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
건물주의 꿈
요즈음 드라마를 보고 글을 쓰는 것이 좀 뜸했는데, 그동안 드라마를 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글을 쓸 삘(feel)이 오는 드라마는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랜만에 감정 이입되는 드라마를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제목이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한 때 제 꿈도 건물주가 되는 것이었지, 절대 작가 따위가 되는 것은 아니었지요. 그러나 어느 순간 정신 차리고 보니 건물주가 될 꿈은 거의 접고, 평생 써도 절대 건물주가 될 수 없을 것 같은 글이나 쓰고 앉아있더란 말입니까? 그러나 이 드라마는 악몽에서 깨어나 옛 꿈을 다시 각성시켰으니, 건물주를 향한 꿈의 부활절의 계기로 삼겠다고 굳게 백팔배 합니다. 하긴 건물주가 되는 데 있어 벽돌 값도 안 나가는 책을 내는 것에 시큰둥했던 이유가 다 있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출판 제의가 물론 없었지만, 적어도 있으려면 건물주가 될 수 있는 인세는 받아야 된다고 주장하다 까이고 싶었으니까요.
건물 지키기
그런데 이 드라마를 보고 있으니, 건물주 되는 것이 만만치 않습니다. 아니 되고 나서가 더 문제입니다. 그저 건물 로비와 앞마당만 싸리비로 살살 쓸어 주면 되는 줄 알았던 건물주의 역할이 꽤나 다난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건물주가 되었다고 해도 대출 이자 수압이 건물 높이만큼 높은 데다가, 임대까지 잘 안 나가면 건물 두고 알바 뛰는 처지가 되고 맙니다. 어쩌다 임대인을 구했다 하더라도 화장실이며 물탱크며 이거 저거 고쳐달라는 것이 한두 개가 아니므로 건물주를 잠시도 글을 쓰게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건물주의 관리 사무실은 꼭대기 층 펜트하우스에 있을 줄 알았는데 지하의 냉동창고 옆이고, 재개발을 둘러싸고 황사, 미세먼지 같은 인간들이 마가 끼며 건물의 전망을 탁하게 만듭니다. 건물에서는 급기야 납치, 살인, 화재 사건이 일어나고, 여기에 발을 담근 건물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물을 어떻게든 사수해야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되지요.
살신성인이냐 살인성인이냐?
이 건물주 드라마를 보면 건물주들이 건물을 차지하고 지키기 위해 얼마나 피땀 흘려 '살신성인(殺身成仁)'을 다했는지 보여줍니다. 즉 자신의 몸을 죽일 정도로 큰 도를 이루었는지 말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건물주의 피땀은 '살인성인(殺人聖人)'에 가깝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즉 사람을 죽여서 큰 건물을 이루고 성인군자인 척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결국 "나만 없어 고양이" 아니고 "나만 없어 빌딩"의 저 건물주들은 누군가를 죽여서라도 차지하겠다는 비장한 결심과 너만죽고 나만살자 실행이 아니었으면 결코 건물주가 되지 못했으리라는 것을 알려 줍니다.
착한 빌딩주
건물주 중에서도 큰 건물, 즉 빌딩주가 되는 방법은 대체로 식민지 시대에 열심히 조상이 부역하였거나, 6.25 전쟁을 통하여 한몫 잡았거나, 산업화 때 권력에 결탁하여 자본을 쌓았거나, 연예인이거나, 누구 하나 죽이지 않고 착하고 열심히 살았는데 차곡차곡 월급을 모아 눈떠보니 건물주가 되어있는 흔한 사례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빌딩주가 되어보지 아니하였기에 명확한 근거는 없고, 물론 대부분은 착하고 흔한 빌딩주인 것으로 보아, 빌딩주는 땅이 감동하여, 샤일록이 그 살 일부를 떼어 주는 계약을 맺은 것처럼, 생살을 떼어준 것이라고 보아야 하겠고, 주변에 그 흔한 건물주 한 명 만나보기 힘든 것은 다 '살인성인(殺人聖人)'과는 무관히 대충 착하지도 않게 바쁘게 살아서 그렇다고 반성하여 봅니다.
10명 정도 살인성인
드라마에서 주인공(하정우)은 그저 평범한 직장인이었기에 건물주의 꿈은 납치, 살인, 화재 같은 감당하기 어려운 일련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손 놓고 포기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웬걸? 그는 마지막 당당히 빌딩주로서 우뚝 서게 되니 건물주의 꿈에 감동의 희망을 불어넣어 줍니다. 그가 직접 죽였건, 간접 죽었건 '살인성인(殺人聖人)'의 숫자는 가만히 세어보니 불과 열명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처남, 건물 세입자, 친구, 친구 장모님, 장모님 친구, 부동산 사장님, 공무원, 사채업자, 킬러, 이 밖에도 몇 명 더 되지만 주요 관계있는 인물 들 중에는 채 10명도 죽지 않았으니 이만하면 건물주 치고는 아주 부드럽고 원만하게 빌딩주의 반열에 오른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뭐 가까스로 죽다 살아난 부인과 딸도 사실상 이별한 것과 마찬가지지만, 건물주가 되기 위해서라면 죽은 것도 아니고 이 정도 희생은 감당해야 할 사치입니다. 부인과 딸과도 맞바꾸지 않을 소중한 건물이기 때문입니다.
벽돌 같은 책 쓰기
그러나 이러한 열명이상 죽음으로 몰아넣는 과격한 방법으로 건물주의 꿈은 이루려던 것은 아니었으므로 '살인성인(殺人聖人)'의 방법은 잠시 밀어 두고 '살신성인(殺身成仁)' 다시금 책을 쓰는 쪽으로 방향을 슬그머니 돌려 봅니다. 그동안 건물주가 될 만한 값이 아니면 받지도 않았던 출판 제의도 살짝 쌉 가능이라고 팻말을 돌려놓지요. 절대 욕심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저 건물주가 되려는 목적은 층간소음이 있으면 글이 잘 안 써지길래, 위층 없는 건물 펜트하우스에 조용히 앉아서 독자에게 더 좋은 글로 보답하기 위함입니다. 식민지 시대가 끝나서 부역할 방법도 없고, 전쟁으로 한몫 잡기도 어렵고, AI 시대라 권력에 결탁하기도 어렵고, 연예인은커녕 연예인과 사귀기도 어려워, "나만 없어 고양이"라서 키우기 까다로운 고양이 대신 키우기 쉬운 건물이라도 하나 키워 멤버십도 응원도 받지 않는 무료 글을 계속 쓰고자 하는 소박한 소망이지요. 글쎄요, 모래 같은 글을 반죽 삼아 벽돌 같은 책을 만들고, 그렇게 엮은 책을 벽돌 삼아 건물을 지으면 언제 빌딩이 완공될 수 있으려나요? 이번 생은 글렀다고요? 그렇죠. 열명 사사삭 처치하고 건물주 되는 게 아무래도 타불 더 빠르겠죠? 면죄부 값은 환급받게 건물 앞으로 부가세로 내면 되지요. 뭐 '살신성인(殺身成仁)' 책을 쓰든, '살인성인(殺人聖人)' 열명 처리하든, 건물주만 되면 되지요. 대힌민국에서 가장 선호하는 아부지나 할무늬의 직업 바로 '건물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