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전
아내와 함께 캐나다 이민을 꺼낸 지 벌써 일 년이 흘렀다. 처음은 조심스럽게 시작했다. 그때 우리는 밴쿠버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복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아내가 추구하고자 한 가치는 선명했다. 허울뿐인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빠져나오는 것. 그뿐이었다.
회사에 얽매였다. 아침 7시에 회사로 가서 밤 10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오는 게 보통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쌓인 일도 문제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었다. 언제나 일을 완벽하게 해내고 싶었다. 직장에서 상사에게 인정받고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혹사시키며 일을 하고 야근, 출장, 외근 어느 하나 빼먹고 싶지 않았다.
집에 오면 씻고 자고 옷 갈아 입고 다시 출근하는데 급급했다. 언제나 시간에 쫓겼다. 입술 부르트도록 일해서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아내의 물음에 답을 전할 수 없었다. 겨우 생각을 해내서 뱉은 말은 ‘빨리 성공해서 가계에 보탬이 되겠다고’, ‘다 가정을 생각해서 하는 것이니 어쩔 수 없을 것 같다’는 어수룩한 답변이 고작이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3개월이 막 지났을 때부터 아내는 출산 휴직을 마치고 복귀했다. 모유 수유를 하는 동안에는 유축기를 들고 출근하던 아내다. 심한 젖몸살을 알았다. 일하는 도중에 젖이 차오르면 화장실에 가서 빼내고 일을 계속했다. 이따금 꾹꾹 참았던 원망을 토로하기도 했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냐고, 이렇게 고생하고 희생해서 도대체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이냐고. 나는 답을 줄 수 없었다.
집에서 조차 부부가 만날 수 있는 시간은 극히 적었다. 아내는 오후 3시에 일을 시작해서 자정을 넘겨서 퇴근했다. 주말도 출근하고 대신 평일에 하루 또는 이틀을 쉬었다. 아내가 주말에 일하는 동안에는 하루 종일 아이와 시간을 보내야 했고, 아내가 퇴근하기 전에 잠들기 일쑤였다.
아내가 캐나다로 가서 얻고자 한 건 딱 두 가지, 대화와 시간이었다. 이미 이십 대 초반, 삼 년 정도 밴쿠버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다. 아내는 늘 결혼해서 겪는 현실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럴 때마다 늘 캐나다에서 보냈던 시간을 그리워했다. 기르던 강아지가 아프다고 하면 빨리 퇴근하고 집에 가서 돌보라고 하는 곳, 야근을 하며 일의 성과를 내려고 할 때면 자기들이 가꿔온 조직문화를 헤치지 말라며 충고를 들어야 했던 곳. 아내가 기억하는 그곳은 여유로움이었다.
밴쿠버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뿌리 깊이 박힌 시각에서 완전히 벗어나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우리가 평생 생각해보지 못했고 그래서 알지 못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같이 경험해보기를 희망했다. ‘그래, 전력 질주한 세월에서 잠시 벗어나 새로운 희망을 톺아보자’, ‘고단한 삶에 마침표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쉼표는 만드는 전환점을 만들어보자’ 여행에서 돌아온 뒤 나는 아내의 캐나다 이민 제안에 동의했다.
희망을 보지만 확신은 없었다. 넘치지는 않지만 모자라지 않을 정도로 안정적인 삶, 누리고 있는 직업, 돈, 미래를 다 버리고 새로운 출발선에 서야 한다. 잘 차려입은 옷을 모두 버리고 허허벌판에서 옷감을 구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실과 바늘을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지 암담했다. 불확실성은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두려움이 생기니 자연스럽게 환상과 현실 사이 간극은 더욱 벌어졌다. 행복은커녕 무거운 불행과 마주칠 거라 불안은 환상을 세게 짓누른다. 영어 커뮤니케이션, 취업, 높은 물가 수준, 자녀 교육, 거주할 집, 한국에서 지내실 부모님 걱정은 뭐 하나 선뜻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 더군다나 COVID19까지 터지며 불안은 더욱 커졌다.
불안은 서로가 바라보는 각도를 조금씩 틀기 시작했다. 각자 다른 곳을 보다 보니 다툼은 잦아졌다. 희망에 부푼 아내와 현실을 걱정하는 나 사이의 틈은 점점 더 벌어졌다. 이민을 준비하는 지난 1년 참 많이도 다퉜다. 빠르게 미래를 그려주기를 바라는 아내에게 나는 부정적인 면만 부각했다. 불안했고 자신이 없었다. 답답하고 불안정한 시간은 계속 흘러가기만 했다.
계획된 일정이 다섯 달 남았을 때, 참지 못한 아내가 물었다. 진짜 하고 싶은 걸 말해보라고. 나는 답했다. 모르겠다고. 한국에서만큼 잘 살 자신이 없다고. 조금 더 준비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돈을 못 벌어 가정에 도움이 될 수 없을 것 같다고. 아내는 말한다. 더 늦은 나이에 뭐라도 진짜 하고 싶은 걸 해보라고 몇 년 뒤쳐지거나 고생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아내의 한 마디는 푹 꺼져가던 희망에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무거운 짐을 묵묵히 홀로 지고 나가는 걸 미덕이라 여겼다. 스스로 그려 놓은 한계라는 벽에 계속 머리를 부딪혔다. 투철한 책임감으로 무장해서 벽을 두드리면 언젠가 희망이 보일 줄 알았다. 그럴수록 벽은 더욱 두꺼워져만 갔다. 성벽 위에 올라서서 미래를 조망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혼자서 판단이 안 선다면 솔직히 이야기하고 함께 고민하여 방법을 찾아갔어야 했다. 중요한 과정인데 철저하게 무시하고 때로는 애써 외면했다.
이민 준비를 하며 너무 많은 상처를 줬다. 어리석게도 불안이 스스로 사라지기를 기다리기만 했다. 불안은 늘 연속된 또 다른 불안으로 팽창한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스스로 쌓아 올린 불안으로 주변 사람들은 거 큰 희생을 치뤄야했다. 조금 늦긴 했지만 이제는 서로를 완전히 의지하며 준비하고 있다. 이민 그 자체에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이민을 결정하게 된 목적과 미래를 고민한다.
아내와 딸이 먼저 캐나다로 떠나기까지 이제 8일 남았다. 현재는 비행기에서 보이는 구름만 보고 미래를 바라보고 있을지 모른다. 구름 아래는 산도 있고 강도 있고 바다도 있을 것이다. 당장은 모호하지만 조금씩 깊이 내려가다 보면 삶의 지도를 보다 더 선명하게 그려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든다. 불안은 덮어두면 둘수록 폭발하고 솔직하게 꺼낼수록 수축한다. 남은 8일 환상과 현실의 괴리를 좁히기 위하여 많이 보고 많이 듣기 충분한 시간이다.
불안에 대한 상상 - 불안에 대한 상상은 저 불쾌한 원숭이를 닮은 요괴 코볼트와 같다. 그것은 인간이 이미 가장 무거운 짐을 지고 있을 때 또 인간의 등에 뛰어오른다. 657
잘 보지 못하고 잘 듣지 못하는 것 - 잘 보지 못하는 사람은 점점 더 적게 보게 되고, 잘 듣지 못하는 사람은 항상 몇 가지를 더 듣게 된다. 660
상황들의 결여 - 많은 사람들은 평생 동안 자신의 고유한 방식으로 훌륭해질 기회를 기다린다. 665
하나의 불가피한 것 - 인간이 꼭 가져야 할 것이 한 가지 있다. : 태어나면서부터 가지는 가벼운 마음 또는 예술과 지식을 통해 가벼워진 마음이 그것이다. 639
현재와 소원해져서 - 자신의 시대에서 한 번쯤 심각할 정도로 소원해져서 그 시대의 바닷가에서 과거의 세계관들의 대양으로 밀려가 보는 것에는 커다란 장점들이 있다. 거기에는 해안 쪽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은 아마 처음으로 그 전체적인 모습을 조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다시 해안에 다가가면 그곳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는 사람들보다 그 해안을 훨씬 전체적으로 잘 파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700
- 프리드리히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 책세상
(페이지는 전자책 기준으로 표기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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