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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훈 Mar 20. 2019

이뤄지는 꿈

가장 힘든 순간 과거의 내 모습을 보다


1. 돈 벌기 참 쉽네!

나는 어렸을 적 거상이라는 게임을 좋아했다. 거상은 거상이라는 이름답게 거래가 보통 게임과 달랐다. 보통은 어느 도시에서 아이템을 사던 가격이 항상 동일하다. 하지만 거상은 도시마다 아이템 가격이 다르다. 도시에 물건이 많으면 저렴해지고, 적어지면 비싸지는 수요와 공급의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 수원에서 옥수수가 900냥인데 한양에선 1100냥일 수 있다. 하지만 시세 차이로 인한 수익은 유한하다. 내가 옥수수를 몇 만개를 사서 한양에 팔면 그만큼 한양의 옥수수값은 떨어져서 1050냥 -> 1000냥 -> 950냥으로 서서히 줄어든다.


거상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꽤 운이 좋았다. 진주와 포항쯤 되는 거리에 시세 차이가 매우 큰 품목을 발견한 것이다. 도시를 왕복하는데 10분 정도 걸리지만 매번 2~5만 냥씩 벌었다. 3시간쯤 왕복할 때쯤 되니 자본이 많아져 한 번에 20만 냥씩 벌기 시작했다. 이야 이게 돈 버는 맛이구나! 이때 처음 돈 버는 즐거움을 느끼고 나는 정말로 거상이 되는 을 꿨다.


행동에 대한 보상이 명확한 일은 강력한 동기부여를 만들게 된다. 하지만 행동에 대한 보상이 나타나지 않으면 행동 자체를 포기한다. 자기 관리에 대한 고창석 형님의 말씀을 들어보자.


나도 그렇다. 나도 잘생겼으면, 키 크고, 뭘 먹든 잘 소화한다면 이렇게 살지 않았을 거다. 분명! 분명 조치를 취했을 거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젠장)


이루어지는 꿈은 행동과 보상이 이어져서 끝없이 선순환하게 만든다. 반복행동을 통해서 더 큰 보상을 원하게 만들고, 그 일을 더 쉽게 열심히 하게 만든다. 성공의 법칙을 발견한 삶이 되는데 모든 자기 관리가 이런 패턴을 따른다. 관리에 들어가는 에너지보다 그로 인한 보상이 훨씬 크기 때문에 견딜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우리의 삶은 정반대로 간다.


내 이야기를 해보자면 나는 중학생 때 못생김에 대한 콤플렉스가 극도로 심했었다. 키도 작고, 검은 얼굴에, 머리는 힘없이 축축 가라앉았다. 심지어 머리에 기름기도 많아서 매일 오후면 떡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사람은 이런 비참함 속에서 희망을 품는다. 이렇게 스스로에 대한 열등감과 콤플렉스 속에서 나는 여자 친구라는 불가능한 꿈을 꿨다. 하지만 남자 중학교에 다니고, 학원도 다니지 않고, 주변에 여자라곤 없는 환경 속에서 무슨 인연으로 여자 친구가 생길까. 아무런 기약 없는 꿈이었다.


기약 없는 꿈을 꾸고, 행동과 보상이 이어지지 않는 상상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최악이다. 이런 꿈을 꾸는 것은 아무런 보상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자신을 갈아먹으며 비참하게 만든다. 특히 그 꿈이 크면 클수록 말이다. 내 경우엔 극심한 우울증에 빠졌고, 그로 인해 가슴이 찢어지듯 아픈 나날을 보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간다. 행동과 보상의 인과관계가 뚜렷하지 않은 곳에 노력한다. 수험생, 취준생, 고시생, 창업자들이 그렇다. 성공의 궤도에 오르기 전까진 행동이 아무런 보상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돈이나 축내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꿈을 꾸고 있지만 꿈이 도리어 나를 비참하게 만들고, 멍청이로 만드는 것 같다.


"성공하고 싶다. 잘해보고 싶다. 노력해보고 싶다. 그런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한 주에 80시간씩 코딩하고, 공부하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지만 여전히 방황하고 있다. 열심히 만든 것들이 세상에 아무 의미 없다는 걸 지난 1년간 끝없이 보고 또 봤다. 그러다가 실수 하나라도 하면 사용자 수 백 명이 사라지는 일을 마주해왔다. 노력하지만 나는 모든 걸 완벽하게 할 수도 없었고, 에너지는 고갈되어간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쁜 꿈(행동과 보상이 이어지지 않는 꿈)을 포기해야 하는가?




2. 행동과 보상이 이어지지 않을 때

나는 꿈을 조금 바꿨다. 바로 나 자신의 성장으로 말이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일을 하는 게 아닌 성장 자체로 바꾼 것이다.


내가 개발한 앱은 팔릴지 안 팔릴지는 내가 통제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성장은 오롯이 통제할 수 있는 일이다. 통제할 수 있는 일에서 인과관계를 만들어가고, 그곳에서 작은 보상들을 얻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 개인 브랜딩 사이트를 개발한다.

- 좋은 글을 계속해서 적어간다.

- 하루하루 공부하고 배운 것을 기록한다.

- 내 앱을 발전시켜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이 과정에서 나는 꿈의 두 번째 특징을 발견했다.



이루어지는 꿈은 자신의 성장에 집중한다.


허왕된 꿈은 인과관계가 없기 때문에 행동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좋은 차, 좋은 집, 멋진 연애 상대, 어마어마한 돈, 명성 등 말이다. 마치 마약처럼 같아서 잠깐의 자극을 주지만 장기전에 적합하지 않다. 거의 대부분의 꿈이 장기전을 필요로 하는 걸 생각해보면 잘못된 전략임을 알 수 있다.


반면 성공적인 꿈은 매 순간 성장에 집중한다. 나도 공부를 열심히 해봤지만 축포를 터뜨리는 생각보단 내가 최선을 다해 공부하는 모습 자체를 꿈꿨을 때 멈추지 않는 힘이 생겼다. 다른 친구들이 대단하다고 여길정도로 공부하는 것. 공부하는 일 자체가 꿈이 되자 보상을 매일매일 얻게 된 것이다. 스스로에게 주는 성장에 대한 보상과 만족감은 그 어떤 외부적인 보상보다 크고 달콤하다.






3. 꿈을 포기하고 싶은 날

성장에 집중하는 순간은 달콤하게, 또한 마법처럼 지나가곤 한다. 하루를 열심히 보낸 나 자신에게 뿌듯하고, 자랑스럽고, 행복하다. 하지만 때론 현실이 차갑게 따귀를 때리곤 한다. 통장이 비어 가고, 지갑엔 잔돈조차 보이지 않는 순간이 있다. 꿈, 성장 같은 단어가 사치로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나는 이 순간이야 말로 우리가 인간다운 순간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언제나 이상향을 향해 달려가는 종족이 아니다. 우리는 현실을 차갑게 인식하고 고통을 느껴야 한다. 그래야 적응할 수 있고, 생존할 수 있고,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 하지만 차가운 고통에 익숙해져 그 고통마저 느끼지 못하는 일이 오면 안 된다. 꿈을 포기해선 안된다.


많은 사람들이 행동과 보상이 일치하지 않을 때 좌절하고 도망치는 선택을 한다. 아무것도 안 하는 쪽은 적어도 좌절감은 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니다. 우리는 성장하고, 발전할 때 만족감을 느끼게 디자인된 종족이다. 백수는 하루 종일 펑펑 놀 수 있지만, 자기 전 하루를 후회한다. 후회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삶의 반전을 가져오는 유일한 길은 꿈꾸는 삶뿐이다. 상황을 개선하고, 더 멋진 삶을 꿈꾸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 멀리까지 꿈꿔선 안된다. 갑자기 발리에 별장을 두고, 아름다운 여인과 요트를 타는 상상은 망상에 불과하다. 내일을 꿈꿔야 한다. 내일 더 멋져지고, 땀 흘리, 열심히 일하고, 뛰어난 성과를 만들고, 나를 발전시키고,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만들고, 친구들에게 연락하고,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자녀가 되는 걸 꿈꿔야 한다.


나는 한 주에 80시간씩 공부하고 한다.  하지만 매일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만난다. 그때 나는 생각한다. 오늘보다 더 힘들던 순간들을 기억한다. 2011년 돈 500원이 없어서 하루 종일 밥도 못 먹고 캔커피 한잔도 사지 못한 시절을 떠올린다. 2013년 몇 년간 쌓아온 팀이 해체되고 모두 떠난 것을 기억한다. 2015년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창업을 결심한 순간을 기억한다. 2016년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60세 어머니께 용돈을 받는 모습을 본다. 2017년 수개월간 개발한 앱을 포기하고, 홀로 슬퍼하던 날을 기억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자. 내 동갑의 잘 나가는 창업가들, 돈 잘 버는 크리에이터들, 돈 잘 버는 친구들, 잘 나가는 연예인들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자. 그들의 삶과 내 삶은 완전히 다르다. 나 그리고 당신과 같은 난이도의 삶의 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큰 꿈을 품은 사람은 자신과 싸운다. 혹자는 꿈은 사치라며 현실을 말하겠지만, 나는 꿈이 없는 게 사치라 말하고 싶다. 삶의 방향이 없는 삶이 사치인가, 더 나은 삶을 바라는 게 사치일까.


시간은 흘러 어린 나는 떠나가고 이제 아저씨 나이가 들어가는 나를 본다.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꿈꾸던 과거의 나를 설득할 수 있는 오늘을 보내야 한다. 스스로에게 쪽팔리게 살고 싶지 않다. 남에게 인정받는 삶이 아닌 스스로 인정할만한 삶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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