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래 마을의 일곱 번째 이야기
미니는 자신의 이름이 싫었어요. 가뜩이나 햄스터라 다른 동물들보다 몸집이 작은데…. 주변 햄스터 중에서도 작은 편이었거든요. 그런데 이름이 미니(mini)라니! 미니는 모두에게 자신을 로얄미미1세라고 부르라며, 성을 부렸지요. 왜 하필 로얄미미1세냐구요? 그건, 당시 미니가 빠져 있던 애니메이션의 공주가 로얄프린세스1세라는 이름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미니는 프린세스에 자신의 이름 앞 글자를 넣어서 로얄미미1세라는 이름을 만들었답니다. 꼬마 미니는 자신이 새로 만든 이름이 참 마음에 들었는데, 안타깝게도 아무도 그 이름으로 미니를 불러주지 않았지요. 새로운 이름이 모두의 입에 착착 달라붙지 않은 탓도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수리 때문이었어요. 미니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분명, 미니의 소꿉친구 햄스터 수리 탓이라고요.
“친구우?”
미니가 그 단어를 들으면 기겁하겠지요.
“걔는 친구 아니거든요.”
미니는 항상 수리를 보면 그렇게 이야기했거든요. 수리의 입장도 별다르지 않았어요. 수리는 매일매일은 미니를 괴롭히기 위해서 사는 것 같았거든요. 그렇다고 미니를 때리거나, 미니에게 욕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계속 못 된 장난을 쳤지요. 수리가 미니의 새로운 이름을 들었을 때, 바로 수리의 머리에 스쳤던 이름이 있었어요. ‘제일작은미니1세.’ 수리는 옳다구나, 하고 친구들에게 자신이 지은 이름을 퍼뜨렸지요. 미니는 친구들에게 자신의 새로운 이름을 말하고, 새로운 이름으로 불릴 나날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들려오는 것은 ‘제일작은미니1세’라는 이름이었어요. 수리는 자신은 사실만을 말했다며, 잘못을 뉘우치지도 않았지요. 결국 수리의 놀림은 미니가 수리의 머리를 쥐어박고 나서야 끝이 났어요. 수리는 한동안 머리에 큰 혹을 달고 있었답니다.
미니와 수리, 1 대 0! 이렇게 당하기만 할 미니가 아니었지요. 수리가 조용하면, 어느 날은 미니가 수리에게 시비를 걸었답니다.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네 잎 클로버 사건이었어요.
시나래 마을에는 네 잎 클로버의 날이 있어요. 그날에는 서로 네 잎 클로버를 주며 행운을 빌어준답니다. 인기가 많은 친구는 네 잎 클로버를 많이 받기도 해요. 다들 말은 안 하지만, 서로 몇 장 받았나 신경전을 벌이곤 했지요. 그런데, 네 잎 클로버의 날 수리는 한 장도 받지 못했어요. 가만히 둬도 기분 나쁠 판에, 미니는 그 일을 또 가만히 두지 않았지요. 미니는 수리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놀려댔어요.
“야, 어떻게 한 장도 못 받냐? 불쌍해.”
히죽히죽 웃으며 말이지요. 수리는 화가 나서 미니가 받은 네 잎 클로버의 잎들을 다 뜯어버리고 말았답니다. 결국, 미니가 울음을 터뜨리며 그 일도 마무리가 됐어요.
미니와 수리는 이렇게 유명한 앙숙이었어요. 둘이서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댔는데, 희한한 것은 또 둘이서 자주 붙어 다닌다는 것이었지요. 항상 투덕투덕하면서, 항상 붙어 있어서 그 둘을 보는 어른들은 혼란스러워했어요.
“쟤들은 사이가 좋은 거야? 안 좋은 거야?”
꼬마 미니의 머리를 잡아당기는 수리, 그 수리를 쥐어박는 학생 미니. 그리고 그 뒤를 몰래 따라가는 수리. 그렇게 그들은 자라는 내내, 엎치락뒤치락 장난을 치고 서로를 구박했어요.
그렇게 어느덧, 미니와 수리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아직은 어리지만, 슬슬 직장을 찾을 때가 되었지요. 미니와 수리는 여전히 자주 다퉜지만, 전처럼 못되게 놀리거나 싸우지는 않았어요.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아졌거든요. 특히, 앞으로 무엇을 할지가 미니와 수리의 가장 큰 고민거리였어요. 수리는 아빠가 하는 가게를 물려받았지만, 미니는 옷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있었어요. 그래서 미니는 공작 아주머니의 옷 가게에서 알바하며, 틈틈이 옷 공부를 하고 있었지요. 유학하러 가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어요. 수리라고 마냥 편한 것은 아니었답니다. 아빠와 같이 일을 하면서 매일같이 다투었어요.
“너는 일을 왜 그따구로 하냐?”
“이게 뭐가 어때서!”
수리가 가게 문을 박차고 나오는 일은 일상이었답니다. 그렇게 바쁜 나날이 매일같이 반복되었어요. 그런데도 신기하게 미니와 수리는 매일 빼놓지 않고 만났답니다. 사소하게는 같이 산책하며 옷차림을 놀리거나, 같이 가게에서 밥을 먹으며 자기 일을 자랑하거나, 때로 너무 힘들었던 날이면 그네에 앉아 위로해주기도 했지요. 가끔 보이는 다정한 모습에 ‘너희 혹시-.’ 하고 의심의 눈길을 보내면,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똑같았어요.
“어우. 말도 안 되죠.”
그리고 잠시 있다가.
“그냥. 걔가 썩 나쁜 애는 아니니까요.”
수리가 가게 문을 박차고 나온 113일째 되던 하루는 평소보다 더 크게 아빠와 다툰 날이었지요. 아빠가 ‘넌 대체 할 수 있는 게 뭐냐? 내가 아니었으면 너는 직장도 못 구했을 거다!’라며 수리의 마음을 뭉개버렸거든요. 수리도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았던 게 아니었어요. 가끔은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생각도 했지요. 분명히 더 어렸을 때는 종이접기도, 운동도 잘했었는데. 그냥 어느 순간부터는 잘하는 것은 많지만 뛰어나지는 않은 햄스터가 되어버렸어요. 그래서 그랬나 봐요. 그렇게 고민이 많았던 날이라, 미니한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버리고 말았어요.
“야.”
미니가 음료수를 쭈욱 들이켜며 수리를 발로 톡톡 건드렸어요.
“뭐.”
“나 아마도 유학 갈 수 있을 것 같아.”
“뭐?”
수리가 고개를 빠르게 들었어요. 미니가 쑥스러운 듯 웃고 있었지요.
“아니, 사장님이 지인 중에 외국에서 디자인하는 동물이 있대. 그래서 소개해주기로 했어. 그분 가게에서 일 도와주면서 일 배우고, 학교 시험도 통과하면 다닐 수도 있고.”
“뭐래. 널 써 주기는 한데?”
미니가 얼굴을 굳히며 말했어요.
“너 참 싸가지 없게 말한다. 됐어. 누가 너한테 알아달래?”
“아니, 현실적으로 좀 생각해 봐. 야. 햄스터가 옷을 만들어봐야 기껏해야 작은 동물들 옷이나 만들지. 큰 동물들 옷은 어떻게 만드냐? 공작 아줌마도 참 웃기다. 동네에서나 좀 쓸만한 애를 외국에까지 소개하고.”
수리는 픽, 웃으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지요. 반면, 미니는 점점 붉어지더니 결국 화산처럼 폭발하고 말았지요. 큰 소리를 빼액 내지르는 미니.
“야!”
마침 디저트를 가져다주던 곰 아저씨가 큰 소리에 깜짝 놀랐어요. 케이크를 떨어뜨릴 뻔했지만, 프로답게 안전하게 테이블 위에 접시를 놓았답니다. 항상 ‘맛있게 드세요.’하고 돌아가는 곰 아저씨가 이번만큼은 맛있게 먹을 분위기가 아니니 조용하게 뒷걸음칠 쳤지만요.
그 후로, 수리는 미니를 좀처럼 마주칠 수 없었어요. 평소에는 미니가 있을 법한 장소에 항상 미니가 있거나, 수리가 자주 가는 곳에 가면 미니가 오곤 했었지요. 하지만 일 주가 지나도록, 미니의 꼬리조차 볼 수 없었답니다. 만나자고 약속한 것도 아니고, 바쁜가 보다 하고 미니에 대한 생각을 멈추려고 해도 그럴 수 없었어요. 가슴이 찡하고, 답답했어요. 자신이 내뱉은 말에 상처받은 미니의 표정이 떠올랐지요.
‘어쩌면, 미니가 나를 피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눈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따가웠고, 손발이 달달 떨렸어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불안감. 수리는 후회했어요.
그날 밤, 수리는 오랫동안 책장 한 귀퉁이를 차지했던 커다란 상자를 꺼내 들었어요. 낡은 종이 뚜껑을 열자, 갈색으로 반듯이 마른 네 잎 클로버 한 장이 들어 있었지요.
수리가 네 잎 클로버를 하나도 받지 못하고 우울해했던 그날 저녁, 누군가가 수리네 문 앞에 네 잎 클로버를 놓고 갔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게 하고 싶었던 것 같았지만, 수리는 초인종을 누르고 저 멀리 도망가는 동물이 무척 작고 분홍빛의 털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았지요. 맞아요. 바로 미니였어요. 하지만 수리는 미니가 원했던 것처럼 그날의 선물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답니다. 그냥, 제 몸만큼 커다란 네 잎 클로버를 아주 소중하게 보관했을 뿐이었어요.
수리는 네 잎 클로버를 보며, 생각에 잠겼어요. 그리고 달력을 보았지요. 앞으로 며칠 뒤면 네 잎 클로버의 날이랍니다. 자신의 실수로 어긋나버렸지만, 다시 붙일 수 있을지도 몰라요. 수리는 주먹을 꽉 쥐었답니다.
다시 돌아온 네 잎 클로버의 날, 수리는 클로버밭에서 열심히 네 잎 클로버를 찾았어요. 다른 동물들은 고개를 숙여서 쓱 하고 뽑아가 버렸지만, 몸집이 작은 햄스터 수리에게는 도통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이곳저곳 작은 다리로 바삐 돌아다니며 하나하나 고개를 들어 잎이 몇 개인지 확인해야 했지요. 그리고 마침내, 수리는 아주 새파랗고 예쁜 네 잎 클로버를 발견했답니다. 하지만 뽑는 것도 일이었어요. 수리는 네 잎 클로버의 줄기를 한참 갉아 먹고 나서야 네 잎 클로버를 얻을 수 있었답니다. 그렇게 고생해서 얻은 네 잎 클로버를 또, 힘겹게 끌고 가서 미니의 집 앞에 놓았어요. 작은 쪽지를 덧붙인 채 말이에요. 이제는 미니가 쪽지를 발견하고, 약속 장소로 나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지요.
수리는 다음 날, 한참을 화단의 찌그러진 돌덩이 옆에서 기다렸어요. 아침부터 기다린 탓에, 저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고 있었지요.
“야. 뭐하냐.”
수리가 눈을 떠보니, 해가 벌써 중천에 떠 있었어요. 그리고 해를 등지고 미니가 떡하니 서 있었죠.
“왜 이렇게 늦었냐.”
좋게 말해야지, 사과해야지, 마음먹은 것과는 반대로 퉁명스럽게 말이 나오고 말았어요. 그러고선 수리는 미니의 눈치를 보고 있었지요.
“이걸 보고 어떻게 아냐?”
미니가 수리가 두고 간 쪽지를 펼쳐 보였어요.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죠.
‘나와. -코흘리개가’
수리가 머뭇거리며 말했어요.
“너라면 알 거라고 생각했지.”
다시 못난이 돌 앞에 선 수리와 미니. 그 앞에 서 있으니 처음 만난 날로 돌아간 것 같았어요. 미니네가 이사를 오고 나서, 미니네 가족과 수리네 가족이 산책하다가 처음으로 마주친 날. 이미 장을 보며 서로 얼굴을 익힌 미니와 수리네 부모님은 정답게 인사를 나누었어요. 미니는 긴장한 눈빛으로 수리를 보았고, 수리는 귀찮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요.
“너랑 동갑이래. 인사해 봐.”
미니네 부모님이 미니를 앞으로 슬쩍 밀었어요.
“너도 친구한테 인사해야지.”
수리네 부모님도 수리를 앞으로 슬쩍 밀었지요.
그때부터 그 둘의 악연은 시작되었어요. 긴장한 미니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울먹이자, 수리가 못난이 돌을 가리키며 키득거렸지요.
“너 저거 닮았다!”
미니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수리를 보고 꽥 소리를 질렀어요.
“너…너는 코흘리개야!”
콧물을 흘리고 다니던 당시, 어린 수리는 그 말에 충격을 받고 똑같이 빽 소리를 질렀지요. 이렇게 첫 만남부터 수리와 미니는 평탄치 않았지요.
이제는 코흘리개던 수리와 못난이 돌멩이였던 미니가 커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수리가 호흡을 크게 하고 미니에게 다가갔어요.
“야. 미안하다.”
미니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어요.
“뭐가.”
“내가 그… 못된 말 했잖아.”
“알긴 아나 보네.”
미니의 입이 더욱 길어졌지요.
“진심 아니었어. 그냥 아빠랑 또 다퉈서, 너한테 화풀이한 거야. 미안해.”
미니는 눈을 흘겼어요. 그러더니 곧 한숨을 쉬었지요.
“알아. 그리고, 뭐… 네가 한 말도 틀린 건 아니고.”
미니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발밑을 내려다보았지요.
“내가 큰 동물 옷을 만들 수는 없겠지. 그러면 디자이너로는 꽝이고.”
수리는 미니의 귀를 주욱 잡아당겼어요.
“야! 네가 뭐. 솔직히 네가 만든 옷들, 입고 다니는 옷들 다 장난 아니야. 다른 동물들도 공작 아줌마한테 물어보잖아. 네가 입는 옷들 팔고 있냐고. 크기? 작은 게 뭐 어때서. 오히려 전문가가 될 수 있어. 액세서리나, 작은 동물들을 위한 옷, 소품은 네가 제일 잘 만들걸?”
미니는, “뭐래.”라며 수리를 툭 쳤어요. 하지만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가 미니의 마음을 숨기지 못했지요.
그렇게 둘은 다시 친구가 되었어요. 친구… 맞나요? 그 둘의 분위기는 전과는 사뭇 달랐지요. 물어뜯는 데만 집중했던 수리와 미니는 이제 서로의 마음을 신경 쓰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자신의 마음에도 귀를 기울였지요.
수리를 생각하면 묘하게 설레는 미니의 마음. 미니는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신경 쓰여서 도통 잠이 들 수가 없었어요.
“뭐래.”
미니는 이불을 발로 빵빵 찼어요. 같은 시간 수리도 이불에 빨개진 얼굴을 푹 파묻고 있었지요.
그렇다고 구박을 멈췄냐? 그것은 또 아니었지요. 오랜만에 둘이서 나온 나들이. 미니는 수리를 또 구박했답니다.
“사진 좀 예쁘게 찍어줘!”
그냥 넘어가면 좀 좋아요. 수리는 미니의 잔소리를 그냥 넘기지 않았지요.
“너처럼 못생긴 애를 어떻게 예쁘게 찍냐?”
“우이씨!”
미니는 콧김을 뿜으며 다가와서 수리의 귀를 찍 잡아당겼어요.
“야! 너 말은 똑바로 해라. 내가 꽃보다 예쁘지.”
귀가 잡아당겨져서 어지러워진 탓일까요? 수리는 악을 지르다가, 순간 본심을 말해버리고 말았어요.
“그건 그렇지만-.”
미니가 동그란 눈을 하고 순간 손을 놓았어요.
“응?”
수리도 비틀거리다가 뚝 멈추어 섰지요. 둘 사이에 정적만이 흘렀어요.
“야.”
침묵을 깨고 미니가 입을 열었어요.
“어.”
수리도 아무렇지 않은 척 답했지요. 그렇지만 수리의 목소리는 요동치고 있었어요.
“우리 사귀자.”
“응?”
갑작스러운 미니의 고백에 수리가 코를 떨었어요.
“사귀자고!”
미니가 크게 말했어요. 그렇게 용감하게 말하는 미니도 실은 엄청나게 떨고 있었지요. 어정쩡한 자세로 두 손은 꽉 쥐고, 시선은 먼 곳을 향하고 있었어요. 수리는 뭐랄까, 자신도 용기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마찬가지로 큰 목소리로 외쳤어요.
“그… 그래!”
그들의 목소리가 한참 동안 큼직한 돌덩어리들과 꽃들 사이에서 메아리쳤답니다.
사귀자고… 사귀자고…. 사귀자고……
그래… 그래…. 그래……
사귀자고… 사귀자고….
그래… 그래….
끝을 모르게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