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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화 Sep 23. 2024

나는 조금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여사장님의 눈물

호기롭게 시작했던 장사였다. 

사장님은 얼굴도 예쁘고, 동네 엄마들 사이에서 한 자리할 것 같은 깐깐 포스를 풍긴다.

우리 아파트 상가에 맛있는 음식을 파는 가게 하나를 중개했다.


사실 중개업을 하면서, 음식장사를 하기 위해 상가를 찾는 분들을 보면 사실 마음이 조금 무겁다.

너무 힘들어하는 것을 많이 봤었고, 얼마 가지 않아 폐업을 하는 것을 보면 내 속이 다 아려온다.

그래도 이번에 오픈한 여사장님은, 잘하실 것 같다.

시설도 다 되어있고, 월세도 저렴한 상가를 권리금도 거의 없이 인수하였으니 밑져도 크게 손해 볼 상황이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늘 그렇듯, 처음엔 광고도 열심히 하고 새로 생긴 가게가 궁금해서 손님들이 많이 찾았다. 덕분에 사장님의 얼굴도 많이 밝았다. 그런데 오픈빨이 끝나고 나니 '혹시나'가 '역시나'로 변하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화사하고 예뻤던 사장님의 얼굴에 그늘이 지고, 오픈 시간이 점점 늦어진다. 얼마나 버틸까?  채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사장님은 다시 가게를 내어 놓았다.


장사하는 사람들의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이 무슨 뜻일까 참 궁금했었는데 이젠 대충 짐작이 간다. 

앞으로 벌어서 뒤로 다 나가버리는 상황. 매달 돌아오는 월세일과 공과금 납부의 날. 쌓이다 결국 버려야 하는 재고. 적자가 조금씩 쌓이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숨 쉬는 것조차 힘든 지옥을 경험한다. 아마 몸속엔 나쁜 독소가 많이 쌓여서 그걸 똥으로 배설했으니 얼마나 독하겠는가. 그래서 개가 입을 대지 않나 보다.


"마음이 떠났어요. 처음 해보는 장사라서 의욕이 넘쳤는데 본사에서 내려오는 물건도 너무 마음에 안 들고, 본사에 속은 것 같아요. 가게는 금방 나가겠죠?"

"사장님. 상가는 임자가 나오면 금방 나가기도 하는데, 시기가 안 좋으면 몇 달 걸리기도 해요. 일단 블로그에 광고도 올리고 손님 오시면 열심히 설명할게요. 혹시 꼭 하고 싶은 사람이 나타나면 권리금도 좀 조절해 주시고요."

그렇게 헤어진 여사장님은 성격이 나만큼 급하시다.

가게를 내놓은 지 며칠이 되지 않았는데 가게는 언제쯤 나갈까요, 네이@ 부동산에 광고는 올리셨나요? 질문이 많다.


어느 일요일.

날씨도 며칠 흐리고, 여러 가지로 스트레스가 쌓였는지 몸도 너무 피곤하다. 소파와 혼연 일체가 되어 널브러져 있는데 문자가 온다. 그 여사장님이다.

"소장님. 저희 가게 광고 네이@ 부동산에 올리셨나요? 어디서 봐요?"

"아.. 블로그 광고는 했고요. 네이@에는 실장님이 올리셨는데 주소가 에러가 났는지 반려가 되었어요."

"그럼. 우리 가게는 안 올라간 거예요?"

그때부터 쏟아지는 쉴 새 없이 문자가 오기 시작한다. 한 달이란 시간 동안 안 올라갔다는 거냐. 자신한테 너무 중요한 시간인데 블로그 광고 말고는 지금 광고가 안되고 있다는 거냐. 너만 믿고 있었는데 이게 뭐냐...


답변에 지쳐 답을 안 했더니 득달같이 걸려 오는 전화.

화가 났다. 전화를 받으면 언성이 높아질 것 같아서 한참을 고민하다 받지 않았다.

일전에도 설명했었다. 우리 부동산은 상가 광고는 네이@ 부동산에는 올리지 않고 블로그 위주로 광고를 하고 있다. 상가를 찾는 분은 지역을 정하고 현장을 직접 둘러보시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렇다. 등 등.


마음이 급하다는 것은 이해한다.

그래도 내가 그 여사장님께 빚을 진 것도 아닌데, 나와 전속계약을 맺은 것도 아닐진대,  황금 같은 일요일에 이런 질책 섞인 문자 폭탄을 받고 보니, 이 분은 나를 도대체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이런 행동을 하는 걸까?라는 생각까지 흘러간다. 다음에 만나면 단단히 한마디 해야겠다. 이제껏 눌러왔던 나의 울컥하는 성미가 스물스물 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성낼 준비 완료!


다음날 아침.

어김없이 걸려오는 여사장님의 전화.

"소장님. 사무실에 계시죠?"

"네. 있습니다." 대답이 평소보다 냉정하고 짧게 나온다.

사무실에 오기만 해 봐라. 내가 얼마나 빡쳤는지, 네가 얼마나 무례했는지 큰 소리로 또박또박 알려줄 테니.


사무실 문을 열고, 웃으며 들어오는 여사장님의 얼굴을 보니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진다.

네이@ 부동산에 물건이 올라가지 않은 것을 따지러 왔다.

"사장님. 일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저희 네이@ 부동산에 상가매물을 올리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장님 가게는 실장님께 올려두라 했는데, 주소 입력이 잘못돼서 안 올라간 것 같습니다. 저희 부동산에서는 상가광고는 블로그 위주로 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장님 가게 홍보한 블로그 포스팅 링크도 보내드렸죠. 제가, 사장님 상가는 여기저기 할만하실 분 찾아서 따로 연락드리고 무척 신경 쓰고 있는데 고맙다는 말을 들어도 모자랄 판에 일주일에 단 하루 쉬는 일요일에 질책 섞인 문자를 계속 받으니 좀 불쾌했습니다."

화내지 않았다. 무척 정제해서 말했다고 생각했다. 나름 성깔 있어 보이는 여사장님의 답변이 사과가 아닌 개념 없는 원망이 나오면 그땐 정말 화를 심하게 내야겠다는 마음으로 여사장의 얼굴을 빤히 보자니...... 어라.  여사장님의 눈이 빨개진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후두둑 흘릴 것 같다.


'어... 이거 아닌데'

당황스럽다.

내가 언성을 높인 것도 아니고, 정말 정갈하고 예쁘게 말한다고 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이런 반응! 나보고 어떡하란 거지?


사장님은 마음이 많이 답답했나 보다. 처음 해보는 장사에 처음 해보는 폐업에.  마음 떠난 가게는 출근을 하지 않고 있고 하루하루 시간이 갈 때마다 사장님의 손해도 차곡차곡 쌓인다 생각하니 무척 겁이 났나 보다.

집을 팔 때는 대부분 네이@ 부동산을 먼저 보니, 당연히 상가도 그러리라 생각했고, 믿었던 소장님이 물건을 올려주지 않으니 많이 섭섭했다고 한다.

환불원정대의 최전방에 세워도 섭섭지 않을 외모를 가진 여사장님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니 나도 적잖이 당황했다. 또. 또 내가 나쁜 년이 되는 그런 느낌.  아, 이럴 땐 내가 싫다. 정말!


가게를 하면서, 그래도 상가 입주민중에 가장 이야기를 많이 나눴던 사람이 소장님이고, 항상 밝게 이야기하시던 분이 너무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많이 놀랬다고 한다. 자신은 인간관계를 중요시하는 사람인데,  사람 사귈 때 이렇지 않은데 주말에 자신이 실수한 것 같다며 눈물을 흘렸다.


아... 갑자기 역류성 식도염이 재발해서 가슴팍에 바위를 올린 듯 묵직하고 쓰라린다. 내가 너무 한심하다.

인간관계는 도대체 왜 이리 어려운 걸까. 

내 나름대로 정해놓은 선을 넘었다 생각하면 뒤도 안 보고 차단해 버리고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은 오랜 시간 살면서 내 나름 터득한 꽤 괜찮은 자기 방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어쩌면 세상사람 대부분 나만큼 여리고 나만큼 쉽게 상처받는 겁 많은 사람들 인지도 모르는데, 나는 지레 겁먹고 나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그들을 멀리했던 것 같다.

상대방이 저지른 무례를 무심히 흘려버리고 언제나처럼 따뜻이 그의 안부를 물으며 웃을 수도 있는데, 혼자 판단한다. 이해대신 오해를 한다. 그리곤 ' 제가 분명히 날 업신여기고 있는 게야. 그렇지 않으면 저렇게 말하고 행동할 수 없는 거지!'라는 결론을 바탕으로, 상대를 말없이 끊어내거나 벼뤘다가 똑같이 상처 주고 다시 만나지 않는 인연이 얼마나 많았나.

인연이라는 것이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어서, 내가 누군가와 만나는 동안 최선을 다했으면 그걸로 되었다고  이렇게 인연이 끝이 나면 아쉬울 것은 내가 아닌 받기만 했던 상대방 일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곤 항상 인연을 끊는 쪽은 나였다.


나는 조금 더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조금 더 사람을 사랑할 필요가 있다. 순간의 말실수나 무례함은 빨리 잊어버리고, 그 사람이 나에게 베풀었던 관심과 따뜻함을 더 크게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내가 뭐라고 함부로 판단하고 결정한 단말인가. 그냥 단지 고마워하고 사랑하면 되는데...


나는 수양이 좀 필요한 것 같다.

저기 어디 폭포 쏟아지는 곳에서 물을 좀 맞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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