 사용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인간을 처벌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제법 진지하게 파고들었던 스릴러나 서스펜스 작품의 분위기를 그저 표면적으로 가져왔다는 생각만이 강해집니다. 최소한의 고민도 보이지 않고, 즉각적인 상황과 감정의 연속이 계속 이어지는데, 그렇게만 풀기에는 좀처럼 제대로 정리할 수 없는 주제들이 내걸리는 내부 충돌만이 계속 발생합니다. 묵직한 분위기가 적재적소에 쓰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분위기만 억지로 무겁게 만들고 있을 따름입니다.
이러다 보니 자칫 잘못하면 심각한 피해를 낳을 수 있는 상황이 긴박하게 벌어지고 있는데, 정작 대다수의 등장인물들은 1편의 모습처럼 움직이고, 그러면서 가끔씩 1편과 같은 느낌의 코미디가 하나의 시퀀스에 이리저리 뒤섞여 제시되는 장면들이 수두룩하게 등장합니다. 분위기가 제대로 속편에 맞게 변화한 것도 아니고, 전편의 노선을 잘 이어나가는 것도 아닌, 이도저도 아니게 된 난잡한 분위기가 2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계속 유지됩니다. 그나마 황정민의 연기와 액션 시퀀스가 이 사분오열된 요소들을 가까스로 묶어 줍니다. 시퀀스나 분위기는 게속 따로 놀고 있어도, 황정민은 어떻게든 이 상반된 분위기를 비극의 고뇌처럼 느껴지도록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류승완의 장기인 액션 시퀀스는 1편에 이어서 더욱 다양한 공간과 장소에서 치열함과 호쾌함이 느껴지도록 동선을 짜고 컷을 이어낸 리듬이 느껴지긴 합니다.
그러나 이 상황은 <베테랑 2>에서 새롭게 준비했던 요소들이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더욱 반증해주는 역설을 낳습니다. 물론 서로 상반되는 요소들을 하나의 작품에서 모두 제시하며 이어내는 시도는 류승완의 작업에서 숱하게 반복되는 모습이긴 합니다. 류승완이 처음 이름을 알린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도 블랙 코미디와 드라마, 처절한 액션 누아르가 모두 섞였던 ‘하이브리드’ 경향의 작품이었으니까요. 그 시도가 성공하면 <다찌마와 리 : 악인이여 지옥행 열차를 타라>가 그랬던 것처럼 작품의 고유하고 독특한 분위기가 되지만, <군함도>처럼 어정쩡했던 경우도 적지는 않았습니다. 냉정히 말하면 바로 전작이었던 <밀수>의 구성도 꽤나 아슬아슬했으니까요.
그래도 <밀수>가 주연 배우들의 호연으로 흔들리는 이야기를 최대한 잡아주고 있었다면, <베테랑 2>는 배우의 연기나 액션으로 수습을 하기에는 너무 벌려놓은 것이 많고, 욕심도 너무 큽니다. 차라리 <베테랑>의 속편이 아닌 다른 별도의 작품으로 푸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에요. 동시에 작품 전반에서 계속 감돌고 있는 미스매치의 모습들을 기획이나 프로듀싱에서 제대로 잡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최근 한국 영화판이 함께 기반이 가라 앉는 가운데 좀처럼 반전의 분위기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CJ ENM의 난맥상을 다시금 엿보게 합니다. 이래저래 <베테랑>을 기대하고 봤다가는 자칫 놀랄 수도 있는, 그렇다고 새로운 감각을 즐기기에도 영 쉽지 않은, 배우의 개인기에 의존하는 작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덤 1. 작품의 홍보에서는 거의 언급이 안 되고 있는데, 실은 <베테랑 2>에는 전편에 이어 오달수도 나옵니다. 이미 오달수가 다시 연기 활동을 한지 꽤 되었으니, 이젠 여러 작품에 나오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고 하지만, 홍보에서는 어떻게든 언급을 안 하는 모습에서는 배급사나 홍보사가 분명 부담을 느끼는 지점이 있는 듯 하죠. 하지만 가장 신경이 쓰이는 지점은, 이 작품에서 전개되는 각각의 사건이나 주제에 오달수의 캐스팅은 일종의 내적 모순이 아닌가요?
덤 2. 이번 작품의 음악감독을 장기하가 맡았습니다. 물론 전편에서 故 방준석 음악감독이 만들었던 메인 테마 등도 계속 변주하면서 사용하고 있지요. (작품 스탭롤 맨 첫 순간에 방준석 음악감독에 대한 추모 문구가 흘러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전작과 비슷한 분위기로 흐르는 장면에서는 묘하게 더 레트로한 느낌으로 음악이 흐르게 됩니다. 한편 이번 작품의 어두운 분위기에서 흐르는 스코어들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장기하와 얼굴들’ 시절 앨범 수록국 중 상당히 어둡고 질척한 느낌의 노래들을 다시 듣는 것만 같아요. 이래저래 OST는 앨범을 사거나, 별도로 음원을 몰아서 듣고 싶은 구성입니다.
덤 3. 작품에 꽤 PPL이 많이 등장하는 편입니다. KBS가 작중에 등장하는 방송 프로그램의 방송사로 등장하는데, 하필 등장하는 프로그램이 사장 교체와 함께 사리진 <더 라이브>나 개편 전 모습의 라디오 프로그램 <열린토론>이어서 뭔가 참 기분이 묘해지고요. 특히 CJ그룹 자사 PPL이 꽤나 자주 보입니다. 경찰 구내식당에서는 대놓고 ‘스팸’을 말하고, 작품의 주된 무대 중 하나는 CJ푸드빌이 일부 층을 임대하여 운영하고 있는 ‘N서울타워’(남산 서울타워)니. 전작의 후반부 클라이맥스에서 원래는 마동석이 ‘아트박스’가 아니라 ‘올리브영’ 사장으로 등장할 예정이었다 현장에서 즉석에서 대사를 바꾼 걸 생각하면, 뭔가 전작에서 못다 한 자사 PPL의 한을 이렇게 푸는 느낌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