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운인지 나를 전적으로 지지하는 교수님을 지도교수로 삼았다. 수직적인 사제관계가 아닌 동등한 눈높이에서 같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교수님을 만난 걸 천운으로 생각했다. 같은 문제를 연구하는 동료를 만나 논문도 두 편을 써냈고, 다양한 주제로 논문을 써 내려갔다. 군대에서 벗어나 그렇게 원하는 삶을 살았어도, 사람들이 볼 때 너무 행복해 보인다고 말해도, 내 마음 한켠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난 종종 내가 이번에 알게 된 사람들의 학위논문을 내려받아 본다. 특히 감사의 글을 본다. 인품이 훌륭한 사람들의 감사의 글은 특히 남달랐다. 자기가 이루어낸 모든 일들은 자기 하나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여러 운이 축적되어 쌓아온 것에 대한 자각이 있었다. 자신의 한 시기의 고난을 버티게 해준 사람들에 대한 헌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이 박사과정에 들어오면서 수학자로서 의미 있는 사람이 되길 원함과 동시에, 이 이역만리에서 내 인생에서 수학만큼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사람을 만나길 소망했었다. 아무도 모르는 이 땅에서 하나씩 적응해 나아가고 그 어둠을 헤쳐 나가길 원했다. 의지할 줄 모르는 내가 그에게 의지를 할 생각을 하며, 그 사람에게 감사함을 표하는 글을 남기고 싶었다.
미국에 와서는 2년은 적응하는 시기로만 보냈던 것 같고, 아무도 없는 황량한 겨울을 두 번 지내면서 더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친구의 조언을 받아 소개팅 앱도 내려받아 사람들을 만난 적도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잘 안 되었다. 한국에서 수학만 공부하고, 군대에서 3년간 있으면서 나라는 사람을 살펴볼 만한 기회도 없었다. 무채색, 무취의 나는 누군가를 만났어도 실망하게 했을 것이고 나도 실망했을 것이다.
한국에 있었을 때 나는 세상과 어울리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서 있을 수 있는 땅은 없었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자신감은 넘쳐 보이지만 속으로는 많은 생각을 하고 삼키고 살아왔다. 수학이 아닌 곳에서 나를 드러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건 누군가와의 짧은 만남 덕분이었다. 대화를 하며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힘을 되찾았고, 내 방식대로 읽는 것이 답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 생각을 검열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대한 희열을 느꼈다. 그 검열에서 고삐가 풀린 나 때문에 사람과 멀어지긴 했지만, 되찾은 나를 또다시 버릴 순 없었다.
그 이후로 미국에서 되팔지도 못할 한국어로 쓴 책을 계속 사게 되었고, 수많은 뮤지컬, 연극, 영화를 보며 마음이 움직였다. 그중에서 글로 써내리지 않으면 잠을 못 잘 정도로 감동받은 작품도 많았고, 감상문과 에세이를 써내려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수전 손택의 ‘해석에 반하여’를 읽는 순간 내가 그토록 열망했던 생각을 더 언어화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 4년 살면서 작년에서야 수학이 아닌 곳에서도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걸 조금 더 일찍 깨달았으면 어땠을까 싶고, 가끔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을 만났을 때 실수를 하지 않을 기회가 있었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걸 후회해 봐야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작년 겨울도 마찬가지로 내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한인 유학생 그룹에 가면 내가 설 자리는 없다. 끊임없이 성장해야 한다며, AI 공부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네트워킹해야 한다고 열을 올리는 사람들이 가득한 링크드인 현실판 그룹에 내가 설 자리는 없었다. '시간이 흘러가면 은하수는 어떻게 멀어지는지 수학적으로 어떻게 규명할 것인가? 인간의 눈으로 어떻게 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시선을 가질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을 10년간 가져왔던 사람이 어울릴 공간은 없었다. 10년간 알고 지낸 친구들은 그나마 인스타그램으로나마 연결고리가 유지되고 있지만, 사는 세계가 다르고, 관심사가 다르니 거리가 멀어지는 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그 전 해와는 다르게 허무감이 없는 충만한 마음으로 연말을 맞이했다. 작년 말부터 같이 운동하면서 이야기하는 친구들도 있고, 학교에 가면 리서치 토론도 하는 동료도 있고, 같이 수학 문제를 풀어가는 동료도 있다. 글쓰기 동료들도 있다. 근래 좋은 친구들을 많이 알아간 것 같다. 학위논문의 감사글에 다 적힐 사람들이다.
최근에 박찬욱 감독의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를 봤다. '희망을 버려, 그리고 힘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래도'도 아니고 '그리고'다. 나에겐 '(정상이 되겠다는) 희망을 버려. 그리고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니) 힘내'라고 느꼈다. 희망을 버린 상태이면서도 마음 한켠에 학위논문의 마지막 문장으로 감사의 글을 쓸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일 년 후 학위논문의 초안을 미리 써 두고 있다. 빠지면 안 될 사람들이 있으면 안 되니까. 그렇지만 마지막 한 줄은 빈칸이다. 사람의 일은 어떤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