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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리스 Jan 05. 2024

혁명과 사랑의 도시, 파리

귀스타브 플로베르 『감정 교육 1,2』(1869)

2003년에 출간된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 1935-)의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Paris, Capital of Modernity)』에는 19세기 프랑스 문학 속 문장들이 수도 없이 인용된다.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 1799-1850),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 1821-1880),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1821-1867)와 같은 작가들은 19세기의 파리를 문학의 무대 위에 올려놓았고, 하비는 그런 작품들 속에서 실제 역사로 간주해도 될 만한 파리의 면면들을 찾고자 했다. 나 역시 그 시기의 파리를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선택했다.


소설 속 주인공 프레데릭 모로는 보들레르의 그 유명한 플라뇌르(한량 산보객)의 전형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하비도 프레데릭을 "자신이 어디 있는지, 혹은 자기가 하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똑똑히 깨닫지 못한 채 도시에서 돌아다니는 만보객"이라고 설명한다.(『모더니티의 수도, 파리』, 162쪽). 프레데릭은 유부녀인 아르누 부인에게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그에게도 문학가가 되고픈 꿈이나, 성공에의 갈망 같은 것들이 있었지만, 막 파리로 상경한 프레데릭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은 오직 아르누 부인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의 사랑이 극도로 순수하다거나 고귀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건 뭐랄까, 인생의 목표가 뚜렷하지 않은 철없는 청년의 무기력한 삶에 대한 나름의 핑곗거리 같은 거였다는 생각이 든다.


1848년 2월 혁명

프레데릭이 흐지부지한 사랑을 하고 있는 동안 1848년 2월의 파리에서는 혁명이 발발한다. 그 혁명은 프레데릭을 둘러싸고 있던 부르주아와 노동자 계층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는다. 소설 속에는 혁명의 여파를 몸소 겪는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먼저, 상층 부르주아지를 대표하는 인물로 당브뢰즈를 들 수 있다. 당브뢰즈는 왕정을 지지하는 인물로, 혁명이 일어나자 자신이 기생해 온 체제가 무너질까 봐 전전긍긍한다. "모든 프랑스인들 중에서 가장 두려움에 떤 사람은 당브뢰즈 씨였다. 새로운 상황으로 그의 재산은 위협받았고, 특히 그의 경험은 틀린 것이 되었다. 그토록 좋은 제도, 현명한 왕이었는데!"(2권 92쪽) 혁명 직후 당브뢰즈는 철면피에 약삭빠른 태도로 자신은 본래 공화주의자였으며, '자유, 평등, 형제애'를 환영한다고 프레데릭에게 고백한다. 혼란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왕정주의자가 단번에 공화주의자가 돼버리는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을 자아냈다. 당브뢰즈와 같은 부류에 대한 플로베르의 입장은 상당히 단호해 보인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은 적어도 세 정부를 위해 일했다. 재산을 보호하고 불편이나 문제를 면하기 위해, 아니면 단순히 권력에 본능적으로 숭배하는 비천함에서 그들은 프랑스나 인류를 팔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1권 372쪽)

당브뢰즈와 반대편 끝에는 세네칼과 같은 인물이 있다. 열렬한 공화주의자인 세네칼은 1848년 2월 혁명에 적극 참여하는 인물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그런 세네칼이 공장 노동자들을 대하는 방식을 묘사한 장면이다. "공화주의자는 이들을 엄하게 다루었다. 이론가인 그는 대중만을 중시할 뿐 개인에게는 냉혹했다."(1권 308쪽) 혁명과 공화정을 지지하는 세네칼이 어려운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는 냉대하는 모습에서 정치에 대한 플로베르의 냉소가 느껴졌다. 그러나 적어도 세네칼이 체포된 이후 프레데릭은 다음과 같이 성찰한다.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세네칼은 더 위대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의 고초, 엄격한 생활을 떠올렸다. 뒤사르디에처럼 그(세네칼)에게 열광하지는 않아도 어떤 사상에 몸을 바치는 모든 삶에게 느끼게 되는 찬탄이 떠올랐다"(1권 363쪽). 한편, 세네칼이 주장하는 예술론도 매우 흥미롭다.

"예술은 오직 민중을 선도하는 데 목적을 두어야 했다. 고결한 행동을 이끄는 주제들만이 재현되어야 했다. 이 외의 것들은 해롭다고 했다.(중략)... "예를 들면 비너스나 다른 풍경 같은 작품들이 왜 필요하죠? 그런 작품들 속에는 민중을 위한 교훈이 보이지 않아요! 차라리 대중의 불행을 보여주세요! 대중의 희생에 우리가 열광하도록 해주세요! 아! 세상에, 주제가 없는 건 아니죠. 농장, 작업장...""(1권 87쪽)

예술이 예술을 위한 예술로 남아 품위와 순수성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사회 속으로 들어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자신만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논쟁은 19세기 중반에도 제기되었던 것이다.

이 외에도 문학도이면서 독신 여성인 바트나가 혁명이 일어나자 여성운동가로 변신하는 장면도 극에 재미를 더했다. 결혼제도 하에서, 전형적인 어머니 상인 아르누 부인이나, 부르주아들의 사교계를 휘어잡고 있던 당브뢰즈 부인 그리고 고급 창부 로자네트 사이에 낀 독신 여성 바트나가 여성 해방을 위해 투쟁하게 되는 설정은 비록 간결하게 언급될 뿐이지만 강렬한 잔상을 남긴다. 플로베르의 시선이 다양한 계층의 여성들에게까지 닿아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바트나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뒤사르디에는 노동자 계급의 선하고 착한 청년으로 혁명과 공화주의에 대한 순수한 기대와 열망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소설의 말미에서 십자가를 등에 업고 민중 속으로 몸을 던지는, 일종의 혁명과 희생을 동시에 상징하는 알레고리로 분한다.   

마지막으로 젊은 시절의 플로베르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주인공 프레데릭의 혁명에 대한 태도는 어떠했을까. 그는 1848년 2월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창부인 로자네트와 파리 교외에서 데이트를 즐기며 혁명에 거리를 둔 무관심한 태도를 견지한다. (그들이 묵고 있던 파리 교외의 호텔에) "새로 도착한 여행객들이 끔찍한 전투로 파리가 피에 물들었다고 그들에게 전해주었다. 로자네트와 그녀의 애인(프레데릭을 가리킴)은 이 소식에 놀라지 않았다. 모두들 가 버리자 호텔은 다시 고요해졌고 가스등이 꺼지자 그들은 뜰에서 들려오는 분수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2권 134-135쪽) 이는 혁명과 동떨어져, 분수에서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들릴만큼 평온한 파리의 교외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프레데릭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는 또한 혁명의 불길에 휩싸인 장소가 오직 파리에 국한되어 있었다는 사실 역시 알려주고 있다. 파리는 1789년과 1792년, 1830년에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이 책이 출판된 이듬해인 1870-1871년과 마찬가지로 혁명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립된 채 스스로를 잿더미로 만들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프레데릭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던 것이다. "프레데릭은 두 집단 사이에 낀 채 매료되어 한껏 즐기며 꼼짝도 하지 않았다. 쓰러지는 부상자, 쓰러져 누워 있는 사상자들도 실제로 다치고 죽은 사람들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는 마치 공연 한 편을 보는 느낌이었다."(2권 38쪽)

플로베르는 파리에서 2월 혁명을 직접 목도했다고 한다. 프레데릭의 무관심한 태도는 플로베르 자신의 무기력했던 과거를 투영하고 있는 걸까. 이 책을 읽고 플로베르의 삶이 궁금해져 찾아보다가 한국어로 번역된 플로베르의 전기를 발견했다. 플로베르의 실제 삶을 들여다보면 작가가 프레데릭이라는 인물을 어떠한 마음으로 창조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의 무대, 파리

이 소설은 19세기 중반 프랑스의 정치적 격랑과 부르주아들의 화려한 일상을 그려내며 하나의 역사소설로서 지금까지도 널리 읽히고 있다. 문득 소설가라는 직업은 얼마나 근사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자신의 젊은 시절을 거대한 역사 속에 녹여내어 기록하고 펼쳐내는 직업이라니! 특히 철부지 프레데릭이 아르누 부인을 사랑하는 마음을 파리의 풍경에 빗대어 표현하는 문장들은 여러 번 다시 보게 될 만큼 아름답고 또 아름답다. 플로베르의 고유한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느낄 수 있는 문장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그는 퐁뇌프 다리 중간에서 멈추어 모자를 벗고 가슴은 열어젖힌 채 공기를 들이마셨다. 눈앞에서 요동치는 물결처럼 마음 깊은 곳에서 그를 뒤흔드는 다정함이 밀려오며 마르지 않는 무언가가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교회 종이 마치 그를 부르는 목소리처럼 천천히 1시를 알렸다.   

  

프레데릭이 퐁뇌프 다리 위에서 느낀 솟구침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희망 같은 것이었다. 곧바로 그는 자신의 진로를 작가와 화가 중 후자로 결정한다. 왜냐하면 화가가 되어야만 아르누 부인과의 관계를 더 쉽게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르누 부인에 대한 생각은 그가 사적인 공간인 방에 있을 때도 멈추지 않는다.    

 

그는 자기 방 발코니에서 강변 사이로 흐르는 강물을 몇 시간이고 바라보았다.(중략) 그의 시선은 왼쪽 노트르담 돌다리와 현수교 세 개에 둔 채 항상 오조름 기슭 쪽으로 몽트로 항구의 보리수만큼 오래된 나무 숲 쪽으로 향했다. 생자크 탑, 시청, 생제르베, 생루이, 생폴이 혼잡한 지붕들 사이로 마주 보였다. 바스티유 광장의 기념주가 동쪽에서 넓은 금별처럼 반짝였고 저쪽 반대편 끝에서는 튈르리 돔이 하늘에 무거운 푸른 덩어리를 둥글게 떠받치고 있었다. 그쪽 뒤편에 분명히 아르누 부인의 집이 있었다.     


플라뇌르의 전형으로서 프레데릭은 파리라는 대도시에서 익명의 사람들과 마주치며 끊임없이 걷고 있을 때에도 아르누 부인을 떠올린다.     


가스등 불빛 아래에서 마주치는 창녀들, 꾸밈음을 내는 여가수들, 달리는 말 위의 여자 곡마사들, 거리를 걷는 부르주아 여인들, 창가에 선 바람난 젊은 여공들, 모든 여인들이 닮았든 강렬한 대조를 이루든 그녀를 생각나게 했다.(중략) 모든 길이 그녀 집으로 향했고 마차는 그녀 집에 더욱 빨리 데려다 주기 위해 정차해 있는 듯했다. 파리는 그녀를 따랐고 이 대도시는 온갖 목소리로 거대한 오케스트라처럼 그녀 주위에서 울려 퍼졌다.  

   

프레데릭이 길을 걸으며 보는 이들 중에는 보들레르가 관심을 보였던 이들이 포함되어 있다. 플로베르의『감정 교육』과 보들레르의『파리의 우울』이 같은 해에 출판되었다는 점은 참으로 절묘한 역사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노란 센 강은 거의 교각까지 닿았다. 강가에는 신선한 바람이 불었다. 프레데릭은 사랑의 묘한 향기와 신비스러운 지성이 살아 숨 쉬는 듯한 파리의 좋은 공기를 음미하며 혼신을 다해 들이마셨다. 첫 번째 삯마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자 감동으로 가슴이 저려왔다. 짚을 쌓아놓은 술집 입구, 통을 맨 구두닦이, 커피 볶는 기계를 흔드는 식품가게 점원까지도 모두 좋았다. 여자들이 우산을 쓰고 종종걸음으로 지나갔다. 그들 얼굴을 보려고 그는 몸을 기울였다. 아르누 부인이 우연히 외출 중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제목인 ‘감정 교육’은 플로베르가 젊은 시절에 겪었던 사랑에 대한 무모한 의지와 시행착오들이 결국에는 진정한 사랑에 배우게 된 시간이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프레데릭의 방황이 읽는 내내 공감이 갔던 이유도 우리들 누구나가 미완성의 시간을 지나왔기 때문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프레데릭이라는 인물은 보편성을 지닌다.


그리고 파리(....et paris)

프레데릭이 경험하는 파리에 대한 묘사들은 19세기 중반의 파리의 거리들로 우리를 불러들인다. 이 책에서 파리라는 도시는 프레데릭의 사랑을, 뒤사르디에와 세네칼, 바트나의 혁명을, 당브뢰즈 부부의 향락을 모두 품에 안은 도시로서 이 소설에서 배경 그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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