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친구란 존재

by 사적인 Pairing 노트

작년 11월초였다.

주말을 잘 보내고 저녁 쯤 SNS를 열어서 지인들의 새로운 피드를 보고 있다가 깜짝 놀랐다. 고등학교 친구 계정에 내 고등학교 친구들이 낮에 만났던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항상 같이 만났던 5명의 친구들이었는데 나한테는 연락이 없었는데 친구들이 만났다는 것에 우선 놀랐고, 무슨 연락 착오가 있었나 하는 생각에 바로 고등학교 친구 중 가장 많이 연락했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녁 시간이긴 했지만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친구에게 카카오톡 메세지를 보냈다.


“너희 오늘 만났어?” (읽음 표시)

“….”


그때부터 뭔가 싸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뭐지? 애들이 나만 빼고 왜 만난거지? 순식간에 여러 일들이 머리 속을 스쳐지나 갔다. 사실 작년 7월에 고등학교 친구들이 같이 만나기로 약속을 했었다. 약속을 했던 시점은 그해 2월이었다. 다들 사는 게 바빠지고 코로나가 지난 후라 1년에 한번 만나기도 어려워져서 만났을 때 다음 만날 날짜를 정하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작년 상반기 내내 일이 몰아친 까닭에 휴일 한번도 못 쉬었고, 다음 일이 시작되기 전에 휴가를 안 다녀오면 여름 휴가도 못 쉬겠다 싶어서 7월 초 일주일 동안 제주도 여행을 계획했다.


비행기 표를 예약하고 보니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약속이 잡혀 있다는 것이 생각이 났다. 그래서 단톡방에 친구들에게 깜박하고 제주도 여행을 가게 되었다고 이번 모임은 참석 못할 것 같다고 메세지를 남겼다. 친구들은 어떤 답도 없었다. 그렇게 바쁜 일을 뒤로 두고 여름 휴가를 다녀 왔다.

휴가를 다녀온 후에도 또다시 일이 몰아쳐서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그렇게 11월까지 시간이 지났던 것이다. 중간 중간 고등학교 친구들이 그 때 잘 만났나 ? 왜 이렇게 단톡방이 조용하지? 라는 생각은 했지만 내가 먼저 메세지를 남기지는 않았다.


그런 와중에 친구 피드에 나를 제외한 나머지 네 친구들이 찍은 사진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묘하면서 당황스러웠다. 그제서야 고등학교 단톡방을 다시 들어가 보았다. 내가 6월 말에 여름 휴가를 가게 되었다고 쓴 메세지 아래 친구 중 한 명이 방을 나 갔었다.


그때부터 감이 오기 시작했다 왜 친구들이 내 문자나 연락에 답이 없는지. 그래도 그때까지만 해도 오해일테니 빨리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등학교 친구 중에 제일 연락을 자주했던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왜 나를 빼고 만났는지 물어보았다. 한 두시간 후쯤 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떻게 된일인지 친구들이 화가 많이 냤냐고 물었더니 당황스러운 대답을 들었다.

6월 말에 내가 남긴 문자를 보고 한 친구가 기분이 나빠 단톡방을 나갔고 다른 단톡방에서 내가 더 이상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거 같으니 그 모임에서 나를 만나지 않겠다고 했단다.

다른 친구들도 비슷하게 생각했는지 7월 초에 모임에서 나를 모임에서 만날지를 이야기해서 결국 만나지 않겠다고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11월달에 다시 친구들 모임 할때 까지도 내가 아무 연락 없어서 역시나 하며 나는 그 모임에서 더이상 부르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갑자기 가슴이 철렁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친구였으니 자그마치 27년을 같이 알고 지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관계가 끊기는 건가 싶기도 하고, 약속을 어긴 나에게 화가 났다면 따져 묻거나 서운했다고 말을 해줄 수는 없었나 싶었다. 그 넷 중 한 명이라도 이야기 해줄 수 있는 세월이 아니었을까?

그 일이 있고 나서 몇일 동안은 친구 관계에 대한 허망함으로 한참 마음이 안좋았다.

추억을 같이 한 사람들과 오랜 기간 동안 잘 어울려 지낸다는 것이 나 스스로 뿌듯해 하는 장점 아닌 장점이라 생각했는데 상대방은 아닐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다른 관계는 혹시 내가 억지로 붙잡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내 성격 탓도 있겠지만 나는 한번 알게 된 사람들에게 주기적으로 연락을 하고 지내왔다. 그리고 시간이 허락한다면 1년에 한번은 꼭 만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이라면 진작 끊길 법한 이전 직장 입사 동기, 같이 일을 했던 선후배 동료들까지 꼬박 꼬박 연락을 하고 지낸다. 그리고 만난다고 하면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정하는 일도 자처해서 하는 편이다. 그건 내가 그렇게 사람들과 만나고 어울리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모든 친구들에게 연락하고 만나는 일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친구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당연히 에너지와 돈이 드는 일인데 그것이 힘에 부치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오랫동안 애써 유지해 온 친구 관계, 지인 관계를 놓아 버리는 게 맞는 것일까?



한동안 이 질문에 답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을 즐거워 하는 사람인데 이런 나의 즐거움을 포기해야 하나? 도대체 나는 관계를 유지하고 사람을 만나면서 얻고자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왜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는데 애를 쓰는 것일까?


이런 질문에 답을 얻고 싶어 관계에 대한 다양한 책이나 영상을 보기 시작 했다. 다행히 자료를 통해 인생에서 친구라는 존재, 친구라는 관계의 의미에 대해 나름 정리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지식 인사이드라는 유투브 채널에서 인간관계에 대한 시리즈가 있어서 봤는데 딱 나를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시청한 영상이다. 요즘같이 SNS나 메신저 등을 통해서 관계의 범위가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된 시대에서 연결된 친구가 많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은 그 관계 중에는 가짜 관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모든 관계가 반드시 유지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필요한 진짜 관계를 잘 챙겨야 한다는 내용이 이 영상의 골자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진짜 관계란 어떤 관계일까?

영상에서는 인간관계는 계속 변화 할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처해진 환경에 따라 새롭게 가까워지는 사람들이 있고, 반대로 점점 멀어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관계를 모두 유지할 필요는 없다. 유지한다면 그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상대방과 만났을 때 즐겁거나 목적이 있거나 하는 이유 말이다.

그리고 그 이유가 있다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상대방도 마찬가지다 내가 상대방에게 유지하고 싶은 관계라면 상대도 나에게 시간과 돈, 그리고 노력을 할 것이다. 이것으로 진짜 관계를 구분해 볼 수 있다.


또한 관계는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생길 수 있지만, 유지하는 것은 내가 결정할 수 있다. 때문에 내가 유지하고 싶은 관계는 내가 편안하고 자연스러우며 서로 부담스럽지 않게 경계를 지킬 수 있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친구라는 것은 목적이 없어도 즐거움을 같이 할 수 있다면 친구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에 읽은 밀란쿤데라 ‘무의미의 축제’ 라는 책에서도 친구와의 교류에 대해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사실 인생의 무의미함을 이야기 하는 책이다. 밀란쿤데라는 인간의 삶은 반복되지 않고 일회성이기 때문에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책에서는 네 명의 친구가 나온다. 인생의 무의미를 알아서 인지 아닌지 이 네 명의 친구들은 나이에 맞지 않게 진지한 대화보다는 사랑, 정치, 철학에 대한 가벼운 농담이 섞인 대화만을 주고 받는다. 이러한 가벼운 대화나 유머가 어쩌면 가벼운(무의미한) 인생을 솔직히 대하는 태도가 아닐까 싶다. 때로는 인생에 대한 진지함도 필요하겠지만 늘 심오한 대화만 할 필요가 있을까?


친구는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어야만 하는 존재가 아닐 수 있다. 우리 인생의 유한함을 받아 들이고 삶의 순간 순간을 같이 즐기고 히히덕 거릴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친구가 아닐까 싶다.

인생은 어째든 혼자 가야 한다. 그러한 인생에서 같이 걷기도 하고 같이 웃어 줄어 줄 수 있고, 그러다 다른 길을 맞이하면 따로 걸을 수 있다. 끝까지 같이 가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렇게 같이 거도 있을 때 함께 웃어 줄 수 있는 벗이 하나라도 있으면, 그 인생은 덜 외로운 인생일 것 같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친구가 되어 주고 싶다.




이번 글은 밀란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 와 지식인사이드의 영상을 Pairing 해보았습니다.

다른 두개의 서사가 만나는 지점이 있는 페어링 레서피였습니다.




[관련자료]

지식인사이드 영상 : https://youtu.be/9St0cCTrCgM?si=0jj7YDy2ZfDI-S04

밀란쿤데라 무의미의 축제 :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3682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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