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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반사 Sep 15. 2020

현재를 사는 충실함

그래도 옳은 오늘..

어느 날 오후 8시 반, 남편에게 다급히 전화를 걸었다.

급한 일은 없었다.

다만 머리 위로 스멀스멀 올라오는 열기를 식히려면

내 상황을 어딘가에 쏟아내야 했다.

받지 않아 문자를 보냈다.


<바빠?>

<<응, 지금 전화를 받기가 좀 힘드네, 왜 무슨 일 있어?>>

<성질 나서>

<<ㅠ.ㅠ 고생이 많네>>

<한이 계속 소리 질러서 업고 밥함>


18개월이 다 돼 가는 한이. 아직 말을 못 하는 한이는 요즘 자신의 요구사항이 있을 때

소리를 지른다. 목소리도 크다. 밥하는 엄마를 보며 안으라 소리를 지르는 통에 들쳐업고 밥을 했다.

꽤나 묵직한 무게가 어깨를 짓눌렀다.


<<걔는 진짜 왜 그러는지... 말이나 하지>>

<한이 밥 먹이는데 애들이 앉기만 하면 심부름.><그래서 이미 힘들었음>

<<고생했네>>

<한이 가만히 보니 귀랑 얼굴, 머리까지 모기 물림>

<모기 찾아서 방에 감. 에프킬라랑 파리채 들고>

<<ㅋㅋ>>

<안방에 에프킬라 뿌리다가 화장대 쪽 가니 천장에 붙어있음>

<<오>>

<에프킬라 뿌렸는데 도망감. 에프킬라 거의 다 돼서 씩씩 소리 남.>

<파리채로 잡지 못해서 너무 속상함.>


출처-픽사베이


나는 유독 모기에 민감하다. 특히 모기가 귓가에서 얄밉게 윙윙 소리를 낼 때  신경이 곤두선다.

그 순간 내 귀를 힘차게 때리곤 한다.

그리고 곧장 휴대폰의 플래시를 켜고 어딘가에 숨은 모기를 찾아 나선다.

모기들은 주로 커튼 뒤 벽이나, 천장, 침대와 벽 사이, 가끔은 침대 프레임에 숨어있다.

아이들이 깰까 어둠 속에 플래시를 켜고 탐정처럼 이곳저곳을 비추다

모기를 찾는 순간,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급할 땐 손으로 때려잡는다.

이날은 파리채를 이용할 수 있었는데, 에프킬라를 잡은 손이 먼저 반응했고 마침 에프킬라가 거의 다 달아 버린 바람에

다잡은 모기를 놓쳐버렸다.


<<끝내 놓쳤구나...>>

<어디로 갔는지 못 봄. 그냥 거기 에프킬라 더 뿌리고 바닥 좀 닦는데

강이가 자꾸 모기 여기 있다고 와보라고 뻥침. 하아...>

<<ㅋㅋㅋㅋ>>

<그러다 안방도 걸레질.>

<한이가 작은 장난감 화살촉 질겅거리더니 화살대를 공기청정기 안에 넣음.>

<<헐>>

<공기청정기 빨간불 나고, 화살대 돌아가는 소리 남.>

<<AS 불러야 하나?>>

<뒷베란다에 걸레 놓으러 가는데 아랫집에서 진간장 끓이는 냄새 코찌름.>

<베란다에 있던 빨래 걷고 매트 패드 교체하는데 한이가 옆에서 방해>

<지금 전화하려고 침대 온 순간 또 침대 뒤로 팽이 던져버림.>

<환장함>

<<고생이 많네>>

<한이 귀가 빨개. 거기 엄청 가려운데...>

<모기를 박멸? 했어야 했는데 아까 그 소량 뿌린 거 마시고 죽었길 바라야지..>

<시체 확인을 못해서 찜찜>


이렇게 남편과의 문자가 끝나고,

나는 아이들을 재우고 책을 좀 읽으며 남편을 기다렸다.

뒤늦게 들어온 남편을 반가이 맞이했다.

보자마자 또 내가 오늘 어떤 일을 겪었는지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놈의 기억력이 발목을 잡았다.

"또 할 말이 있었는데... 아 뭐였지???"

그 말을 기억해내지 못한 채 나는 그가 씻는 동안 이내 잠이 들어버렸다.


그리고 나중에야 하고팠던 말이 기억난다...

"있잖아 작대기로 한이가 건이 목구멍 찔러서 피난 거 있지...."




세 아이를 키우면서 나의 감정은 하루에도 몇번씩 오르락내리락한다. 누군가에게라도 얘기를 하면서

풀고 싶은데 매일 보는 남편밖에는 털어낼 곳이 없다.

듣는 입장에선 지겨울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래야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이라도 풀리는 것 같다.

물론 육아가 즐거울 때도 많다. 당연히 애들이 예뻐서다. 하지만 답답함을 느낄 때도 많다. 요즘 같은 때는 특히 그렇다.

일을 할 때는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는데,

시국 때문에 더욱더 매일을 함께 북적이다 보니 혼자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한 걸 보며 참으로 간사하다 느낀다.


언제나 조금 더 현재 상황에 충실하길 바라지만,

머릿속은 자주,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곳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해 흘러가 있곤 한다.

그곳은 찬란하기까지는 아니더라나름대로 괜찮았던 지난날의 어느 한순간이 되기도 하고,

아직 맞이하지 않은 미래의 어느 때가 되기도 하고,

때론 내게 선택받지 못했던 어떤 미지의 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곳에 있었을 땐 이곳을 생각했고

어느 날의 그곳에선 또다시 이곳을 생각할지 모른다.


조금 고되고 가끔 화가 나더라도

생각의 흐름이 이곳에 머물게 될 언젠가를 떠올리며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다.

내 속 어딘가에 잠자고 있는

현재를 살아가는 충실함힘차게 흔들어 깨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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