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공학전공 대학생이 모바일 게임을 만들면 어떻게 될까
때는 2015년 8월 나는 24살의 철부지였다. 나는 친구 두 명과 함께 고향의 카페에서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당시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고 대학원 면접도 보고 있었는데 사실 대학원에 갈 마음이 거의 없었다. 그 당시 대학원은 해야하는 일이었고, 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던 도중 나는 미래에 후회할 일은 하지 말고, 도전을 택해보기로 했다.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고, 돈도 많이 벌어보자 하고서 말이다. 물론 당시에 나는 만들고 싶은걸 만들 능력도 없었거니와 해당 분야에 지식이 전혀 없었던 상태였다.
그 결과 나는 8월 말쯤 대학원 진학을 그만두고, 프로그래밍을 공부해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게임 이름은 '월스트리트:블록딜'. 전세계 주식 시장을 모방한 게임이다. 이미 대학생 때부터 주식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었지만 이후 게임을 만들면서 더 깊게 배울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사람들은 주식을 시작할 때 종목을 분석하고, 회사를 분석하는걸 공부하지만 내 경우엔 반대였다. 주식 시장 자체를 공부했고, 시장에 영향을 받아 회사들의 수익과 시장 지표의 변화를 공부했다. 어찌보면 역으로 배운 셈이다.
게임은 주식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재밌게 해볼만한 여러 요소들로 구성했다. 랜덤적인 요소, 레벨업, 랭킹, 실시간으로 발생하는 여러 이벤트를 모조리 구현했다. 심지어 시시각각 변화하는 주가와 해당 데이터를 테이블로 만들어 처리하고, 쿼리를 만들고, 프로시저와 이벤트를 두어 관리했다. 그 뿐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는 서버 및 안드로이드 레이아웃, 디자인까지 모조리 혼자 작업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나는 미친놈이었다.
게임을 만드는 일은 재밌었지만 한 편으로는 정말 멍청한 짓이었다. 위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좌우 폭이 1280도 안되는 작은 모니터 하나와 안드로이드 애뮬레이터도 돌아가지 않는 구닥다리 컴퓨터로 작업을 했었다. 내가 조금만 더 생각이 깊었더라면 아르바이트를 해서 컴퓨터부터 바꾸고, 더블 모니터와 편안한 의자 등을 구비해 생산성을 높이는걸 우선했을텐데 전혀 그럴 생각을 못했다.
멍청하게도 이 끔찍한 컴퓨터를 쥐고서도 열심히 주식시장을 모사했고, 게임을 만들었는데 게임 세계관과 규칙도 정립해서 꽤 재밌게 만들었다. 다들 읽어보지 않아도 되지만 아래의 규칙들을 만들어 게임에 적용시켰다.
1. 이벤트 기반 마켓: 전세계 시장은 랜덤하게 발생되는 여러가지 이벤트에 영향을 받는다. 각각의 대륙에 이벤트가 발생하는데 재난과 같은 특수한 상황도 있지만, 소소한 이벤트가 5~10분 간격으로 발생한다. 해당 이벤트에 따라 특정 산업은 부스트 효과를 받아 수익성이 개선되거나 낮아진다. 극단적인 이벤트가 한 주에 1회 이상 발생하므로 특정 지역의 산업이 90% 가까이 폭락하는 경우도 나타날 수 있다.
2. 통화량: 일반적으로 국가에서 통화량을 조절하지만 게임에서는 회사가 통화량을 통제하는 구조로 만들었다. 즉 회사를 소유하고만 있어도 일정한 배당금이 지속적으로 나오게 되고, 이는 전체 통화량 상승으로 이어지게 된다. 국가에서 통화를 발행해 시장에 공급하는 단계를 굳이 넣지 않고, 배당으로 처리했다.
3. 회사 가치: 회사의 최대주주는 회사를 매각하거나, 발전하거나, 배당을 뿌릴 수 있다. 발전하는데에는 단계별로 엄청난 돈이 들어가지만 해당 단계를 넘게 되면 수익성이 극적으로 개선되므로 가치가 급상승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때 돈만 들인다고 회사가 성장하지 않고 일정 시간이 지나야만 회사가 레벨업하기 때문에 회사의 가치를 오너가 아닌 사람들은 정확히 알기 어렵다.
그 밖에도 몇가지 규칙들을 바탕으로 세계관을 설정해 게임을 만들었다. 이 기저에는 현실세계의 주식을 모방한 부분이 많다. 주식시장에 있는 작전세력들을 투자그룹 형태로 구현했다. 일종의 마피아 게임처럼 느껴질 수 있도록 그 안에 배신을 하면 얻는 메리트도 넣었다. 그 뿐 아니라 회사가 악의적인 방향으로 레벨업을 할 수도 있었고, 긍정적이지만 수익성이 낮은 방향도 넣었다.
재미있는 요소들은 무척 많았다고 자부하지만 게임에 필수적인 다른 요소들은 간과했다. 가령 튜토리얼이나, 이팩트, 효과 등이다. 그래서 게임이라고 하기엔 너무 정적이고, 제한된 요소들로 구성됐고, 그 안에 들어가는 효과음이나 애니메이션 등도 고품질의 그것이라 느낄 수 없는 구성이었다.
게임은 완성했지만 나는 제대로 서비스도 못하고 이 제품을 폐기해야했다. 비유하자면 시멘트 바닥을 머리로 뚫는 것만큼 멍청한 도전이었고, 이 도전을 하면서 프로그래밍 실력을 단기간에 미친듯이 향상시킬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거의 매일 12시간 공부와 일을 했고, 사람도 거의 만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의지할 사람도 없었고, 에어컨도 들어오지 않은 방에서 컴퓨터와 마주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거의 8개월 가까운 시간을 이렇게 보냈는데 이 과정에서 나는 제품의 기획, 제작, 외부 자원, 디자인, 음향, 애니메이션까지 제품의 모든 부분을 고민하며 살았다. 그 뿐 아니라 주식시장을 공부해야했고, 먹고 살기 위해 아르바이트도 해야했다. 아르바이트 할 곳이 없어서 시내까지 거의 왕복 1시간 반 이상을 매일 버렸다는 것도 참 웃기는 일이다.
주식 시장과 자본주의가 그런 것처럼 현대에 잘 살아남기 위해선 자본이 자본을 불러오도록 해야한다. 나는 자본도 없이 모든걸 내 노동력으로 해결하려고 하다보니 큰 노력에 비해 많은 부분에서 미숙함이 있었고, 그 결과도 좋지 못했었다. 전문가들을 고용하고, 더 나은 생산성을 위한 환경을 구축하고, 그 전에 필요한 것들을 배우기보단 그냥 혼자서 다 해보려는 단순한 생각으로 덤볐던 것이다.
내가 오늘 이 글을 쓰는 것은 과거의 멍청함을 요즘 내가 재현하려는것 같았다. 최근 나는 밀려들어오는 일들과 하고 싶은 일들을 모두 내 손으로 해결하려 애쓰고 있다. 5년전의 나처럼 말이다. 지금은 당시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다른 사람을 고용할 돈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혼자서 모든 걸 해내려하고 있고, 멍청하게도 나를 혹사시키고 있다.
이제는 혼자 하겠다는 마음을 버려야 할 것 같다. 팀을 구축하고, 내가 할 일을 나누고, 팀이 일을 해내도록 이끄는게 지금 나에게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혼자서 머리 깨지면서 고생한건 수 없이 했었다. 벌써 5년 넘게 진행한 프로젝트가 몇 개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아직까지는 내 손으로 모든걸 해왔지만 앞으로는 그러지 않으려 한다. 팀을 만들고, 팀으로 성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