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2012년 여름의 추억을 떠올리며

by 떠수니

지난 2012년 여름의 흔적을 담은 글과 사진을 다시금 꺼내 정리하기로 했다. 하늘바라기의 '까미노 데 산티아고(산티아고로 가는 길)'을 추억하며 앞으로의 나날에 도움이 될 조각들을 다시 찾아보고 싶다. 오늘부터 100편이 넘을 크고 작은 소소한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어 보련다.







2012년 6월 7일, 4년 반 동안의 기자생활을 마무리하고, 무작정 스페인 산티아고(Santiago)로 떠나기로 결정을 내렸다.


퇴사하면 산티아고는 꼭 가보고 싶었다. 아니, '가야겠다(must go)'는 필연성(必然性)에 휩싸였다는 말이 맞을 거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그렇다.


그리고 산티아고로 향하는 여정이 나에겐 힐링여행이 될 거라 확신했다.


다른사람들은 왜 굳이 산티아고냐고 묻는다.




왜?


하나, 스페인이 그냥 '완전' 좋고.


둘, 한국에서 머니깐. 누군가 나를 애타게 찾고 불러대도 고집스럽게 혼자만의 시간을 고집할 수 있고.


셋,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말하자면 결혼할 스페인 남자를 만나려고 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이국땅에서 조그마한 민박집을 차려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었다. 떡볶이랑 빙수를 파는 사업을 막연하게나마 계획했다.


넷, 지난날의 나를 돌아볼 수 있는 흔하지 않은 시간을 마련하려 했다.




까미노일기_산티아고순례길_스페인여행_힐링여행_2.jpg '나'를 정의내릴 수 있는 스티커들을 모아 카드를 만들었다. 나란 사람, 나 역시 정의내리기 어려운 존재다.



지난날의 나?


실제 그런지 몰라도 남들 보기에는 '모범생' 혹은 '바른생활' 이미지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사람.

숨 막힐 정도로 쉴 틈 없이 하루를 사는 '걱정스러운' 사람.

알고 보면 무진장 술을 좋아하고 특유 창법으로 노래 부르며 남을 괴롭히고,

커피와 아침식사가 없으면 엄청나게 히스테리를 부리는 사람.

착한 것 같지만 신경질도 잘 내고 말도 독하게 하며 감정 기복이 어마어마하게 큰 사람.

'할아버지'라는 단어엔 유독 치명적인 사람.


운 좋게도!

무슨 일이든 '끄적끄적' 거리면서 좋든 싫든 이래저래 적응도 잘하고 긍정적인 구석도 있다.

힘에 부쳐도 스스로 "으샤 으샤~" 외쳐대며 신기하게 생존하는 사람. 때로는 기적을 만드는 재주도 있다.

혼자 만의 세상에 빠지다가도 누군가 옆에 있어주면 그저 미소 짓는 바보이기도 하구나.

가만히 있어도 지인들의 사랑과 도움을 받는 복 넘치는 사람.

싫어하는 건 단칼에 날려버리면서도, 아끼는 건 무섭게 무섭게 연(緣)을 끊지 못하는 사람.

친구가 있어도, 친구가 없어도 눈물이 가득 찬 사람.

'시작'이라는 단어에 도전정신 하나만은 투철한 겁 없는 사람.

선물이든 편지 든 작은 감동 하나로 마음이 사르르~ 무너지는 소녀 같은 사람.




생각해보니 나라는 사람,

그다지 별로지는 않다.



그래도 나는 소망한다.

다시 나로 태어나게 해 달라고. 그냥 달라지고는 싶으니깐.

간절한 마음으로 2012년 7월 까미노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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