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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떠수니 May 19. 2023

#9 시선을 낮추어 보다.



작년 한 해를 정리하는 내내 갯벌 고둥을 만났던 순간이 뜨겁게 맴돌았다. 지난봄 태안 방포 해수욕장에 며칠 묵었을 때 이야기다. 남편은 아이들을 데리고 아침부터 바다로 나갔다. 점점 넓게 펼쳐지는 갯벌로 셋이 나가 있을 동안 캠핑 의자 위에서 꼼짝도 않고 책을 읽으며 자유시간을 만끽했다. 바다가 한눈에 보이던 테라스에서 셋을 수시로 바라보았다. 세 사람을 유독 아름답게 만드는 하늘의 기운을 살아했다. 답답할 때면 달려가고 싶어 안달이 났던 갈증은 어디로 간 걸까. 바다에 가서도 습관처럼 하늘만 보았다.



지나고 보니 나는 하늘이라는 존재가 꽤나 중요했던 사람이었다. 결혼 전까지 쓰던 온갖 닉네임에 '하늘'이라는 단어가 들어있을 정도. 서른이 훌쩍 지나서도 하늘에 떠 있는 존재와 밥 먹듯 대화를 했다. 퇴근길마다 달님에게 하소연을 얼마나 해댔던가. 위를 바라보는 일은 위안 그 자체였다. 하늘을 계속 언급하는 이유는 나란 사람이 얼마나 높은 곳만 우러러 바라보며 살았는가를 고백하기 위해서다.


세 사람이 세 시간 동안 바다에서 놀고 돌아올 때쯤, 갑자기 일어섰다. 바다를 홀로 마주하고 싶었다. 갯벌이 펼쳐진 끝자락까지 무작정 걸어 보기로 했다. 남편은 바지락을 캔 바구니를 배턴터치하듯 넘겼지만 "해루질은 노 땡큐!!" 전일 밤에도 호미질은 충분히 해댔던 차였다. 바위가 훤히 드러난 곳만 뚜벅뚜벅 걷고 있는데 각종 고둥이 여기저기서 나를 유혹했다. 갯고둥, 대수리, 총알고둥, 보말고둥... 망했다. 마음먹은 일을 잊어버렸다. 남편이 혹시나 하면서 쥐어 준 바구니에 고둥을 끊임없이 담고 있었다. '이왕 넣은 김에 큰 것만 찾아볼까?' 쭈그리고 앉았다. 다닥다닥 붙어사는 녀석을 보며 인간과 무엇이 다른가 싶어서, 바위 한 면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잠깐 멈춰서 시선을 다소 낮추면 많은 것들이 보인다. 바다나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면 놓칠 수도.


'어라?'

사람 눈에 덜 띌만한 곳마다 크기가 큰 고둥이 살았다. 이들은 상부상조 조약이라도 맺은 듯 완전체처럼 붙어 지냈다. 작은 구멍이나 좁은 틈 사이에도 고둥들은 야무지게 숨어 지냈다. 살려는 욕구가 있어서 그리 살아가는 건지, 딱히 움직이지 않으려면 삶을 굳이 왜 이어가는 것인지, 그들 속은 알 수 없었다. 기똥찬 사실 하나, 자기 몸에 꼭 맞는 구멍에 머물러 있었다. 그 갈아진 틈 사이 사는 녀석들도 크기가 상대적으로 큰 편이었다. 들여다볼수록 놀라운 세상이었다.

'그럼 어디, 네 녀석들이 구석구석에서 어떻게 얼마나 잘 지내는지 더 낮춰 보자고!!'

수면에 닿을 듯 말 듯 머리를 팍 숙여보았다. 깊숙하게 파인 바위 아랫부분을 마주하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정말 큰 고둥이 모여 살고 있었다. 그 정도 크기는 처음 보았다. 남편이 계속 찾았던 소라도 발견했다. 걸을 때마다 앉았을 때 보인 세상이 더 넓어 보였으나, 더 아래에서 바라본 세상은 훨씬 어마어마했다.



’꼭꼭 숨어라~‘ 느림보 고둥들이 열심히 자기만의 공간을 찾아 두었다.



그다음 날엔 평평한 갯벌 모래 위를 걷다가 느리게 움직이는 생물들을 조용히 구경했다. 이곳에서도 고둥을 만날 수 있었다.

'너는 어떤 사연을 가졌니? 아니면 비장한 마음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니? 어쩌다 외딴곳에 혼자 있는 거야.'

고운 갯벌 위는 고요해 보이지만 멈추어 바라보니 이곳에서의 삶은 바위 벽과 비교하면 살벌하기만 하다. 숨을 곳 하나 없는 모래 위에서 게든 조개든 갈매기든 갯지렁이든 강한 녀석들이 언제 공격할지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자기 길을 멈추지 않고 기어갔다. 모래 위에 남겨진 흔적을 보자니 몇 시간 동안 얼마큼 움직였는지 짐작이 갔다. 내가 속이 탄 나머지 어떤 녀석은 대신 멀리 옮겨 주기도 했다. 바위틈 고둥들은 몇 년 동안 한 번도 안 움직인 눈치던데. 이들은 쉬지 않고 바다를 향해 나아간다. 곡선으로 움직이길래 멀리 갈까 걱정되어 대신 옮겨 줄까도 고민할 때쯤 방향을 수시로 바로 잡았다.


바다생물들이 갯벌 위 그어 놓은 지도.




위를 향한 시선이 나를 오랜 시간 지배하고 있었다. 중학생 시절부터 신문방송학과로 진학해 언론인이 되겠다는 다짐이 씨앗이었을까. 그 꿈을 이루고도 더 높은 목표를 끝없이 설정한 날들을 떠올리니 허무함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지난날들이 아프기도 했다. 이따금 나를 놓아주었더라면, 멈추는 순간들이 더 있었더라면, 조금 더 현명하고 단단한 내가 되지 않았을까. 중심을 바로 잡고 싶을 때마다 멈추고 낮춰 보기로 다짐을 했다. 바위틈 속에서 움직이지 않아도 실속 있게 자신의 몸을 키우는 고둥을 보면서 뒤늦게나마 정신을 차린 것이다.


새롭게 마음을 먹고 나니 친정집 삽살개 로또와 교감하는 딸이 눈에 들어왔다. 저보다 몸집이 큰 개를 다루면서도 바지에 지푸라기가 묻든 말든 텁석 주저앉아 마음껏 매만져 주던 아이. 아이가 일찍부터 동물과 교감을 해 온 비결이었다. 나 역시 로또를 사랑하면서도 잔디밭에 앉은 채 만져줄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낮출수록 더 많은 것을 얻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린이들은 세상의 비밀을 더 많이 알고 있을지도.





이 글은 어린이도서연구회 <동화 읽는 어른> (2023년 1월호)에 기고했습니다.


어린이도서연구회 월간지 <동화 읽는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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