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잖은 리스너로 늙고 싶다

꼰대가 되지 않을꺼야

by 하늘

점잖은 리스너로 늙고 싶다

인간은 나이를 먹을수록 ‘경험’이라는 이름의 자산을 축적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자산은 어느 순간부터 ‘굴레’가 된다. 경험은 판단을 단단하게 해주지만 동시에 유연성을 빼앗아 간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는데, 우리는 익숙한 울타리 안에서만 사고하고, 이미 굳어진 가치관의 잣대로만 세상을 가늠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확신은 강하지만, 그만큼 편협하다.


이때 젊은 세대의 목소리는 흔히 가볍게 치부된다.

덜 알아서 미숙하고, 경험이 없어 단순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모른다는 사실은 곧 새로운 사유의 기회를 낳는다. 많은 것을 알아버린 자가 놓치는 부분을, 덜 아는 자는 집요하게 파고든다.

완전하지 않은 시선 속에서 오히려 더 깊은 고민이 일어나기도 한다.


나는 그래서 ‘점잖은 리스너’로 늙고 싶다.


내가 옳음을 주장하기보다, 상대가 자기 이야기를 끝까지 펼쳐낼 수 있도록 귀를 내어주는 사람.


말의 무게로 상대를 눌러버리는 대신, 침묵의 공간으로 상대를 지켜주는 사람.

지혜란 결국 말의 다다익선이 아니라, 듣기의 절제에서 비롯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인간을

“세계 속에서 말하고 행동하는 존재”라 했다.


그러나 그 말과 행동은 누군가 들어줄 귀가 있을 때에만 온전히 빛을 발한다.

경청 없는 말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나이 든 자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경험을 진리처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젊은 세대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는 일이 아닐까.


삶의 무게를 안다고 해서 목소리가 커져야 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무게를 알기에 목소리를 낮추고,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이들을 대신 들어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노년의 품격일 것이다.


나는 나의 마지막이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들어준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