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30.
연 수익이 10억쯤 되던 시절이 짧게 있었다. 정확히는 10억은 3개월 정도 걸려 번 돈이었다. 큰 계약의 영업이익은 그정도가 된다.
그때는 세상이 딱히 어려울 게 없어 보였다. 평생 B2C를 해서 성공하려고 했으나 정작 내가 잘하는 것은 B2B였고, 회장님들은 나를 무척이나 좋아했으니 말이다. 내가 생각해도 잘했던 것 같다. 회장님들이 좋아할 만한 모든 걸 갖췄었다. 스스로 개발을 하면서 여러 번의 폐업을 걸쳐 사업을 키워갔고, 굵직한 파트너들이 수십 개였고, 그분들이 아는 사람들을 나도 알았으니 서로에게 있어서 검증이라고 할 것도 별로 없었다.
그랬기에 로펌 임원 분들이나 공기관 임원분들 중에서는 신부감을 소개해준다는 분들이 참 많았다. 자기 딸을 만나보지 않겠냐는 분들도 있었고, 소개를 해주기도 하고. 한 곳에서는 소득을 보고 원하는 연예인이 있냐고 물었다. 깜짝 놀랐었다. "그렇게 아무나 다 만날 수 있어요?"라고 하니 전부는 아니지만 상당히 쉽게 소개해줄 수 있다고 했다. 그럴만했다. 10억이라는 돈은 그 정도의 힘이 있다.
세상이 힘들다 힘들다 하지만 돈을 쉽게 많이 벌 수 있는 구조에 도달한다면 난이도는 급하락 한다. 언제나 돈이 문제였다. 세상이 힘든 이유는 돈 때문이고, 돈이 넉넉한데도 삶이 힘들다고 느껴지면 충분한 돈이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돈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도 남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그렇게 지내던 시절에는 모든 게 의미를 잃어갔던 것 같다. 아이러니하다. 그냥 세상이 다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모든 게 달리 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즐거운 순간이면서 동시에 공허했었다. 마음이 괴로웠었다. 지금은 괜찮지만 그 당시에는 하고 싶은 것도 꿈도 없이 사람들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려고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면서 남들이 하자는 걸 하면 돈을 쓰고도 남을 정도로 가져왔으니 말이다.
지금도 열심히 살아가면 월에 수천만 원씩의 수익 구조를 만들 만큼 개발사 대표로서 저력은 가지고 있지만, 그 시절에는 사람에 대해 완전히 지쳐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항상 친구에게 전화를 걸면 이렇게 시작했다. 'OO아 죽을 거 같아.' 그럴만했다. 온갖 고객들이 하는 온갖 이상한 사건들과 돈도 안 되는 일들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일들이 너무도 많았다. 도와달라는 사람들도 너무도 많았다. 세상에 왜 이렇게 도와달라는 사람들이 많은지. 내 삶을 잃어갔던 것 같다. 그래서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많이 방황하면서 말이다.
반면 나처럼 살지 않고, 투자를 받아 살아가는 대표는 연 수익 10억에 도달하기는 어렵다. 투자받아 운영하는 회사의 돈은 회사의 공금이라 대표가 마음대로 빼갈 수도 없거니와 수익이 생겨도 투자자들의 몫이 있다. 결국 대표는 지분으로는 부자일지 몰라도 월급쟁이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B2B 계약을 하는 사람이고, 계약마다 수익 구조가 몇 억에서 몇 십억도 나온다. 그 안에서 내가 어떻게 일을 해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그 시절 무렵부터 사라진 것 같다. 깨달아 버렸기 때문이다. 어떤 메커니즘으로 세상이 돌아가는지와 어떤 구성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로펌 사람들, 회계 법인 임원들, 중견 기업 회장님들, 은행권 사람들, 은행 회장님들까지도. 난다 긴다 하는 분들을 다 만나면서도 나는 딱히 두려움이 없었다. 그분들의 인생도 대단하지만 나는 촌구석에서 혼자 프로그래밍해서 사업을 시작한 사람이고, 투자금 없이도 그 많은 인맥과 그 많은 사람들과 거래를 하고, 서비스를 제공하고, 중계를 해오며 올라왔다. 그래서 두려움이 없다. 나는 세상에 두려움이 별로 없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걸 깨닫고 나서 마주한 공허함과 그리고 사람들의 배신은 인간에 대해 삶의 한 부분씩 다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 많은 돈을 벌고 지금은 어디에 뒀냐고? 내 사람들을 지키는데 다 써버렸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이들의 약속까지 대신 지켜주면서 말이다. 그렇게 멍청이 같은 삶을 보내면서도 딱히 삶이 더 괴로워지진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돈이 꾸역꾸역 들어오던 시절보다 영혼이 공허하지 않았다. 참으로 웃긴 일이다. 지금은 월에 1억씩 벌지도 못하는데 오히려 충만해진 것이다. 온갖 상처들과 인간쓰레기들과 사기꾼들을 마주하면서 그들과 싸우기도 했고, 끝까지 추적하기도 했는데 참으로 웃긴 일이다.
늙어버린 것 같다. 원래도 늙은이 소리를 듣곤 했지만 더 늙어버렸다. 사업을 몇 번씩 폐업하다 보면 인간이 늙게 된다. 외모는 어려 보여도 속은 늙어버린 것이다.
그런 시절을 보내며 삶에서 깨달은 게 있다면, 사람들은 딱히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내가 죽을 만큼 힘들어서 죽고 싶다 말해고 해도 죽든지 말든지 할 뿐이다. 내게 아무리 좋은 일이 생겨도 축하해 주는 이는 별로 없다. 세상은 그렇다. 오직 가족 말고는 이 세상에서 진심으로 성공을 기뻐해줄 이는 거의 없다. 결국 삶의 이유가 먼 곳에 있는 게 아니었다. 그저 사랑하는 이와 즐거움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것이 복이었다.
나에겐 기쁨을 나눌 이가 없었던 것 같다. 그게 고통이었고, 사랑의 대상이 없었던 삶은 대체자를 찾아다녔다. 직원들을 아끼기도 했지만 직원들은 내 사랑을 별로 필요해하진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부담을 느끼거나 오해했을지도 모른다. 그럴만하다. 나 같은 캐릭터는 정말 드물다고 스스로도 생각한다. 애초에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적으로 이렇게 사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생각을 온전히 글로 공유하며, 투자금도 한 푼 받지 않은 회사로 수십 명을 고용해서 월급을 주고, 일하면서 만든 인맥으로 기업 회장들을 서른 살쯤부터 만나고 다녔다. 웃긴 일이다. 참으로 웃긴 일이다.
나는 내 삶에 집중해 살아가고 있지만 돈이 가지는 힘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힘을 가졌는지도, 없던 사랑을 이끌어낼 만큼 압도적 인지도 안다. 그러나 그런 실체를 떠드는 것을 오랫동안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감췄다. 말할 필요도 없었고, 모든 스토리를 이야기할 필요성도 없었다. 왜 말할 필요가 없을까. 나에게 피해를 끼친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나 역시도 용서받을 수 없다. 그게 성경적인 세계관이다.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용서해 주어야만 나 역시도 용서받을 수 있다. 내가 용서하지 못하면서 용서받기를 기대하면 안 되겠지. 그래서 쓰린 마음으로 그들을 모두 용서하고, 동시에 악인들이 있다면 악과 싸우기 위해 애써왔다. 악은 싸움의 대상이지 피하는 대상이 아니다. 그게 옳은 삶이다.
세상의 기준에는 나처럼 사는 사람이 있던지 없던지 사실 관심도 없다. 나는 내 길을 간다. 나는 내 길을 사랑하게 됐다. 내가 하는 모든 행동에 대해 부끄러움도 없고, 종종 일을 미루더라도 부끄럽지도 않다. 나는 내면과 외면이 다른 삶을 사는 과거를 벗어버린 것 같다. 안이나 밖이나 사실상 같다. 그래서 안에서 느끼는 것이 밖에 드러나고, 밖으로 드러난 것은 안의 결과물이다. 그 사이의 간극이 매우 적다.
앞으로 내가 연에 10억을 버는 것을 넘어 100억을 벌지, 1000억을 벌지, 1조 원을 벌지는 신만이 아시겠지만 욕심이 있다면 B2B가 아닌 수많은 사람들에게 효용성 있는 일을 해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제품으로 알려지고 싶고, 제품으로 사랑받고 싶다. 수많은 거래를 하며 기업 사이에서 돌아가는 일들도 재밌지만 그 안에 있는 온갖 얼룩진 거래들과 진실까지도 매번 생각해 보는 것은 힘든 일이다.
잘 살아가서 좋은 제품을 세상에 제공하고, 그것으로 내 삶을 누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돈을 기준으로 누군가를 소개받고 싶은 마음도 없고, 마빡에 적힌 내 가치가 연에 얼마를 번다는 자본주의의 논리로 평가받고 싶지도 않다.
나는 사람이 서로 친해질 때 학교에서 친구 만드는 것과 비슷하면 좋다고 생각한다. 서로 비슷한 상황에서 같은 학교를 다니는 친구끼리 서로 마음에 드는 것이다. 집안이 좋을 수도 있고, 성적이 좋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부수적인 것이고, 그런 것 없이 서로가 좋을 수 있어야만 서로에게 힘든 시기가 와도 의지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돈으로 관계를 사는 슬픈 인생으로 살고 싶지 않다. 그저 세상에 얼마나 좋은 일을 해왔는지, 그것에 대한 합당한 값으로 세상이 나에게 준 가치는 돈이 되겠지만 그것과 관계는 별개로 살아가고 싶다. 나는 돈에 묶여 사는 노예가 아닌 사랑하는 이들로 묶인 삶을 원한다. 인간은 사랑을 위해 살아갈 때 누구보다 찬란히 빛날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