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만화 글 매거진 <뾰로롱> 창간호 단평.

활동은 있으나 매체의 접근이 부재한 영역에서, 기본과 고민을 담아.

by 성상민
IMG_7373.jpeg


한국의 많은 분야들에서 이런 일이 많다. 분명 뭔가 작업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여러 실천적 활동도 있고, 그에 대한 반응도 있고, 마냥 충분하다고 말할 수 없더라도 경제적 이윤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를 다루는 매체가 부재하거나, 또는 이러한 흐름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충분하지 않다. 게임, 대중음악, 만화, 공연 등등의 상황이 그렇다. 여기에 예시로서 적지 않은 분야들도 사정 비슷한 곳이 많을 것이다.


독립만화도 그 중 하나다. 애시당초 만화에 대한 평을 게재할 수 있는 매체가 공적으로 발행하는 웹진 <만화규장각>, 1년에 3번 나오는 오프라인 잡지 <지금, 만화> 정도이다. 근래 독립만화 판매 행사 '하고싶은 만화전'(하만전)을 주최하는 기획자이자 본인이 독립만화가이기도 한 성인수 씨의 독립만화 전문 서점 '사이드비'가 한동안 매거진을 운영하기도 했지만, 하만전의 운영이 바쁜 탓인지 매거진은 어느 순간부터 자취를 감췄다. 그런 상황에서 사실 독립만화를 다루는 매체를 기대하는 것 부터 사실 사치이긴 하다.


여기서 그나마 더 넓히면 상명대 디지털만화영상전공에서 연 1회 수준으로 발행하는 <만화비평 웁스>, 네이버 웹툰과 다산코믹스가 협업해서 역시 1년에 한 번 정도 나오는 <매거진 조이>일텐데, 전자 학과 발행지의 숙명인지 인지도도 많이 낮고 결정적으로 오프라인으로 이를 구해 보지 않으면 게재 글을 참 보기 어려우며 후자는 결국 네이버 웹툰 연재작만 다루며 게재글 상당수가 기존 게재글의 재게재를 넘지 못하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


하지만 독립만화가 시장성이나 대중성, 업계 현황을 떠나 자신이 만들고 싶은 만화 작업을 하기 위한 독립적인 길을 추구하며 제작되었듯, 독립만화를 다루는 매체의 작업도 결국 그런 길을 걸을 수 밖에는 없다. 지난 1월부터 2월까지 텀블벅으로 펀딩을 받아, 3월 중순부터 발송이 된, '독립만화를 중심으로 한 출판만화 글 매거진'을 표방하는 <뾰로롱>도 그렇게 태어났다. 맨 앞에 실린 '여는 글', 그리고 중간에 실린 자전 만화 <뾰로롱 창간기>에서 스스로 밝히듯 <뾰로롱>은 '글을 쓸만한 장이 없으니, 내가 만들자'는 마음으로 태어났다. 매체가 없으니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내가 생각하는 매체를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IMG_7374.jpeg
IMG_7378.jpeg


그러한 정신으로 태어난 <뾰로롱>은 분야별 매체에 걸맞는 정석적 글들로 가득하다. 작품을 낸 작가를 찾아가 인터뷰의 형식으로 이야기를 듣고, 작품의 제작기를 게재하기도 하며, 작품이나 판 전반에 대한 비평/리뷰를 수행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뾰로롱>은 결국 자신만의 기획과 시각을 아우르는 구성을 시도한다. 예를 들어 인터뷰는 <장례식 케이크 전문점 연옥당>의 산호 작가처럼 근래 두각을 드러낸 창작자를 찾아가기도 하지만, 아직 '독립만화'라는 말보다 'alternative comic'의 직역어인 '대안만화'라는 말이 더 익숙하던 2000년대 중반 처음 모습을 드러낸 <살북>(Sal)의 유창창 같이 과거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기획을 담기도 하는 것처럼. '하고싶은 만화전' 같이 2020년대 현재 한국 독립만화 영역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행사에 대한 접근도 있다. 시기별 독립/출판만화 신간 소개처럼, 좀처럼 축적이 잘 되지 않는 영역의 데이터베이스를 정리하여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의 수행도 한다. 독립만화 작가들이 자신이 낸 작품을 홍보하는 광고 지면도 있다.


<뾰로롱>은 매거진이 수행해야 할 정석적인 역할을 해나가면서, 구성에 담긴 면면을 통해 자신들이 어떤 잡지를 지향하고 있으며, 어떤 역할을 수행할 것인지를 창간호를 통해 몸소 입증하고 있다. 창간호의 페이지수가 100페이지가 채 안 되니 많이 얇은 편이지만, 독립/출판만화를 중심으로 리뷰-인터뷰-평론과 같은 작업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매체 자체가 그리 많지 않았다 보니 창간호에 수록된 글의 밀도는 결코 낮지 않은 느낌을 선사한다.


IMG_7376.jpeg
IMG_7377.jpeg


물론 관건은 '지속성'이다. 잡지를 비롯한 매체는 리뷰-인터뷰-평론과 같은 일상적인 작업은 얼마나 오랜 시간 반복하면서 데이터를 축적하며, 호별로는 미시적인 접근을 하더라도 출간/발행된 호들을 쭉 이어서 보는 순간 거시적인 흐름을 드러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축적에서 잡지는 인지도나 명성 같은 여러 수식어를 형성할 수 있게 되고, 판 내부에서 점차 중요한 역할을 형성해 나가게 된다.


비록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출판 산업이 호황이었을때도 단명하는 매체는 적지 않았고, 2000년대 이후로 계속 출판 전반이 경화된 상황에서는 주기적으로 비용이 소모되는 매체의 운영 자체를 어려워하거나, 설사 유지하더라도 발행인이나 편집자, 필자의 자의반 타의반 희생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뾰로롱> 역시 다른 매체, 특히 독립적인 매체가 그렇듯 결코 쉽지 않은 순간이 많았을 것이고, 앞으로 발행을 계속 이어나간다면 그런 순간들을 계속 만날 수 밖에는 없다.


그러기에 <뾰로롱>이 가늘고 길게 가기를 바란다. <뾰로롱>이 중적적으로 다루는 독립만화의 독립성에는 많은 의미나 함의를 담을 수 있겠지만, 창작자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성을 추구하며 쉽게 타협하지 않고, 쉽게 물러서지 않으며 자신의 길을 걸어나가고, 다시 이에 동의하는 이들을 자신이 만들어낸 세계로 불러 들이며 이 조그만한 자장이 쉽게 수명을 다하지 않는 하나의 작은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에 있지 않을까. <뾰로롱> 창간호의 끝자락에 실린 만화평론가 이재민의 한국 독립만화의 현재에 대한 평처럼, 단순히 작품이 그 자체로만 독립적인 방향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 판에 호응하고 접근하는 사람들과 시선을 마주치며, 지속 가능한 방향성을 함께 고민해야 독립성의 '독립'은 제 힘을 지닐 수 있다.


독립적인 방향성을 추구하는 창작을 계속 포착하고, 다시 매체가 지니는 지속적 독립성을 고민하면서 <뾰로롱>의 항해가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그 항해는 멀리서 보기에는 잔잔해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계속 치열한 고민과 방향 설정을 고민하는 중이 될 것이다. 창간호 이후로도 매호를 얇은 분량으로 출간하더라도, 적지 않은 고민으로 매호의 구성을 기획하고, 이를 통하여 독립만화의 흐름과 생태계를 지속적으로 포착하고, 때로는 적극적으로 방향성을 새롭게 제안하는 매체가 되었으면 한다. 그렇게 생태계의 순환을 촉진하는 촉매가 될 수 있기를 응원한다.


IMG_7380.jpeg
IMG_7381.jpeg
매거진의 이전글<좀비 랜드 사가 : 유메긴가 파라다이스> 단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