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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훈 Dec 11. 2019

멍청함

무언가 알고 있다는 착각

곤경에 빠지는 건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
- 빅쇼트 中



터프한 한 주를 보냈다. 내가 멍청했기 때문이다. 바로 서버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일에프육공디라는 신생 스타트업에서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데 주말에 인기 스트리머의 팬미팅 참석이 잡혀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올 것을 예상했기 때문에 넉넉한 서버를 미리 준비하려고 했다. 하지만 멍청하게도 나는 서버 준비를 제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 덕분에 코어 서버가 날아갈 수도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내가 사용 중인 클라우드 서비스에 대해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 뿐 만이 아니었다. 내가 연결해둔 분산 서버 컴퓨팅은 엉망이었고, 실제로 분산이 이뤄지지도 않았다. 그저 이뤄진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걸 테스트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대충 아는 지식으로 대충 돌아갈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결과는 참담했고, 한 명의 개발자로서 매우 부끄럽고 죄송스러웠다. 인기 스트리머의 팬미팅에 참석 신청 과정에서 경험하게 된 최악의 사용자 경험은 내 입으로 말하기도 부끄러운 지경이었다. 게시판에 이것에 대해 수많은 글이 올라왔다고 하는데 나는 읽지 못했다. 부끄럽고 죄송스러웠기 때문이다. 회원가입을 원했지만 하지 못한 사람만 250명이 넘었고, 기존에 회원가입을 신청해서 힘겹게 참여한 사람만 100여명이었다.


토요일, 일요일 동안 죽은 서버를 살리기 위해서 내가 아는 모든 지식을 사용했다. 이 과정에서 전임 개발자가 전달하지 않은 사항들로 인해 무척이나 상황이 곤란해졌다. 허용 아이피 설정 같은 매우 중요한 항목들에 대해 전혀 기록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의 서비스를 원상복귀하는 과정은 혼자 힘으로 무척 힘들었다. 3일쯤 밤낮을 바꿔가며 고치고나서야 어느정도 돌아가는 상태를 만들 수 있었고, 지난 이틀간은 다음번 사람들이 불편함을 격지 않도록 서버를 후두려 패는 로드 테스트를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도 나는 멍청했다. 로드 테스트를 어떤 식으로 어떻게 진행하는지 익숙하지 않았기에 할 필요도 없는 삽질을 하며 몇 시간씩 똑같은 짓을 반복했다. 하지만 이렇게 내가 얼마나 멍청하고, 모자른 놈인지 남에게 피해를 끼치며 알게되니 이제는 조금 달라진 것 같다. 이젠 적어도 내가 똑똑하다는 멍청한 생각은 하지 못할 것 같다.


내가 똑똑하다고 착각했기 때문에 함께 힘들게 일한 팀원들이 피해를 보았고, 고객들이 큰 불편함을 겪었다. 물론 하나의 서비스를 한 명의 개발자가 책임지는건 어쩌면 말이 안되는 일이기도 하다. 혼자서 서비스의 모든 부분을 관리하고 만들고, 설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문제가 없는게 더 이상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점을 핑계삼고 싶진 않다. 내가 부족했다.


다음 주를 위해 다시 심기일전하고 있다. 새벽마다 서버 점검을 걸고 일을 한지도 벌써 나흘째. 제대로 잠을 못잔지도 꽤 됐지만 그건 별로 상관 없다. 세상에 무언가 가치있는 걸 만들기 위해선 수 많은 노력이 담겨야 하고, 그걸 혼자서 해결하려면 몇 배는 더 많은 것을 해내야한다는 걸 알고 있다. 이 무거운 짐의 무게를 느끼지 않을 만큼 강한 사람이고 싶다.


혼자서 오랫동안 한가지 문제에 막혀있으면 이런 생각을 한다. "넌 나를 이기지 못할 거야." "너가 내 시간을 3시간을 뺏건 5시간을 뺏건 결국 내가 이길거야." 이 생각을 하는 이유는 문제는 결국 답이 있고,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수 많은 사람이 해결해왔다는걸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문제가 두렵지 않다. 정말 두려워해야할 건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똑똑하다는 착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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