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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떠수니 Oct 03. 2016

#8 미국의 도시 색깔

스물셋, 어학연수 시절 기억



장소가 어디든 여행은 맛있고 재미난 법이다. 가슴속에 들어오는 도시 색깔이 각기 달라 서지 않을까. 공기도 날씨도 풍경도, 사람도, 문화도 모두 비슷한듯하면서도 색다르고, 다른듯하면서도 비슷하다. 내가 여행하는 이유도 바로 도시 색깔에 있다. 그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또다시 나를 그려가고 싶다. 다양한 도시 색깔 이야기를 미국 이야기로 시작해보고자 한다.





< 조지타운 대학교(Georgetown Univ.)에서 바라본 미국 워싱턴 DC 풍경 (출처: 조지타운대 페이스북) >



지난 2005년 조지타운 대학에서 어학연수 시절 워싱턴 DC에 머물며 몇몇 도시를 경험할 기회가 있었다. 미국 생활은 부모님이 귀하게 만들어주신 기회라 이곳에서의 여정은 한 걸음 한 걸음 모두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비싼 학교에서 점심 값까지 아껴가며 여행비를 마련했지만 봄 방학 땐 시카고 대학에서 학업을 마치고 직장생활을 시작한 초등학교 동창 덕분에, 여름 방학 땐 UCLA 대학에 다니던 동생 덕분에 서부를 크게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었다.



※ 당시 사진이 없어 아쉽지만 머릿속 기억을 최대한 글로 그려 본다. 당시엔 사진을 가치 있게 생각하지 않을 때라 찍은 사진이 별로 없지만 그나마 남은 일부는 외장하드 고장으로 썩혀 있다. 불가피하게 구글 사진을 몇 장 활용했다. 빠른 시일 내에 수리해서 사진을 수정하는 날이 오길 바랄 뿐.






2005년 4월, 워싱턴 벚꽃 축제(National Cherry Blossom Festival)에서

한때 살았던 워싱턴 DC는 자연과 하나 되는 도시다. 조지타운 대학 옆 강변, 캐널 로드(Canal Rd)를 끼고 아침 조깅을 하다 보면 사슴 녀석이 찻길을 겁도 없이 뛰어다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강가엔 뱀도 나온다. 워싱턴이라면 백악관이랑 정치인만 생각난다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난 초록색만 떠오른다. 도시 장판을 잔디로 깔지 않았을까 착각할 정도로 초록은 이 도시를 가득 채운다. 불꽃놀이도 벚꽃놀이도 박물관 놀이도 모두 잔디 위에서 시작하는데 그때마다 온몸이 초록으로 물들여지는 기분이다. 그만큼 우리의 삶도 덩달아 신선해지겠지. 벚꽃 축제 기간엔 기절도 각오해야 한다. 초록 바다에 흰 눈이 스르르 내리는 아름다움을 눈에 넣어야 하니깐 말이다. 누군가 떨어뜨리지 않는 이상 녹지 않을 머리 위 꽃 뭉치는 발끝까지 향을 그윽하게 채워준다.



<온통 초록인 DC 위성 사진 (출처: google map)>



워싱턴에서 가장 높다는 건물 옥상에 올라 오후 햇살에 물든 워싱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평화로움이 더해진다. 일몰 시간에 맞춰 포토맥 리버(Potamac River)를 건너며 학교로 돌아가는 길은 늘 설렜다. 오래 짝사랑하던 남자를 몰래 보는 느낌이랄까. 여기는 높은 건물도 없어서 누구와도 금방 친해질 분위기다. 총살사건이 잦고 이른 밤에는 꽤 무서운 도시라는 사실조차 무색게 하는 이곳은 태어난 서울과 자랐던 포항에 이어, 제3의 고향이 됐다. 앞만 달리기 벅찼던 제게 안정을 주었던 고마운 곳. 어학연수 시절이 그립고 그립다.








<2005년 여름, 시카고를 처음 마주했던 순간 기념 사진>

시카고는 '선명함'을 준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줏대 있는 도시 녀석이다. 빌딩은 빌딩대로 호수는 호수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각각의 요소가 조화를 이룬다. 신기할 일이다. 하늘로 쭉쭉 뻗은 빌딩들이 하나같이 얼마나 반겨주던지 워싱턴에서 22시간 넘게 고속 기차(Amtrack)를 타고 온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


높은 빌딩은 당시 20대였던 나에게 우상과 같은 존재였다. 언제나 높은 곳을 향해 꿈을 꾸고 달려왔던 난 시카고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올 곳을 잘 왔다"라고 환영해주는 쿨한 도시. 존 행콕 빌딩(John Hangcock center)에 올라 야경을 보니 내 꿈을 곧 실현할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맨 꼭대기 층 여자화장실에서 통유리로 펼쳐진 뷰는 정말 훌륭했다. 우주도시로 순간 이동한 것만 같다.





<헤어지는 순간까지 멋들어진 시카고 빌딩들 (출처: google)>



미시간 호수는 오대산 능선을 바라보는 마냥 편했다. 자연을 좋아하면서도 굳이 도시에서 살고 싶은 나 같은 사람에게 완벽한 도시다. 도시와 자연을 딱 반반씩 나눠 즐길 수 있는 도시라 정말 마음에 들었다. 짜장면과 짬뽕 사이를 고민할 때 짬짜면이라는 메뉴가 만족시키듯. 쫓고 쫓기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자연이 주는 편안함으로 위로받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미시간에서 부는 바람은 마음을 꽤 흔들어 놓았다. 이 영향으로 30대까지는 이 곳에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서른 중반이 된 지금도 하곤 한다. 빌딩으로 빼곡하게 채워진 도시는 신기하게 안전한 느낌이 들었고 실제 아주 까만 밤에도 안전하다고 한다.


<시카고 특징이 고스란히 보이는 풍경을 배경으로 찰칵. 이때가 내 인생 처음으로 보상받던 휴가였다고 당시 일기에 기록해둔 바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첫인상은 평생 제 머릿속을 지배할 거다. 다양한 동화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것 같아서다. 보일 듯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안갯속 신비로움이 나를 동화 속 주인공으로 만들어 준다. 금문교로 가는 길이 꼭 그랬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휘감은 안개는 나를 어디론가 데려갈 수 있지도 않을까?



워싱턴 DC에서 즐기는 자연과 또 다른 신선한 풍경이다. 이 도시를 상징하는 명물, 뮤니(MUNI) 버스와 케이블카는 먼저 스르르 다가와 손을 내밀 정도로 정겹다. 거센 바람 때문에 이중창으로 무장한 집들도 사랑스럽다. 파스텔 톤 집들은 하나같이 정성이 깃들여져 있다. 워싱턴에는 밋밋하고 낡은 집들이 많다. 꼬불 꼬불 S자로 내려오는 꽃길은 애교스럽기 그지없다. 나를 괴롭힌 사람에게도 웃어줄 만큼.



39 항구로 나가면 또 다른 풍경을 만난다. 물개들이 우리를 반기더니 인생을 느리게 걷는 방법을 알려준다. "쉬는 건 이렇게 쉬는 거야"라고 합창하면서. 바닥에 넙쭉 붙어 있으면서도 소리를 얼마나 잘 내는지 그 에너지는 쉬면서 생기는 거구나, 나 역시 반성해본다. 햇빛을 실컷 받으니 녀석들은 비타민D 걱정만큼 안 해도 되겠다.



샌프란시스코는 느리게는 물론 특별하게 살아보라고 권해서 좋다. 한 달 정도 머무르며 구석구석을 보고 싶은 곳이다. 신혼여행지로도 좋다. 다만. 심한 안개 때문에 오래 살기엔 우울한 도시기도 하다. 감정 기복이 큰 나 같은 사람들은 위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동화의 나라 같은 사랑스러운 도시. 언덕을 오르는 뮤니 버스와 물개가 자리 잡은 39 항구 풍경>






LA는 터프했다. 동부는 모든 걸 포용해주는 엄마 같다면 서부는 거칠게 키우는 아빠 같다. 서부의 칼칼함은 집 구조와 모양을 통해서만도 느낄 수 있는데 온통 황톳빛이 난다. 일부 카운티 이름은 오렌지다. 햇살도 땅도 노란색 내지는 베이지색. 카우보이가 절로 연상될 정도로 황량함이 느껴진다.





시내 곳곳에 한국어가 많이 눈에 뜨인다. '찜질방'이라는 글자가 여기저기 있을 정도. 워싱턴에서는 쉽게 맛볼 수 없던 한국음식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사는 LA는 이상하게도 이방인 취급을 하는 것 같았다. 한국인으로서 갈 곳이 갑자기 늘어나서일까? 유니버셜이나 놀이공원 따위를 너무 돌아다닌 탓일까?






뉴욕은 재밌다. 모순의 도시라고 해도 좋다. 월가 쪽은 지나가는 사람까지 죄다 세련됐는데 다른 거리를 보면 다소 실망스럽다. 횡단보도를 기다려서 건너는 사람도 없다. 차도 사람도 질서가 없어 보였다. 더구나 지하철 역과 내부를 보면 더러워도 너무 더러워서 "으악!!!!!!" 소리부터 나온다. 껌딱지 수 백 개가 한 곳에 붙어 바닥이 튀어 올라온 지 오래라 도무지 청소를 했다고 믿어지지 않는다. 세계 주요 도시 중 이렇게 더러운 곳도 없지 않을까 싶다.


관광객이 얼마나 많은지 스타벅스 직원은 외국인이 주문하려고 입을 떼기도 전에 손가락 대화만 시도한다. 뉴욕에선 영어를 쓸 일이 있을까? 월가에선 뉴요커에게 사진 한 장 부탁하는 일도 삼가야 한다. 눈빛을 마주칠 수도 없을 만큼 냉정하게 스쳐 지나가버린다. 스페인을 먼저 경험했더라면 당시의 뉴욕 여행은 불만과 욕으로 채워졌을지 모른다. 스페인이라는 나라는 인정 하나는 끝내주게 넘치는 곳이니깐.


그래도 뉴욕이 좋다. 진짜 도시지 않는가. 내가 꿈꾸는 높은 빌딩이 늘어서 나를 반겨줬다. 시카고의 건물들처럼. 뉴요커들이 미친 듯이 걸어 다니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얼마나 빠른지 손에 쥐고 다니는 베이글과 커피도 배려하지 않을 속도다. 내가 추구하는 삶과 일치했다. 20대에는 그랬다. 좀머 씨 아저씨처럼 정신없이 걷고 칼로리 바 하나로 삼시 세끼를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여행으로 잘못된 학습을 했을지 몰라도 직장생활 6년 내내 취재원들과 약속이 없을 땐 빵과 커피로 끼니를 해결한 적이 많았다. 대신 뉴욕에 있는 사람들처럼 주말이나 퇴근 후에는 나만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 노력했다. 언제 그리 바빴냐는 듯, 재즈와 야경을 즐기면 되는 거다.


여행 내내 뉴요커를 이상하며 카페 놀이를 즐겼던 나는, 동네 북카페라도 들러 그때 여행 기분을 자주 느끼곤 한다. 혼자 빠르게 걸어 보기도 한다. 그래야 뜨겁게 살아있음을 체감할 수 있어서다. 뉴요커는 안 되더라도 내 심장을 계속 뛰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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