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취업, 할머니는 요양원에 가셨다.

한국에서 머물고 있어요

by 하늘

할아버지 장례가 끝이 나고, 나는 무척 바빴다.


일주일은 몸살이 났다.

인생의 '허무함'과 이제 할아버지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어안이 벙벙하다.라는 말이 제일 적합하다.


캐나다에도 다시 한번 다녀와 미처 정리하지 못한 것들을 정리했고,

이제 계획대로 해외취업을 하려고 알아보다, 노쇠한 할머니가 마음에 걸렸다.


이전에도 말했듯 사실 다른 나라에 가서 살고 싶었지만, 그게 무슨 소용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은 일본과 가까워 부모님들과도 가깝고,

장례가 끝이 나고 집에 가서 "할아버지 돌아가셨어"라고 말하니,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나와 엄마를 꼭 안아주시던 할머니가 신경이 쓰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었다.


한국에서 다시 취직을 하기로 결심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조금 더 안정적인 커리어를 쌓고 싶어졌다.


외국에서도 내가 한국이나 일본에 가야 할 일이 생길 때 언제든 갈 수 있는 그런 능력 있는 여자가 되기로 했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두 달쯤 시간이 흘렀을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우리 가족은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먼저, 치매 증상이 있는 할머니를 24시간 케어할 수 없어 요양원으로 보내길 결정했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정말 정정하셔서, 할머니의 보호자 역할을 하셨다.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자식들에게 전화를 해서 할머니를 돌보았다.


나는 한국에서 재취업을 하기로 결정한 나는 일본 본가와 자취방을 오가며 지냈다.


큰 이모와 삼촌이 하루가 멀다 하고 할머니 요양원에 가셨다.

코로나 이후 정책이 바뀌어 하루에 한 팀 밖에 안된다더라, 삼촌에게 양보를 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부모님과 가장 오래 산 삼촌이 가장 증세가 컸다.


아직도 삼촌이 '아버지.. 아버지..' 하면서 울던 게 눈에 선하다.


나는 그 시기에 면접이 잡히면 한국에 있다가, 일본 본가에 갔다가..

일본에 한번 가면 다음 면접이 잡힐 때까지 일본에 있었다.


한국에 들어오니, 큰 오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하늘아 장례식 때 와 준 오빠들 친구들 정식으로 밥 한번 제대로 사주려고 하는데, 너도 올래? “


꽤나 오래전 일 같았는데, 듣자마자 이건 거절이다.


나는 저런 모임을 별로 안 좋아한다.

안 친한 사람들이랑 어색하게 이야기하는 자리는 너무 피로하고,

고마운 분들이긴 하지만, 내 친구들도 아니고 오빠 조문객들 아닌가..?

무엇보다 장례 후 시간도 꽤 흘렀고 나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절을 하려던 찰나 '아.. 갈치 오빠!‘

"아, 조문 와주신 분들, 그 오빠도 오나? 관 들어주던. 대학교 동창!

그 오빠 오면, 뭐 할아버지 관도 들어주셔서 고마운데... 어쩌고 저쩌고"


왜지.. 나도 모르게 왠지 궁색하게 늘어놨다.

나는 원래 이런 스타일이 아닌데..


"어. 진영이? 오지"

이름이 진영이 인가보다.


"아 그렇구나 , 갈게!"

오빠가 카톡으로 장소와 날짜를 보내주었다.

이번 주 주말이네. 왠지 오랜만에 신이 났다.


갈치 오빠에게 고맙다는 말도 못 했는데,

이번에 만나면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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