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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재성 Apr 15. 2016

한잔의 맛

그 한 잔의 맛을 위해 우리가 마신 술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웹툰 작가인 양수와는 어느새 20년이 넘어가는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동네 친구다. 

장가가기(양수가) 전부터 같은 동네에 살다 보니 어느새 부터인지 늘 어울려 다니고 있었고 이제는 별의별 모습을 서로에게 보이면서도 쪽팔림이라는 것조차 존재하지 않는 그런 사이가 되어버렸다. 처음 만났을 때, 양수는 지금과 같은 이름난 만화가가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는 녀석이었지만 '웹툰'이라는 것의 존재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할 시기에는 어느새 1세대 작가로 그 이름을 드높이고 있었다. 생활을 주제로 하는 만화를 그리다 보니 그의 만화에 잊을만하면 등장하는 영광(?)도 누릴 수 있었고 당연히 사서 서고를 채웠어야 할 그의 작품집들은 싸인과 더불어 작가의 손에서 직접 쥐어지는 행복도 여전히 누리고 있다.

책장을 장식하고 있는 양수의 단행본들

이번에 새롭게 나온 '한잔의 맛'은 그 기획단계부터 알고 있던 몇 안 되는 작품이었다. 사실 양수의 대표작인 '생활의 참견'의 경우, 매주 두 번씩 각각의 에피소드로 구성되는 생활툰이라 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도저히 어떤 작품이 나올지 알 수 없는 작품인 것에 비해 '한잔의 맛'은 처음 기획 단계에서부터 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경험을 하게 된 첫 작품이었다. 그의 머릿속을 들여다본다는 것.... 바로 같이 어울려서 신나게 술을 마셔대는 일이었지. ^^ 


예전에는 그냥 아무 술이나 모조리 때려마시는 두주불사의 술자리였다면 피키 케스트에 이 만화를 연재할 시기의 양수와 나는 - 그리고 수많은 (술판의) 전우들은 - 몇 가지 술을 놓고 그 맛을 실제로 느껴본다던가 아니면 그 술과 어울리는 안주가 있다던데 이것은 좀 어떨까 식의 학구적인 술자리로 바뀌어갔다. 그러다가 둘이서 마시던 술에 다른 음료수를 베이스로 해서 나온 칵테일이 새롭게 탄생하기도 했고 개인적인 아픈 사연이 에피소드로 소개되는 일도 만날 수 있었다.

양수의 첫째인 시우가 사인해 준 '시우는 행복해' - 모든 책중 가장 소중한 책이다. ㅎㅎ

술을 주제로 한 만화는 전에도 몇몇 있었다. 분위기도 다르고 다뤄지는 술도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그 만화를 그리는 이들이 술 자체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나올 수 없었다는 것 아닐까. 건강을 걱정해야 할 나이에 새삼 술을 주제로 한 만화를 끄집어내는 것은 어쩌면 그나마의 건강을 담보로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모험 이리라.


술을 즐기는 이들 중에 악한 사람이 없다는 약간은 억지스러운 말도 있지만 내가 아는 인간 김양수는 그 누구보다도 술을 사랑하고, 인간성도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무한히 주는 사랑에서 조금은 밀당하는 사랑으로 술에 대한 애정표현을 바꿔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터프한 척 하고 있는 양수. 그래봐야 아는 이들은 다안다. 터프랑은 거리가 먼 인간이란걸.

모처럼 제대로 술을 사랑하는 이의 손끝에서 맛난 술이 그려져 나온 책이다, 한잔의 맛은.

언제나 한 잔으로 끝나지 않는 우리의 술자리는 오늘도 계속되지만 그 수많은 한 잔의 맛들이 우리 말고도 다른 이들에게 또 새로움으로 다가가길 바래본다.


그렇게 우리가 한 잔의 맛을 느끼기 위해 마신 술들은 오늘도 이 도시 어딘가에서 아픈 마음을 어루만지고 즐거운 가슴을 북돋워주며  떠돌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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