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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리스 Aug 15. 2023

파리 좌안을 아시나요

아녜스 푸아리에 『사랑, 예술, 정치의 실험: 파리 좌안 1940-5

한 여름의 어느 이른 새벽, 파리 리볼리 가에 있던 숙소에서 이 책을 읽었다. 시몬 드 보부아르가 20년 넘게 파리 좌안의 루이지안 호텔에서 살았다는 문장을 읽고 있을 때, 문득 방 내부를 훑어보았던 기억이 난다. 안락한 집도, 안정적인 가족제도도 거부하며 택했던 호텔에서의 삶이라니. 그러나 나는 또 곧바로 동전의 다른 면을 뒤집어보듯, 구속 없는 삶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어쩌면 이 책은 자유로운 삶을 영위했던 어떤 이들의 기록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언론인 출신 작가 아녜스 푸아리에의  『사랑, 예술, 정치의 실험: 파리 좌안 1940-50』은 2차 세계대전 전후로 파리 좌안을 주름잡았던 지식인들의 사랑-대부분은 치정이라고 해야 더 맞는 표현일 수도 있다-과 저술, 정치활동 등에 관해 쓴 책이다. 제목에 등장하는 '파리 좌안'은 파리를 관통해 흐르는 세느강의 남쪽을 일컫는 말로, 파리를 구성하는 총 20개의 구(arrondissement)들 중 5구와 6구, 7구, 13구, 14구, 15구가 그에 해당된다. 푸아리에의 책은 크게 4장으로 이루어진 책이지만, 첫 장인 '전쟁은 나의 주인이었다' 가 내게는 가장 강렬하게 읽혔다. 자타공인 낭만의 도시와는 거리가 먼 침울하고 불안했던 파리의 모습을 대면할 수 있어서다.


점령된 파리

파리가 속절없이 독일군에 의해 점령된 이후, 파리 시민들의 일부는 지방이나 타국으로 빠져나가고, 남아있는 이들은 긴장이 서려있는 도시에서 점령군과 함께 생활한다. 그때부터 그들은 식량부터 생필품까지 모든 것들이 턱없이 부족한 채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파리 시민들은 "점령자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했을 뿐 아니라 점령자가 부과하는 수많은 제약에 익숙해져야 했다... 카페는 계속 문을 열었지만 파는 음식은 몇 달 전에 비해 질이 떨어졌다."(p.64)

한편에서는 이런 상황에 분노를 느끼고, 파리 해방을 위해 일을 도모한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 일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곤 했다. 장 폴 사르트르는 “한밤중에 이 나라 최고의 인재들을 잡아가 마치 투명한 괴물한테 잡아 먹히듯 사라지게 만드는 그 얼굴 없는 적을 문어에 비교했다."(p.100) 극적인 에피소드들도 있다. 2차 대전이 일어날 것을 예견했던 당시 루브르 박물관 관장 자크 조자르는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 모나리자를 비롯한 주요 소장품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놓는다.


"명작들은 중요도에 따라 분류되었다. 아주 값진 작품에는 노란색 동그라미, 주요 작품에는 녹색 동그라미, 세계적인 보물에 해당하면 빨간 동그라미를 쳤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작은 특별히 제작된 고무줄에 매달린 채 그렇게 구급차로 운반되었다. 자가용, 구급차, 화물차, 배달 승합차, 택시 등이 동원되었다. 나무 상자 1,862개를 실은 자동차 203대가 8월 말 어느 날 아침, 프랑스 전역의 11개의 성을 향해 출발했다. 아무도 모르는 이 안전한 은닉처들은 배달을 기다리고 있었다. 샹보르와 슈베르니 같은 루아르 지역의 거대한 성도 이용되었지만, 조자르는 군사 요충지에서 멀리 떨어진 프랑스 시골 지역에 편리하게 '파묻혀' 남의 이목을 끌지 않는 사유지에도 지원을 요청했다."(pp. 46-47) 


마치 영화에나 나올법한 기밀 작전이 실제로 진행되었고 결과는 다행히 해피엔딩이었다.

그 당시 파리에는 게하르트 헬러(Gerhard Heller)처럼 독일군 장교이지만 좌안의 지식인들에게 매우 호의적이었던 이들도 있었다. 그는 새로이 출판되는 프랑스 서적들을 검열하는 일을 맡고 있었지만, 1942년 1월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의 『이방인』을 읽자마자 곧바로 “출간을 허가했으며, 종이도 필요한 만큼 제공하고 문제가 생길 경우 부드럽게 무마되도록 돕겠다는 의사를 밝혔다.”(95쪽) 그는 또한 정치적인 작품으로 여겨질 수도 있었던 사르트르의 희곡 『파리 떼』를 상연할 수 있도록 돕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는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 체포된 프랑스 작가들을 석방하도록 돕는 위험천만한 일에도 관여했다. 그는 독일군으로서, 파시스트였던 피에르 드리외 라 로셸(Pierre Drieu La Rochelle, 1893-1945)과 같은 작가와도 협력했지만,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던 장 폴랑(Jean Paulhan, 1884-1968)과 같은 이들을 진정으로 존경했다. 그는 “히틀러보다는 문학을 더 사랑”하는 독일인이었으며(66쪽), 만약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자신이 좋아했던 작가들을 만나기 위해 파리 좌안으로 찾아왔을 그런 사람이었다.

내게는 파리 점령기 동안 예술가들의 동선도 매우 흥미로웠다. 파블로 피카소는 굳은 의지로 파리에 남았고, 앙드레 브르통과 같은 초현실주의자들은 미국으로 건너가 마치 할리우드 스타와 같은 대접을 받았다. 그리고 파리를 지키고 있던 철학자, 문학가, 예술가, 영화감독, 배우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해방의 순간을 맞이하는 장면에서는 일종의 희열이 밀려왔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우리를 1940년대의 파리로, 철학사와 문학사, 미술사, 영화사에 이름을 남긴 이들의 바로 옆으로 데려다 놓는다는 점에 있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이 책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빠짐없이 등장하는 인물은 두 명이다. 바로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곁들인 각주와 함께 본문을 읽다 보면, 저자는 보부아르가 쓴  『사물의 힘(La Force des Choses)』이라는 책에 가장 많은 부분을 의지하며 집필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커플은 『현대(Les Temps modernes)』라는 잡지를 발간하고, 소위 가장 핫한 지식인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다. "1945년 10월, 파리의 어디를 걸어도 책방 유리창에 보부아르와 사르트르의 최신 소설이 나란히 진열되어 있었고, 신문 가판대에서는 『레 땅 모데른』을 팔았다."(p.162) 그리고 사르트르가 주창한 실존주의는 당대 청년들이 추앙하는 철학사조로 거듭나 수많은 철학, 문학, 예술 지망생들을 파리 좌안으로 몰려들게 만든다. 이 책은 이 둘의 사적인 삶을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것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데, 특히 보부아르와 사르트르, 카뮈, 메를로퐁티를 비롯한 프랑스와 미국의 유명 지식인들의 문란한 사생활이 그려진다. 이 중에는 우리에게 소설  『연인』으로 잘 알려진 마르그리트 뒤라스-파리에 있는 그녀의 아파트는 프랑스 "레지스탕스 대원들의 심장부 역할"을 했다.(p. 84)-나 프랑수아즈 사강 같은 여류 작가도 있고, 국내에는 아직 덜 알려진 작가들도 다수 언급된다. 저자는 이 시기 서구 문화사에 한 획을 그었던 이들의 평전이나 인터뷰가 담긴 책들을 중심으로, 파리 좌안이라는 곳에서 어떤 만남이 이루어졌고, 어떤  논쟁이 벌어졌는지를, 어떠한 사랑의 양태가 유행했는지를 서술한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부분은 당대 국가들 간의 정치 지형과 그 안에서의 지식인들의 역할이다. 한 마음으로 독일에 항전했던 프랑스인들은 파리가 해방되자마자 곧바로 두 진영으로 갈라진다. 파리 해방 과정에서 상징적인 역할을 했던 드골을 중심으로 모인 드골주의 진영과, 점령 시기 동안 레지스탕스 활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공산주의 진영이 바로 그들이다. 피카소나 페르낭 레제와 같은 이들은 동기야 어찌 됐건 공산당에 가입하면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공산주의에 미래를 걸게 되는 상황을 조성했고, 사르트르와 같이 공산당이 아닌 지식인들은 여러 언론을 장악하고 있던 공산당의 집요한 공격받아야 했다.(양쪽 진영을 모두 불신했던 사르트르는 제3의 길을 도모했으나 실패로 돌아간다.) 이런 사례들은 당대의 첨예하고 불안했던 프랑스의 정치적 형세와 그 속에서의 지식인들의 참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흔히 에펠탑과 세느강으로 대표되는 낭만의 도시 파리의 이미지는-에펠탑이 1889년 박람회를 위해 축조된 것이니-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2016년에 개봉한 영화 <세잔과 나(Cézanne et moi)>에서 파리는 당시 예술가들에게는 생존을 건 치열한 전장이었다는 걸 보여준다. 지독한 궁핍 속에서 에밀 졸라는 참새를 잡아 끼니를 때우고, 명성과 돈을 좇아 파리의 밤거리를 분주하게 뛰어다닌다. 19세기말의 청년들에게 파리는 성공의 기회를 두고 생존을 건 싸움을 하는 격투장과도 같은 곳이었을 것이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파리의 낯선 모습은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이 책 역시 그런 파리의 새로운 면면을 보여주고 있다. 보부아르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루이지안 호텔에서의 생활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파리는 매일 점점 더 슬퍼 보여. 어둡고, 춥고, 습하고, 퀭해. 어쩌면 진짜 집이 있어야 할지 모르겠어. 이렇게 한기를 느껴서는 안 되는데. 봄이 너무 멀게만 느껴져."(p. 317) 이 책에서 파리의 곳곳은 그저 낭만으로만 가득 차 있지 않다. 6구의 생베누아 거리의 4번지에 있던 마르그리트 뒤라스에 집에는 여러 개의 방마다 침대가 놓여있어 레지스탕스들이 숨어 살았으며, 5구의 뷔셰리 거리 11번지 맨 꼭대기층에는 20년간의 호텔살이에 지친 보부아르가 또 다시 혼자만의 둥지를 틀기도 했다. 또한 『현대』의 잡지가 발간되던 사무실에서는 담배 연기와 술 냄새에 취한 채로 새벽까지 논쟁이 이어지곤 했다. 이 책 속에는 서슬 퍼런 거대한 감옥 같은 파리가 있고, 몸서리쳐지는 고독의 파리도 있으며, 해방의 기쁨으로 넘실대는 파리가 있다. 이 책 속에는 파리의 그런 낯선 모습들이 공존해있다.



에펠탑(La tour Eiffel)


아녜스 푸아리에에 따르면 파리가 점령된 이후, 전쟁의 장본인이었던 히틀러가 파리의 에펠탑을 찾아갔다. 히틀러는 에펠탑이라는 반짝이는 보석을 쟁취했음을 몸소 느끼고, 그 사실을 만인에게 자랑하고 싶었으리라. 저 멀리 망망히 서 있는 에펠탑을 담기 위해 사진사는 무릎을 꿇었고, 히틀러는 허공을 응시하며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에서 히틀러의 왼쪽에 서있는 사람은 건축가 알베르 스피어(Albert Speer, 1905-1881)이고, 오른쪽에 서있는 이는 예술가 아르노 브레커(Arno Breker, 1900-1991)다. 히틀러의 전리품이 되어버린 에펠탑이 그저 애처로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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