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 헬런 휘트먼, 애드거 앨런 포를 살린 사람

로맨스인가, 아니면 지식인으로서의 투쟁인가

by Will


3월 8일 오늘은 국제 여성의 날이다. 1908년 뉴욕 거리에 섬유노동자 수만명이 거리로 나와 시위한 것을 기념으로 시작된 날인데, 왜 하필 3월 8일로 자리잡혔는지도 불분명하다. 120년 밖에 안 된 이야기인데도 이 날이 제정된 기원조차 제대로 모른다.


프로비던스에서 지금은 연락도 하지 않는 사람과 데이트했던 시절 이야기다. 호러 영화를 좋아했고,그때 그녀는 나에게 넷플릭스의 어셔가의 몰락을 추천했다. 알고 보니 이 소설을 쓴 사람은 애드거 앨런 포였고, 그 애드거 앨런 포랑 프로비던스가 꽤나 연관이 있었다는 걸 1년이 지나서야 알았다.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한 후에 집 근처의 도서관은 애드거 앨런 포가 강의했던 도서관이었고, 거기서 사라 헬런 휘트먼이란 사람을 애드거 앨런 포의 연인으로 처음으로 들었다. 당대에 사라 헬런은 명망이 있던 문학비평가였고, 애드거 앨런 포는 죽기 1년 전에서야 미국 내에서 <갈까마귀, The Raven>이란 시로 서서히 명성을 얻어가던 문학가였다. 둘은 약혼까지 했지만 여러 사정들이 겹쳐 파혼했고, 애드거는 그 이후로 1년 후에 거리에서 죽었다.


애드거 앨렌 포는 36세까지 대중적인 성공을 얻지 못했다. 당시 미국의 주요 문학은 랄프 왈도 애머슨같이 초월주의 문학 또는 청교도적 중심의 문학이 대세를 이루었던 시기다. 그가 30대 언저리에 쓴 소설인 Ligeia, 어셔가의 몰락 이 모두 당대에는 주목받지 못했고, 소설로는 생계 유지도 못했다. 그러나 The Raven이라는 시로 성공을 거두기 시작하자, 문학살롱에서 초청을 받으며 강연을 시작했다. 당대에 프랜시스 오스굿이 평소 교류를 자주 한 애드거 앨런 포를 프로비던스에 초대했다. 그때 프랜시스가 애드거에게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당시에 이미 유명한 문학가이자 문학평론가 사라 헬런을 소개하려고 했으나, 애드거 앨런은 장미정원에 서 있는 사라 헬런을 멀리 보고 말을 하진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라 헬런은 애드거 앨런 포가 유명해기 전 4-5년 전부터 그의 작품을 읽고 있었고, 그에 대한 헌정으로 발렌타인 시에서 그의 예술적 감각에 대해서 칭찬하는 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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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 헬런 휘트먼은 프로비던스에서 태어나고 자라 당대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유명한 문학가들과 교류를 했다. 랄프 왈도 에머슨과 친분이 있었고, 사라 헬런은 본인을 에머슨의 제자라고 말할 정도로 많은 영향을 받았다. 페미니즘 첫 저작으로 분류된 글을 쓴 마거릿 풀러랑 교류하고, 본인은 로드아일랜드 참정권 협회의 부회장이었다. 80편이 넘는 에세이를 신문에 기고해 왔다. 1849년 당대에 문학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편집자인 루퍼스 그리즈월드가 사라 헬런을 미국의 대표 여류시인으로 수록했고, 특별히 서문에서 언급될 정도의 인물이었다. 더불어 뉴욕 트리뷴의 창립자 호레이스 그릴리가 그에게 기고를 요청할 정도로 당대에 유명한 문인인 건 분명하다.


1849년에 애드거 앨런 포가 죽자, 앞에서 언급한 그리즈월드는 루드비히라는 가명으로 포를 주정뱅이, 사기꾼, 인격파탄자로 신문에 부고를 실었다. 포의 유고 편집자로 그리즈월드가 지정되었는데(아이러니하게도 포가 지정했다) 포의 작품집 서문에 왜곡이 가득한 전기가 실렸다. 그 시점부터 사라 헬런은 자신의 문학정치력을 사용해서 포의 작품의 우수성에 대해서 비평하는 글을 쓰고, 그리즈월드 사후에 포의 문학작품의 우수성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우수한 글을 썼다. 그러나 160년이 지난 지금, 사라 헬런은 에드거 포의 전 약혼자로만 기억된다. 둘의 서신교환부터 운명적인 만남, 그리고 파혼의 격렬한 과정만 회자될 뿐, 17년간 어떻게 사라 헬런이 에드거 앨런 포의 미국 문학계 안에서 명예복권을 위해 노력했다는 건 주목하지 않는다.


1860년에 "Edgar Poe and His Critics"라는 글은 지금 보아도 160년 전에 쓰여진 글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매우 정교한 논리를 가진 글이다. 1849년에 그리스월드가 폭로한 것은 대부분 사실 왜곡이며 악의적인 가정으로 가득 찬 글이라고 정면으로 반박한다. 이를 위해 사라 헬런은 당대 포와 교류했던 지인들을 모아 정보를 수집하고, 자기의 비평적 통찰을 덧붙여 왜 애드거 앨런 포의 작품에 주목해야 하는지를 논리적으로 반박한다. 당시의 평단에서는 포의 언어능력에 대해서 예찬을 했지만, 작품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당대의 문학은 청교도 문화의 영향으로 도덕적 엄숙주의가 강했기 때문에, 그런 호러고딕소설이 빛을 바라기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사라 헬런은 해당 글에서 이 문학의 가치를 '내면의 깊은 경험과 강렬한 상상력의 투영된 산물'로 언어화하며, 자신과 교류했던 기억을 바탕으로 담담하게 학술적으로 서술한다. 더불어 포가 도덕 관념이 없다는 비판에 정면으로 과거 작품을 근거로 반박을 하며, 자신과 파혼을 하게 된 계기였던 음주 문제를 그의 시선으로 공감하는 말을 담담하게 서술한다.


이 글을 쓸 때 사라 헬런은 "그를 기억하는 친구 중 한 명"으로 자기를 지칭하며, 포의 천재적 가치를 다음 세대가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도록 정교한 글을 썼다. 더불어 이 글은 작가의 사생활과 작품의 예술적 완성도와는 별개의 문제인지를 논리적으로 분리한 최초의 글로 평가받는다. 오스카 와일드보다 더 빠르고, 롤랑 바르트가 "작가가 무슨 의도로 썼던 작품의 의미는 독자가 읽는 순간 완성된다"라는 주장을 한 것보다 80년이나 앞서 주장된 글이다. 당대에 지배적이었던 '전기적 비평'을 벗어나 작품을 중심으로 왜 포가 저평가받으면 안 되는지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서술한 명문이다.


1873년에 영국의 존 잉그램이 그리스월드의 거짓 기록에 분노하여 진실을 밝히려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잉그램이 포의 전기를 작성하며, 사라 헬런과 교류를 했다. 포의 친필 편지, 희귀 자료를 전부 제공했고, 5년간 편지를 주고받으며, 포의 문학 이론과 당시의 정황을 설명하고 비평했다. 추후에 잉그램이 사라 헬런이 다른 전기작가와 교류하는 걸 보고 공개하지 않았던 서신을 기사로 공개하며, 사라 핼런을 나쁜 사람으로 묘사했다. 사라 헬런은 프로비던스 저널에서 존 잉그램을 우아하게 비판했다고 알려져 있다. 75세 노인은 그 글을 쓰고 1달 후에 심장 질환 및 합병증 그리고 에테르 중독으로 세상을 떴다. 이 잉그램의 전기는 유럽에서 포를 '미국의 저주받은 천재'로 숭상받게 된 배경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잉그램의 전기에서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라 헬런은 '포의 전 약혼자'로만 언급될 뿐이다. (둘의 서간기록은 여기에서 확인 가능) 후대에 버지니아대학에서 이 서간집에 대해 '전기 작가들이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포에 대해 예리하고 통찰력있는 논의를 담고있다'고 코멘트를 했다.


당시에 포가 사라 헬렌에게 말을 걸지 못한 걸, 아름다웠기 때문에 말을 걸지 않았다는 식으로만 납작하게 묘사하는 것 같다. 후에 포가 사라 헬렌에게 연서편지도 썼던 건 사실이지만, 포는 그때 늦게나마 이제 조금씩 주목받기 시작한 작가였고, 사라 헬렌은 이미 뉴잉글랜드 문학사교계에서 중심 인물이었다. 그러나 잉그램은 애드거 앨런 포의 전기를 쓸 수 있게 된 그 훌륭한 "Edgar Poe and His Critics"라는 글을 매력적인 작은 책으로만 언급했다.


나는 어떤 식으로든 이 이야기는 세상에 더 알려져야 한다고 믿는다. 포의 사후에 17년간의 옹호를 단순히 마지막 연인에 대한 애정 어린 헌사로 읽는 것은, 이 사람이 살아온 서사를 낮추는 것이라 생각한다. 17년간의 싸움을 단순히 사랑으로만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성인으로서 자신이 생각한 문학적 가치를 옹호하기 위해 자신이 쓸 수 있는 모든 힘을 다 쓴 거 아닐까 생각이 든다. 사라 헬렌의 노력이 없었으면 당대 미국의 도덕적 엄숙주의, 남북전쟁의 여파 등으로 인해 아마도 그 독특한 고딕소설은 잊혀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2차 매체로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지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누가 이 이야기를 좋아할까 싶다. 그런데 오늘은 국제 여성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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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과거에 내가 이 동네를 다니면서 산책을 했을 때 조사했던 자료와 더불어 Gemini와 Claude를 활용해 정보를 수집하고, 홈페이지를 들어가며 검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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