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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재성 Dec 22. 2019

KOP으로 살아가기

Liverpool FC의 팬으로 산다는 것

축구와 같은 스포츠가 정치적이어서는 안된다는 판단은 대부분 정치적인 메세지를 담으면 관리하는 측 - FIFA나 각각의 국가 - 에서 골치가 아파진다는 단순한 문제에서 파생된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축구 하나만 놓고 보자면 이처럼 정치적인 스포츠가 없을 정도죠. 팹 과르디올라가 벌금을 무릅쓰고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았던 이유도 스페인 중앙정부에 탄압받는 카탈루냐를 상징하는 행동이죠. 카탈루냐를 상징하는 바르샤와 중앙 정부를 상징하는 레알의 싸움이 전쟁터처럼 변하곤 하는 것도 이런 사연을 안고 있는 것이죠. 

이른바, El Clásico.

한참 피가 튀던 시절의 엘클라시코

리버풀팬이라면 모두가 알고있을 - 혹시 모르는 분들도 계실까요 - 유니폼 뒷 편의 두 개의 불꽃과 96이란 숫자도 엄밀히 말하자면 대단히 정치적인 메세지를 담은 상징입니다. 1989년 4월 15일, 노팅엄과의 FA CUP 준결승전에서 어처구니없이 죽어간 96명의 KOP들을 추모하는 숫자와 그들의 안식을 비는 Eternal Flame. 

Eternal Flame과 96 - 힐스버러 참사에서 희생된 KOP들의 수입니다.

당시 영국의 대처 행정부와 거기에 빌붙은 황색언론들은 이 사건에 대해 자신들의 책임은 회피하며 리버풀팬들의 비행으로 인해 빚어진 참사로 여론을 호도했고 유가족들은 이 찌질하고 야비한 정부와 기나긴 싸움을 해야했습니다. 유니폼에 힐스버러를 상징하는 불꽃과 숫자가 씌여지고 머지사이드 더비의 상대팀인 에버튼도 이런 거지같은 상황과 함께 싸웠습니다. 리버풀팬들은 '대처년이 뒈진다면 우리는 파티를 열거야.'라는 응원가를 외치며 다른 나라 사람들은 철의 여인이라 칭송하던 수상을 욕했고 27년이 지난 2016년, 기어이 세상을 떠난 96명의 팬들이 훌리건이 아니라 그저 축구를 응원하러 축구장을 찾았다 변을 당한 무고한 팬들임을 인정받게 됩니다.  

철의 여인? 평화롭게 녹이나 쓸어라! - 이 정도는 상당히 얌전한(?)표현이었습니다.

힐스버러 참사는 96명의 팬을 잃어버린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이를 덮으려는 정부와 유가족들과의 싸움이 있었고, 그 가족들과 유대한 콥들과 구단의 연대가 있었으며, 평소에는 사이가 좋지 않지만 정부의 행동에 분노한 에버튼 팬들의 연대도 이어져서 기어이 진실을 밝혀낸 사건이죠. 우리의 응원가가 You'll Never Walk Alone인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힐스버러 참사의 유가족들은 공교롭게도 같은 날짜에 사고를 당했던 세월호 유족들과도 연대했습니다.

단순히 축구팀을 좋아하는 것이라면 정치적인 메세지가 담기는 것을 거부하고 혐오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리버풀이란 팀을 선택한 것은 '그냥 축구팀'이 아니라 희생자와 연대하고 약한 자들의 편에 서는 '리버풀FC'이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미나미노의 영입과 더불어 촉발된 전범기 배경으로 인해 가뜩이나 호불호가 갈리는 팀인 리버풀의 팬으로 많은 KOP들이 동요하고 머리 아파하고 있는 것을 보며 이번 기회에 그 깃발이 얼마나 우리 팀과 어울리지 않는 물건인지 전세계의 KOP들에게 - 일본의 KOP들에게도 -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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