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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훈 Feb 12. 2020

불과 5년 만에 가능한 일

프로그래머, 창업자,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만들 수 있기까지

내가 프로그래밍을 진지하게 생각해본 건 대학교 3학년 때이다.

내가 다닌 대학에서는 연 2회 패션과 졸업 패션쇼가 열린다. 패션쇼는 단출하지만 멋졌는데, 모델로 섭외된 분들은 하나같이 길쭉하고, TV에서나 있을 법한 외모였다. 공대생 3학년의 구질구질함이 배어있던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살고 있음이 분명했다. 4년간 배운 것을 남들 앞에 멋지게 공개할 수 있다니... 그게 너무나도 멋지고 부러운 일이었다.


반면 내가 배운건 열역학, 양자역학, 반도체 같은 분야였다. 아무리 공부해도 도통 멋져지지 않고, 대부분의 사람들과 이야기하기도 어렵다.


그렇다. 대학교 3학년의 나는 내가 배운 게 무척이나 세상에서 단절되어있고, 내가 앞으로 살아갈 세계 역시 고립된 곳이란 걸 느꼈다. 그때 두려움이 느껴졌다. 나는 이런 아름다운 것들도 많이 보고 싶고, 사람들에게 환상적인 느낌을 주는 일들을 하고 싶은데 나는 지금 무엇을 하는 걸까. 내가 마주할 현실은 차가운 실험실에서 숫자와 산더미 같은 논문을 읽으며 실험 기계와 싸우는 날들인데, 이게 내가 바라는 일이었을까?


어쩌면 그 순간부터 정말로 바라는 것을 추구했던 것 같다. 그날 나는 집에 돌아가 내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웹사이트들을 만드는 일들을 공부했다. 당시에 내가 관심 있었던 건 웹을 통한 예술이었는데, WebGL 같은 기술로 구현이 가능했다. D3.js 같은 라이브러리를 활용해 데이터 비주얼라이제이션 아티스트들도 활동하고 있었고, 더 나아가 자신이 원하는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 시점부터 내 삶은 바뀌게 되었다. 그전에는 수동적으로 공부만 하던 사람에서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창조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시도한 건 당시 배우고 있던 엔트로피와 관련해서 자동으로 그래프를 그려주는 툴을 만들어보려고 했던 일이다. 열역학 수업이 끝나고 교수님을 만나 이런 소프트웨어가 있는지, 만약 만들게 된다면 어떤 고민을 해야 할지 여쭤봤다.


교수님은 무척 친절하셨는데, 이미 존재하는 소프트웨어를 보여주시고 고려할 사항들을 하나하나 설명해주셨다.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해당 소프트웨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수식이나, 상황에 대한 변수가 들어가야 했다.


소프트웨어가 이미 존재했기에 나는 나만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 생각해보았다. 그중에서 내가 배운 학과 지식을 활용하고, 공부도 할 수 있는 것을 해보려 했다. 핫한 기술이나 이론들을 소개해주는 사이트가 외국에는 몇 개 있는데 이것의 한국 버전을 만들어보고 싶어 졌다. 당시 나는 MIT 테크놀로지 리뷰INTERESTING ENGINEERING 같은 사이트들을 자주 봐왔었는데 이것의 한국 버전을 만들고 싶었다.


이 프로젝트는 웹사이트를 만들어야 했는데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다음과 같았다. 워드프레스 같은 기존의 유명한 도구를 사용하는 것, 아니면 밑바닥서부터 만드는 것. 워드프레스를 살펴보면 사이트는 만드는 난이도는 모든 걸 만드는 것보다 훨씬 쉽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효과나 기능들을 추가하기 어려웠는데, 당시에 나는 웹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것저것 원하는 게 많던 사람이었다. 그러다 보니 주제넘게 많은 욕심을 부렸고, 워드프레스로 하기 어려운 것들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해냈다. 워드프레스로 내가 원하는 구성, 레이아웃, 텍스트 에디터 등을 갖춘 서비스를 만들었다. 디자인부터 개발까지 모두 혼자서 해냈지만 더 큰 문제가 앞에 있었다. 바로 콘텐츠. 플랫폼을 만드는 건 쉽지만 그 안에 들어가는 콘텐츠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특히 남에 걸 단순히 복사 붙여 넣기 해서는 안되기에 내가 기술들을 조사하고, 그것에 대한 글을 작성해야 했다. 개발보다 더 큰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이렇게 되자 나는 기획과 설계의 중요함을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좋은 소식을 공유하고, 소통하는데 목적을 두자고 해서 플랫폼은 버리고, 당시 유행하던 페이스북 페이지로 전환했다. 페이스북 페이지는 생각보다 더 재밌고 운영하기 쉬웠다. 좋은 콘텐츠를 공유하면 됐고, 당시엔 페이스북이 워낙 인기여서 신생 페이지들이 우후죽순처럼 성장하던 시기였다. 내 경우엔 다루는 콘텐츠가 특정 계층에 엮여있다 보니 광고도 돌려봤는데 광고 효과는 쏠쏠했지만 내가 얻는 이득이 없었다.


그때 내가 실수한 게 있다. 당시 페이스북 페이지는 하루에도 많은 콘텐츠를 올려야 하는 게 법칙이었다. 나 역시 이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하루에도 6개~20개의 콘텐츠는 올려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었다. 이 강박증은 나를 굉장히 지치게 만들었는데, 학과 공부뿐만 아니라 시험 준비, 주말에 하던 일들까지 고려하면 무척이나 타이트했다. 또한 아무 콘텐츠나 올리는 것도 안됐다. 대중이 재미를 느낄만한 소재여야 했는데 이것은 매일매일 나타나는 게 아니었다.


결국 페이스북 페이지는 시간이 지나면서 운영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 하루 이틀 쉬다가 콘텐츠를 올리면 사람들은 좋아요를 취소하는 일이 더 많았고, 그렇다고 자체 콘텐츠 좋아요 숫자로 퍼져나가는(Organic referrer) 수치도 무척 낮았다.


페이스북 페이지도 문을 닫고 나서 생각해보니 근본적인 문제를 알 수 있었다.


1. 내가 원하는 것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없고,

2. 설령 완성하더라도 그것을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을 때


결국 멈추게 된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는 살면서 내가 시도한 다른 많은 프로젝트들과 사업들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나는 더 깊게 나아가 보게 됐다. 두 가지 모두 잡아버리자. 혼자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고, 그것을 운영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자.


이 바탕을 두고 만든 첫 번째 작품은 월스트리트라는 모바일 게임이었다. 이 게임은 내가 모든 코드를 작성했고, 운영도 혼자서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만들었다. 이 게임은 내가 해결하고 싶던 두 문제를 해결했지만 게임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재미나 이펙트, 마케팅, 홍보 등에서 실패했다. 그뿐 아니라 완성도도 낮았다.


이 실패를 겪고 나서 만든 것은 900 stage다. 이것은 콘텐츠 플랫폼으로, 브런치와 유사한 성격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 성공하지 못했는데 2번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돈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당시 나는 군 복무를 해결하지 못했고, 허락된 시간이 적었다. 싱가포르의 한 투자자로부터 내 아이템의 투자 제의도 받았으나 군대까지 3개월 남은 시점에서 투자를 받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돈도 없었고, 군 복무는 해결할 방법이 더욱 없었다.


위의 모든 실패에서 능력, 운영, 그리고 자본의 중요함을 배웠기에 내가 만든 에어 데스크에는 이 모든 것을 해결한 장치가 들어가 있었다. 에어데스크는 확장 프로그램으로 자체 사용료가 발생하지 않는다. 구글을 통해 서비스하고 다운로드되기 때문이다. 또한 운영비를 최소화할 수 있다. 홈페이지 및 서버 자원은 최소화로 사용할 수 있고, 이로 인한 비용은 매우 적었다. 들어가는 에셋, 이미지, 음악 등은 최대한 무료 라이선스 및 유료로 구매해서 사용하는데 이 역시 비용이 매우 낮았다.


즉 에어데스크는 내가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운영할 수 있었고, 자본도 거의 들지 않았다. 에어데스크는 군 복무를 하면서 만들었는데,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확장 프로그램이라는 것 자체가 매우 가볍고, 만들기 쉬워 저사양 컴퓨터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에어데스크는 총 2년 조금 넘게 개발했는데, 1년 1개월은 군 복무하면서 만들었고, 이후 1년은 사회에서 만들었다. 내가 필요로 하는 모든 기능들을 직접 개발하면서 스킬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고, 사용자의 수 백건에 이르는 요청들을 응답하면서 CS를 배웠다. 성능 향상을 위해서도 고민을 많이 했다. 지금은 에어데스크가 상당히 빠르게 동작하는데, 이렇게 빠르게 동작하기 위해서 코드 압축, 캐싱, 로컬 저장, 스프라이트 이미지 등을 사용했다.


에어데스크를 만들면서 나는 웹사이트의 밑바닥서부터 하나하나 배우게 됐다. 클라우드를 공부했고, 프레임워크들을 배웠다. 이렇게 하나 하나하면서 웹사이트도 만들었고, 확장 프로그램을 서버와 통신하는 일들을 구현했으나 에어데스크는 몇 가지 어려움으로 인해 더 이상 업데이트는 안 하게 됐다.


이후 나는 한 회사에서 CTO로 근무하고 있고, 퇴근 후에는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며 살고 있다. 불과 5년 만에 내가 바라던 모든 기술과 능력을 얻을 수 있었다. 대학교 4년 동안 배운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군 복무 2년을 하면서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일이 행복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일은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보다 기분 좋은 순간이고, 내가 만든 것들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순간은 패션쇼에 올라선 디자이너만큼이나 뿌듯한 순간이다.


내가 만든 것을 인터넷에 공개하고, 사람들이 좋게 평가해줄 때 나는 실험실에서 경험하지 못한 삶을 느끼고 있다. 이것을 나는 계속해서 공유하고 이야기하고 살아간다. 다른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나처럼 원래의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분들에게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한상훈이라는 놈이 왜 계속 실패했는지, 어떻게 실패했는지, 그리고 그것에서 무엇을 배워서 왜 이걸 만들었는지 나누고 싶다.


5년 정도 걸렸다. 이제 나는 페이스북을 만들고 있다. 항상 주커버그처럼 살고 싶었는데, 이제야 대학생 때 주커버그의 모습을 조금은 따라잡은 것 같다. 다음 달 중으로 소셜 서비스를 론칭하려고 한다. 본업을 하면서 사이드로 만드는 거라 쉽진 않지만, 이제 나는 생각을 실제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됐다.


목표에 다다르기까지 생각보다 짧게 걸렸다. 세상의 많은 것들은 생각보다 쉽게 이뤄질 수 있는 것 같다. 내 삶이 그랬다. 과정이 쉬웠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지난 5년의 내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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