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필명을 쓰는 까닭
사실 지금 내가 쓰는 "이하늘"이라는 이름은 내 본명이 아니다. 즉, 다시 말해 내 주민등록증에는 이하늘이 아닌 다른 이름이 적혀 있다는 뜻이다. 내가 아버지께서 선물해 주신 이름을 마다하고 굳이 필명을 따로 만들어 쓰는 까닭은 본명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도,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을 표출한 것도 아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가 태어난 이래로 한 달 내내 고심해 지으셨다는 내 본명을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한다. 또, 지금은 고향을 떠나 혼자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아버지와 절연한 것도 아니다.
유명 작가들이 대개 필명을 쓰는 경향이 있기는 하다만 한강 작가처럼 본명을 그대로 쓰는 경우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필명을 쓰는 그들의 삶을 닮고 싶은 마음에서 필명을 지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필명을 짓기 전 한때 나는 필명을 쓰는 일이 일종의 "겉멋"이라며 내심 비웃기까지 했었다. 본명이 유명 정치인과 겹친다거나 한다면 또 모를까 굳이나 부모님께서 선물해 주신 소중한 자기 이름을 숨기면서 또 이름을 짓는 일이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옛 사람들이야 본명을 직접 부르는 것을 극히 꺼려했기에 그 대신 자신을 부를 말을 정하기 위해서 '자(字)'나 '호(號)'를 짓는 것이 예사 있는 일이었지만 우리 시대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전통일 뿐이다.
나 역시 이에 대해서는 딱히 복원할만한 전통이라 느끼지도 않고, 그렇기에 이제 와서 전 국민이 자신만의 호나 자를 가져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애초에 행정상 번거로운 것은 둘째 치더라도 (나보다 나이가 많든, 적든 간에) 다른 이의 본명을 직접 부르는 일이 무례한 일이라는 생각 자체가 안 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가 필명을 쓰는 까닭은 관습이 아닌 철저하게 내 의지에 따른 일이다. 그러나, 그 까닭의 바탕에는 옛 사람들이 관습을 이어온 까닭과 비슷한 동기가 들어있다. 나도 그들처럼 내 이름을 소중히 간직하고 싶다.
누군가 내 글을 싫어해 내 필명을 거론하며 비판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내 이름을 언급하며 비판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내 필명에는 글로써 드러나는 모습의 나만 담겨있지만, 내 실명에는 지금껏 살아온 그동안의 내가 오롯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일 자체는 철저히 개인적인 일이지만 그것을 공개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일은 이미 논란이 벌어질 것을 각오하는 일이다. 아니, 애초에 다른 이에게 읽히기를 기대하며 내놓은 글이 아무 논란거리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야말로 터무니없는 몽상이라 해도 좋으리라.
그러나 나는 내가 쓴 글로 인해, -이름으로 대표되는- 그동안의 내 삶이 모욕받는 일만은 결코 바라지 않는다. 물론 내가 글쓰기와 무관한 분야의 일상에서 잘못을 범했다면 그에 대해서는 비판받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나의 글은 일기와 같이, 어디까지나 내 삶의 편린을 그대로 복사해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서 비롯된 영감들을 그러모아, 편집과 가공을 거쳐내 만들어낸 작품이다.
바로 그렇기에 여기서 공개되는 글을 통해 보여지는 "이하늘"의 모습은 실제 일상에서의 나를 그대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애초에 문학의 본질적인 한계라기 보다는 오히려 문학을 포함해, 모든 예술작품이 갖는 본질적인 속성이라 보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예술은 본질적으로, 신문기사나 진술서와는 달리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오히려, 현실의 여러 면모들을 조금씩 조합해 재구성함으로써, 현실에서는 찾을 수 없는 피안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이하늘이라는 나의 자식 -나에서 비롯되었지만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 을 낳은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