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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훈 Dec 25. 2023

크리스마스

2023. 12. 25.

나에게 있어 10대의 크리스마스는 언제나 교회와 함께였다.


20대의 크리스마스에도 비슷했다. 크리스마스, 군대... 애인과 보내는 날도 있었지만 딱히 의미 있게 느껴지진 않았다. 사람들이 자주 말하는 크리스마스의 달콤하고 뜨거운 밤 따위는 없었다.


보통은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행사를 위해 준비하고 있었고, 밤늦게 까지 새벽송을 돌고 오전 예배까지 하고 나면 25일의 나머지 시간은 쉬어야 했다.


혼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가 몇 번 있기는 했다. 그때면 머릿속에 아주 행복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곤 했다. 나도 그 행복한 무리에 끼어들고 싶어 약속을 만들어보려 애쓰기도 했고 친구들을 만나 시간을 보내보기도 했다. 그러나 큰 행복은 없었다. 허상이었다.


작년 크리스마스는 매우 불쾌했다.


해외에서 하는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출장 중이었다. 15일간의 출장 동안 매일 같은 뻔한 술자리와 식사자리와 일 같지도 않은 논의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들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그게 일이라 느껴지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정작 크리스마스 날에는 여러 고민들로 괴로운 마음이 들었다. 같이 일하던 한 이사는 나에게 분위기를 망쳤다며 화를 크게 내면서 실수를 했다.


천억이 넘는 사업을 하는데 이토록 생각 없이 일을 진행하는 모습이 나는 여러 가지로 질려갔다. 내가 감당해야 할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반대로 감사하기도 했었다. 시간이 지나 올해 크리스마스는 아무런 상처도 없고, 그저 조용히 보내고 있다. 하기로 했던 라이브방송을 켜두고, 글을 적으며 옛 기억들을 하나 둘 꺼내보는 것이다.


방금 밖에 나가서 만나본 강남의 길거리는 한산했다. 어제 불꽃같이 하루를 보낸 이들이 가득해서일까. 아니면 내가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리는 술집 거리로 향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1년간의 사건들과 나를 힘들게 하는 이들을 떠올려봤다. 많은 인물들이 같은 하늘 아래서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몇몇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을 것이고, 몇몇은 자신의 과거의 과오를 씻기 위해, 덮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을 용서하면서 삶을 살아간다는 건 참 쉽지만은 않다.그들의 삶의 무게 중 일부를 내가 견뎌야 했다는 걸 시간이 지나고서 알게 됐다니. 작년 크리스마스에도 느꼈던 거대한 무게감은 여전히 실존한다.


무게의 방향은 비록 달라졌으나 여전히 내 삶은 한결같다. 좋은 일을 하고 싶고, 너무 큰 환상을 품지 않고 살고 싶다.어떤 이들은 솔로라서 힘들다고 하고, 모두가 행복해 보여서 더 우울하다 말한다.


아니.


세상에 행복하고 즐거운 사람들이 많아 보이지만, 사실 그들 모두 각자의 삶의 무게와 아픔을 숨기고 살아간다. 크게 호탕하게 웃기도 하는 이들이 정반대로 어둠 속에서 슬퍼하기도 하고, 어둠 속에서 기뻐하는 이들이 밖에서는 슬퍼하기도 한다.


타인의 행복은 실존할 수도 실존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남들이 나에 대해 말하던 것도 비슷하다. 수천억을 운용하는 회사를 담당하는 일도 누군가가 보기엔 어마어마한 일이고, 대단한 일이고, 이미 인생을 성공한 것처럼 표현해도 무방 했겠지만, 실제는 전혀 달랐다.


실제는 전혀 달랐다. 환상에서 깨어나서 실제를 보면 모든 게 선명해진다. 그래서 이 순간 온전히 나를 대한다.누군가가 가지고 있다는 막연한 환상이 실제라 말할 필요가 없다. 누군가 가지지도 못한 행복과 행운이 부러워 열등감 속에 괴로울 필요도 없다. 그저 각자의 길이 다르기에 소중한 하루를 내 방식대로 보낸다. 내 방식대로 소중한 하루를 기념한다.


그게 내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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