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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비 Jan 26. 2024

내가 자주 쓰는 말 둘

  '쉬'는 어린아이의 말로, 오줌이나 오줌을 누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네이버 국어사전) 그리고 "쉬 마려워?"는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밤에 잠들기 전까지 레이더 망에 막내의 얼굴이 포착되었다 하면 우선 묻고 보는 말이다. 일이 이렇게 된 지가 세 달은 채 못 되고, 두 달은 넘은 듯하다. 그의 나이 방년 3세 1개월. 위의 두 누나들은 24개월 차에 배변 훈련에 성공했지만 막내는 꼬박 1년이 더 걸렸다.


 오롯이 딸 하나만 돌보는 것과 딸 둘을 돌보는 것, 그리고 딸 둘을 돌보며 아들 하나를 더 돌보는 것에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했다. 작년 여름 막내가 두 돌이 되었을 때, 딸아이들에게 했던 것처럼 배변 훈련을 시작하고자 마음을 먹었다. 첫째 때 사서 둘째도 사용했던, 흡사 붕붕카와 같은 모양의 앉아서 사용하는 변기도 오랜만에 출격 대기 중이었다. 붕붕카 한 대로 소변과 대변을 일타이피로 처리하는 것이 당연했던 나는, 그러나 아들에게는 서서 사용하는 소변기가 따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뒤통수를 한 대 맞고 만다.


 곧 남아용 소변기의 주문은 불가피해졌고, 나는 이왕에 아들놈이 조준과 발사를 잘하길 바라는 염원을 담아 새 변기를 로켓 모양으로 준비했다. 아침 첫 소변의 시원한 맛, 그 옹골찬 물줄기로 성공의 길을 시원하게 뚫어주어야 하는데, 배변 훈련 초반에는 아무리 쉬를 하라고 말해도 쉬님은 쉬이 나오지 않으신단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다. 2차로 뒤통수를 한 대 맞았다. 아침 첫 쉬님의 영접을 함께하기 위해 로켓 앞에 서서 입으로 "쉬~~~" 소리를 내주며 무한정 기다리다가는 입술에 쥐만 날 뿐, 초등학생 첫째의 등교 시간도 맞춰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다시 집으로 배송되기 시작한 기저귀 팩들. 그것들은 거대한 도미노가 되어 '이번이 진짜 마지막 기저귀 주문이야, 진짜 마지막!’ 하는 나의 결심을 1년 동안 멋지게 무너뜨려 갔다.


 지난달, 36개월 영유아 검진을 받으러 간 소아과에서 경고성 권고를 들은 후로 올여름에는 기필코 기저귀를 떼야만 했고, 응축된 시간 덕분인지 막내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기저귀에서 벗어났다. 막내의 배변 훈련을 남편에게 일정 부분 미뤄놔서 쉽게 끝나버린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아들 배변 훈련은 아빠가 시키셔야 한다고 말씀해 주신 소아과 선생님 사랑합니다) 그렇게 약 9년 만에 내 가방에서 기저귀가 자취를 감추었다. 할렐루야. 긴 세월 동안 젖병과 기저귀가 가방 속 공간을 점령해 갈 때, 거울 또는 화장품이 든 파우치는 영토를 빼앗기고 패배했다. 이제는 홍콩 섬을 반환해주고 싶어도 홍콩 섬의 위치를 알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나, 가방 한편이 비워졌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내 속 한편을 후련하게 만들어 주었다. 막내의 소변 줄기로 내 가슴을 뻥 뚫은 느낌이랄까.


 아이를 키우며 깨닫게 된 것들 중 하나는, 숟가락 젓가락을 사용해 밥을 먹고,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고, 닦고, 물을 내리는 당연한 처사들 마저 100 퍼센트 스스로 자연스레 터득되는 기술이 아니라는 점이다. 나의 사람 구실 역시 기초 공사부터 엄마의 노력 한 솥 더하기 아빠의 노력 한 찻숟갈의 산물이었다는 것. 젖을 떼고, 젖병을 떼고, 이유식에서 일반식으로 넘어가 숟가락 포크 대신 수저를 쓰게 하고, 기저귀를 떼고 대소변을 화장실에서 해결하게 만들기까지는 약 2년에서 3년이 소요된다. 나는 그 과정을 곱하기 세 번으로 지난하게 완수했다. 최근에서야, 미숙했던 아기 셋을 마지막 한 놈까지 어느 정도 인간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의미이다. 물론 앞으로 넘어야 할 고개들도 곱하기 3으로 많다. 코 앞의 당면 과제는 빨대컵 졸업이고... 아무튼 빨대 설거지가 제일 귀찮아. 동의하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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