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의 실용성에 대하여
지금 내가 차고 다니는 손목시계는 일본의 유명 시계 회사인 C사의 제품인데, 한 4년 전 쯤에 인터넷 쇼핑몰에서 15만원 정도를 주고 샀던 것으로 기억한다. 동네 문구점에서 파는 만 원짜리 중국산 손목시계에 비하면 10배가 넘는 제법 비싼 물건이니 내가 가진 물건들 중에서는 그나마 가장 명품에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이조차도 백화점의 유리 진열함 안에 있는, 수많은 시계에 비하면 명품 축에도 들지 못하는 물건이다.
내 손목시계는 비록 명품이라 하기에는 좀 어렵지만 순수하게 기능의 측면만을 따진다면 수 백만원대의 고급 시계에도 비견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방수의 경우 최대 10기압 수준의 수압을 견딜 수 있는데 이 정도면 세면대는 물론이고 수영장에서도 문제없이 차고 다닐 수 있을 정도이다. 또 시계의 3시 방향에는 날짜와 요일을 알려주는 작은 창이 달려있고 무엇보다 시계 내부에 태양광 충전지가 들어있어서 최소한 10년 정도는 매일 시계를 차고 다니기만 한다면 건전지를 교체할 필요조차 없다. 물론 아날로그 시계이기에 여느 명품 시계와 마찬가지로 시험장에서도 문제없이 쓸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내 손목시계에도 아쉬운 점은 있기 마련이다. 사실 10기압의 방수로는 얕은 물가에서 노는 데는 충분하지만 스킨스쿠버와 같은 본격적인 잠수활동을 하기에는 다소 부족하고 달의 모습을 나타내는 기능인 문 페이즈(moon phase)와 두 달에 한번씩 날짜를 재조정해줘야 하는 수고를 덜어주는 만년력[perpetual calender]기능도 내 시계에는 없다. 물론 조수의 차를 측정할 필요가 없는 나에게 문 페이즈 기능은 별 의미가 없고 두어 달에 한 번씩 시계를 다시 맞추는 일 정도는 그리 귀찮은 것도 아니다. 스킨스쿠버 역시 내 취미는 아니다.
오히려 수 백만원의 시계가 관리하기에 더욱 귀찮은 경우가 많은데 이들 시계의 경우 부품이 워낙 많고 내부구조가 복잡한 탓에 필연적으로 내구성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시계를 오랫동안 쓰기 위해서는 시계방에 방문해 5년에 한번 정도는 시계를 해체 후 재조립하는 수준의 정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수 십만원의 비용이 들어감은 물론이다.
게다가 비싼 시계는 오히려 중간 정도 가격대의 시계보다 시간이 잘 안 맞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100만원 이상의 고급 시계는 대개 건전지로 작동하지 않고 아직도 태엽의 힘으로 작동하는 방식을 고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매일 태엽을 손으로 감을 필요는 없고 그 대신 외부의 흔들림으로 인해 자동으로 감겨지는 방식을 채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렇듯 명품의 품질이 가격과는 무관하다면 소위 ‘명품’을 가졌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한때 친하게 지냈던 동창 J는 매년 받는 수 십만원의 세뱃돈으로 가끔씩 백화점에서 명품을 살 때가 있었는데, 그 때문에 중학교 때부터 그는 늘 지갑이나 허리띠 같은 명품 한 두개씩은 가지고 등교하였다. 한 번은 그에게 명품을 사들이는 이유를 묻기도 하였는데 그 때 그는 내게 명품의 실용적인(?) 효과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자신이 경험한 바로는 명품을 두르고 백화점에 들어서면 그냥 T셔츠를 입었을 때에 비해서 직원이 눈에 띄게 친절히 대하게 되며 심지어는 단지 점포를 둘러보기만 하더라도 직원으로부터 유리병에 담긴 외국산 생수와 고급 초콜릿을 받는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껏 백화점에서 그런 경험을 겪은 적이 없으니 내가 가진 시계가 명품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아무튼 백화점에 있는 명품들이 갖는 실용적 이점이 고작 그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은 내게 있어서는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만일 명품들이 정말로 그 값에 부응하는 수준의 대단한 기능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나는 틀림없이 백화점에서 명품의 가격을 물어보지도 않는 부자들의 삶을 지독히도 부러워했을 테니 말이다.
물론 살아가면서 부자를 부러워하게 되는 계기는 비단 이것 말고도 수없이 많기는 하다. 하지만 적어도 나로서는 부자가 되기 위해 지금의 괴로움을 참아가며 열심히 일해야만 할 동기 하나가 사라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