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22.
거의 1년 넘게 감기 한 번 걸리지 않고 지냈던 것 같은데, 운동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감기에 걸렸다.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식은땀과 두통, 기침에 정신이 혼미했다. 요즘 감기는 많이들 걸린다고 했는데 미팅에 고강도 운동에 일에. 당연히 걸릴만했다.
감기에 걸리고 나서 한 일은 먹고, 쉬고, 물을 마시고, 비타민을 챙기고. 그것뿐이었다. 너무 지루해서 글을 조금 쓰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쉬는 것도 잠이 오지 않으니 쉽지 않다. 건조한 집의 수분을 챙기는 일도, 뜨거운 물을 마시는 일도 모두 혼자 해내고 있다. 생각해 보면 인간은 참 연약하다.
이렇게 감기 바이러스에 된통 당하고 있다 보니 과거에 양악수술 후가 생각났다. 그때는 정말 끔찍했다. 힘은 없었고, 온몸의 면역력은 바닥이 된 것 같았다. 당장 음식을 먹을 때도 주사기를 통해 입에 꽂아 밀어 넣어 먹어야 했으니. 얼굴이 몇 배는 커지고, 수십 년간 잘못된 방향으로 자란 뼈들을 잘라냈으니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어쩌면 도망치지 말고 어린 나이에 할 걸 그랬다. 어리면 회복도 빠르고 더 금방 치유됐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서른이라는 나이가 돼서야 도전할 수 있었다. 후회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이나 내가 겪어야 하는 어려움들을 죽을 때까지 가져가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온전하진 않지만 나아진 것은 그때 내린 결단의 덕이었다.
오래간만에 몸의 아픔을 느끼면서 여러 가지 것들이 분명해지는 것 같았다. 몸이 아파도 내 나이쯤 되면 누군가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않게 된다. 괜히 부모님을 걱정시키고 싶지도 않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피치 못할 미팅 정도만 뒤로 미루고 고요함 속에서 끙끙대며 견디는 길이었다.
종종 사람들은 아프면 바로 병원에 가라지만 병원에 가는 것도, 그곳에서 어떤 처방을 주는지도 사실 뻔했다. 일요일인 오늘은 일반 병원은 진료를 하지 않았고, 약국에 갈 힘도 없었다. 힘을 내서 밖에 밥이라도 먹고 올까 했지만 힘이 나지 않았다.
병원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병원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지도 않는다. 한국은 과잉 진료나 미국에선 쓰지도 않는 약을 쓰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렇게 해서 며칠 고생하고 자고 일어나는 것이나 몸의 변화를 느끼며 견디는 것이나 거기서 거기였다. 거기에 더불어 나에겐 여유가 없었다. 병원에 갈 여유도 힘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한참을 기도했다. 작은 목소리로 말이다. 지금 나는 강해지고 있다고. 예전 같았더라면 힘든 운동도 여러 핑계로 하지 않고, 일이 바쁘다며 대충 했던 식사도 이젠 그만. 환자가 환자다워야 빠른 치유를 얻는 것처럼 빠른 치유를 위해 온 에너지를 치유에 쏟았다.
기독교적 세계관이나 불교의 윤회사상이나. 죽음 이후가 있다고 믿는 모든 종교를 보면 삶은 유한하고, 동시에 무한한 너머를 말한다. 그렇기에 이 삶을 짧고 허무하지만 동시에 빛나는 순간이다. 나는 삶의 이유가 정해진 사람이다. 나는 산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지만 동시에 이미 떠난 망자를 위로하고 싶다. 아무도 찾아와 주지 않는 곳에 나는 신이 머물고 있다고 믿는다. 많은 억만장자들의 파티 속에 신이 함께 춤을 추고 있다면 나는 그 신을 믿지 않을 것이다. 내가 믿는 신은, 바라는 신은 나 같이 몸이 아프고, 아무에게도 관심을 못 받는 상황에서 조그맣게라도 신을 찾아가는 이들 곁에 있으리라고. 나는 그렇게 믿는다.
열이 오르고, 더위와 추위가 번갈아 오고, 머리가 아프다. 목이 마르고, 동시에 답답하기도 하다. 이것은 내가 살아있기에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살아있는 이만이 고통을 느낄 수 있고, 동시에 살아있는 인간만이 고통 속에서도 빛을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신에게 어린 시절 기도했던 것은 한 번의 기회였다. 사람들에게 한 번 정도는 삶을 바꿀 기회가 주어져야 하지 않겠냐고 따져 물었다. 그때 나는 아프리카에 사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고, 전기가 없어 공항 활주로에 이착륙하는 비행기 불빛으로 공부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그렇게 간절하게 삶을 바꿀 기회를 얻기 위해 어두운 밤, 흐릿한 비행기 불빛을 보고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참 부끄럽다. 나는 그런 위인이 못된다. 나이가 서른을 넘겼지만 내 삶에는 그 정도로 애써 본 적도 그 정도로 절망했던 상황도 없었다. 어찌 보면 오만하고 방자하게 주어진 것들의 혜택을 누리며 살아온 인물에 가깝다.
이 세상의 뒤편에 무엇이 있을지 나는 모른다. 인간이 만들어낸 대부분 지식은 인류 역사 200만 년 중 고작 몇 백 년 동안으로 쌓아 올린 것들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세계를 넘어 전혀 인지할 수도 없는 세상이 있다고 한들 놀라운 일도 아니며, 동시에 아무것도 없다고 한들 놀라운 일도 아니라 생각한다.
설령 아무것도 없는 무의 세계가 우리의 세계라 할지라도, 나는 죽음을 준비하며 살고 싶다. 내가 사랑하는 몇 명의 사람들과. 동시에 많은 한을 지고 떠난 이들을 추모하며 말이다. 낭만적이게 들리겠지만 나에겐 그게 이유가 된 것 같다. 오늘은 아파서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